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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선

    신선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3년 7월 4일

2015.01.2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나의 발자취 49년을 회상 합니다.
1963년 음력 윤달 5월 11일 하지 날 (양력7월4일)아침에 출생 하였다 합니다.
(그때 당시에는 도시 지역에 장이 열리는데. 할머니가 아침 일찍 장을 보고 와 보니, 대문에 냉수를 떠 놓았더라! 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제가 가장 어린 시절의 기억은…… 문득 저를 안고 달래고 어르고 있는 할아버지의 모습의 순간이 있고…… 또, 문득 떠보니, 몇 명에 여자들이 있어는데, 누군가가 하는 말이.. 예가, 엄마를 못 알아보나 봐! 하며 깔깔들 웃어는데, 말을 알아들을 수 있어 고. 창피함을 느껴 습니다. 그것이 몇 살 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길가, 밭에서 나보다 더 큰 샆을 가지고 놀 때, 나를 좋아하는 아저씨가 나에게 말을 건네는데, 어줍은 말투로 답변을 잘 못해서 답답한 느낌을 받은 기억……
큰 형이 강재로 태워주는 장난감 마차를 타고 전 속력으로 달리는..공포에 떨었던 기억…(마차에서 거의 매번 떨어져 나뒹굴러 짐)
또래 아이들과 씨름 붙이기. 싸움 붙이기. 덩치가 작아서 매번 졌음.
작은형 과는 잘 보살펴 줘서 같이 잘 놀았다, 비둘기 기르기. 새매 기르기. 다람쥐 기르기 이런 취미를 따라다니며 놀았다. 겨울이 되면 연날리기를 좋아했다. 또, 땔나무를 같이 도와 많이 하러 다녔다. 성장해서 까지 같이 잘 놀았다. 동내 네살 칭아까지 놀이친구로 잘 놀았다. 동내야구 놀이을 많이 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때에는 녹음기 카세트에 디스코 음악트러 놓고 신나게 춤추고 놀았다. 부모님은 우리가 놀는 일에 나무라지 않았다 어머니는 내가 열 한살 때 돌아가셨다, 젖먹이 여동생을 누나가 보살펴다, 살림을 하느냐 학교도 중도 포기하고 가사일에 동생들을 돌보았다. 동네 에서는 제일 부자집 이었고 할머니 할아버지의 은혜를 많이 받았다.
국민학교 입학.. 시절 한 아이와 나의 본위에 의한 싸움을 처음 해보았다. 온몸의 혈관이 뛰는 느낌을 처음 느껴다. 분노의 나의 주먹은 그의 머리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그는 나를 물고 나는 그의 귀를 물었다. 으~ 그 고통.. 그때 문득! “내가 이렇게 아파서 고통스러운데 내가 물어 뜬는 이 아이의 고통도 이러 하겠지!” 그리고 나에겐 싸움이 없었다. 때리면 맞고, 아프면 울고.. 분노는 일지 않았다. 아수라장 처럼 노는 아이들을 조용히 지켜보는 물에 뜬 기름 인 것 같다.
아무 생각이 없어고 그런 상황. 현실들이 싫었다. 국민학교 1학년 때는 답안란에 1~10까지 써다. 크아~ 한글을 몰랐다. 6학년까지 한글 나머지 공부를 했다. 나는 알고서 써는데 나 중에 보면 엉뚱하게 틀려있는 것이다. 가 자를 알고 써는데.. 너는 가 자도 못써 임마! 해서 보면 기 자로 쓰여 있는 상황 “이해 하시려나” 우 이 구” 그래서 나는 내 자신도 타인도 공부를 못하는 사람으로 인식 되었다. 영어단어 .한문은 외어볼 생각을 하지 않았다. 기억력이 없어서.. 그렇게 하니 중학교를 거쳐 고등학교 입학시험이 끝나고 면접에서 영어 선생님의 이름을 물어보는데 나는 기역이 나지 않았다. 으이그” 참. 낙방..
원서만 내면 개나 소나 다 들어 가는 학교에 들어 가게 되었고. 고 3학년 학기말 고사 에서 드디어 꼴등을 했다. 정말 완전한 꼴등을 한 것이다. 이렇게 나의 학창시절은 막을 내렸다. 사회에 나와 농사일을 거들며 막노동을 하며 하루하루를 살아가다 군입대를 하게 되었고 방위병으로 14개월 복무를 무사히 끝마치고 실질적인 사회에 발을 드려 놓았다.
안산 반월공단 염료 공장 에서 염료를 저울질하며 약 6개월을 근무 한 것으로 기억하고.
오산 통탄에 있는 아주 파이프에서 정확히 1년을 노동의 뼈아픈 고통을 맛보았다. 후로 서울 개봉동 룸싸롱워이터로 근무하면서 영등포 미용기술학원을 1년 코스로.. 자격증을 취득 하였는데 그 길은 버리고 시골집으로 다시 내려와 보니, 아버지의 사고로 집안이 시련의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었다.
농사일을 거들며 남사면 한국브레이크에 약 3년간 근속 함. 퇴사 후 이러저러한 일을 궁리하며 살아오며, 아는 것 없는 답답한 나 자신이 싫었다. 그래서인지 깃든 철학은 후손을 낳지 안겠다는 생각이 굳게 자리잡고 있었다.
그래서인지 연인 사귀기를 주저했다. 그러던 중 여호와의 증인들과 만은 대화를 나누었으며 나의 의문에 그들은 속 시원히 답변을 하지 못 했다. 그러다 1996년 7월경 용인시청에 들려 행정서류를 신청하고 기다리는 시간에 어디서 무엇을 할까 생각 하는데 서점이 시야에 들어 왔다.
볼만한 책이 있나 서점 안으로 들어 서는 순간 책꽂이에 노랑색의 등 표지에 우주인의 메시지1 이라는 글귀가 한눈에 들어 왔다. 빼어 들고 어떤 내용인가 큰 글씨 제목 차래 글씨 을 대충 읽는데 어떤 새로운 철학을 주장 하는 내용이었다.
그래 그럼 내가 여기서 반박할 문구를 찾아보겠다. (여호와의 증인들이 나의 반박에 꼼 짝을 못했어 기에……) 생각 하고 구입하였다. 그렇게 집에 돌아와 우주인의 메시지를 읽기 시작 하였다. 반박을 찾으려 한 글자 한 구절 한 구절을 읽어가며 나의 온몸의 세포들은 깨어 환희에 춤추고 기쁨에 눈물이 정말로 마구 솟아졌다. 눈물이 앞을 가려 글이 보이질 않았다
나는 기쁨에 흐느끼며, 흐느끼며 울고 또 울었고 이 글을 쓰고 있는 이 순간도 또다시 그 순간의 환희의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일 서 일독 개화 불. 부처의 깨달음. 예수. 라엘 의 깨달음이 이런 것이구나. 그 분들은 현실적 상황을 보았고, 일시에 깨달을 수 있어 을 것입니다.
그 후로 나는 영원히 살겠다는 마음으로 바꿔다, (자신이 싫은 나는 평균수명 60년만 대충 때우고 가자는 허무주의 였음) 명상하고 긍정적인 사고 을 가지고 생활에 임했으며..
그러던 중, 1997년 12월 지금에 처를 만나 아이를 낳지 않는 조건으로 결혼했으며 함께하는 생활의 삶에 생계의 노고를 함께 했다. 신선각 이라는 가든을 개업하고 운영 하는 중 .토지를 구입하며 지은 빛. 늘어나는 카드 빗.. 사업장을 처분하여 빗 청산 후 남은 카드 빗 등.. 약5000 여 만원을 2011년 에서야 모두 상환했다. (빗 독촉에 시달리다 스트레스로 눈도 못 감고 죽었다는 아내의 친구 동생의 이야기를 전해 듣는 데 너무나 가슴이 아프고 동감이 가더라!)
인류가 일순간에 고통 없이 사라지는 것이 사람들의 고통을 덜어 주는 것이라는 나의 생각을 바꾸어 살아있는 것은 좋은 것이며 의식을 갖은 자는 똥 밭에 굴러도 행복하다는, 나의 철학이 생겼습니다. 그리하여 어떻게 하면 메시지에서 이르는 엘로힘께서 지향하는 방향으로 인류를 파멸에서, 고통에서 건져 은하 권 문명의 낙원으로 들어 갈 수 있을 까을 심사숙고 하기 시작 했습니다.
인류는 의식이 이끌어야 하며 그러기 위해선 “의식이 깃들 전당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이르렀고 그 전당을 어떻게 마련하고 성장시켜 나가야 할까! 그 태초의 에덴동산을 만들어야 하는데..
나는 대한민국에 있고 이 주어진 상황 속에서 어떻게 하면 그런 전당을 만들 수 있을까! 를 2000년도부 터 언 10년을 해온 것 같습니다. 그 방법은 그때 얻은 결론이나 지금이나 똑 같으며 한반도의 분단 상황을 유효하게 이용 하는 것입니다.
2010년 8월경 T.V을 보던 중 우리나라 전통민요 아리랑이 전 세계적으로 넓게 알려져 있으며 찬송가로도 불려지고 있다는.. 그런데 아리랑의 참뜻은 명확하게 알지 못한다는 방송을 보고 도대체 아리랑이 어떤 의미가 있길래 그리 오래 널리 불려 지고 있는 가.
한낮 연인의 애환을 담은 유행가라면 현재에서도 얼마나 애절한 유행가가 많으며 녹음되고 저장 되도 1세기를 유행하기 힘든 상황인데…… 하는 의문을 가지고 제가 직접 아리랑의 의미를 한자로 붙여 보았습니다.
나. 우리. 我. 더 넓게는 인류 을 뜻하는 원대한 뜻을 붙였습니다.
리 는 깨달을 理 자를 붙여 습니다. 깨닫는다는 것은 과학기술로 사물의 이치를 귀 명하여 밝힌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랑 은 밝을朗 자를 붙여 습니다. 그랬 더니 인류가 과학기술로 사물의 이치를 깨달아 밝아진다 는 뜻이 됩니다. 와우! 그리하여 저는 가장 만이 불려 지고 있는 경기아리랑에 그 의미를 모두 붙여 보기로 하였습니다.
다음은 경기아리랑의 가사와 그의 미입니다.
후렴, 我 理 朗 아리랑 아 라리요 아리랑 고개로 넘어 간다.
나아 깨달을 리 밝을랑 내가 빛으로 깨달아 써요, 인류가 깨달아 밝아지는 아리랑 동산 시대로 넘어간다.
1절, 나 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십 리도 못 가서 발병 난다
자신의 의식의 빛을 버리고 가시는 님은 아리랑 동산 시대엔 발병이 난다
2절,청천 하늘 엔 별 들도 많고요 우리네 가슴엔 꿈도 많다
청천 하늘에 수많은 은하계를 바라다 보는 인류에 과학 기술 (많고요.우주관측만원 경)
그 드넓은 우주를 바라다 보는 인류에 미래(꿈)
3절,저기 저 산이 백두산 이구려 동지 섯 달에 꽃 만 핀다.
저기 저 산이 엄동설한에 백두산 이라도 인류의 의식이 사랑에 꽃을 낙원에 꽃을 피울 수 있다.
이렇게 아리랑에 그 의미를 붙이고 매일 노래하며 다니던 중.. 어느 카페에서 ufo동영상을 보게 되었는데 그것이 마치 제가 계획하는 아리랑동산을 만들려는 계획 이미지를 뜻하는 것이 였습니다. (본인이 사진과 같이 생겨 습니다)


이에 힘을 얻어 저의 구상이 옳은 가보다 하고 실행하려는 시도를 해보았으나 방법이 깜깜한 밤이 었습니다.
그리하여 길을 찾아 헤매던 중 예언서를 풀이해보기로 하고 잘 알려진 격암유록을 풀이해보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주인의 메시지를 읽고 또 언 14년을 라엘의 가르침을 받으면서 터득한 혜안으로 글을 보니 격암유록의 전반적인 예언이 너무나 자세하게 기록되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더욱 놀라운 것은 등장하는 인물 중에 본인을 뜻하는 기록들에 선듯 믿기지가 않았습니다.
제가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 구세주. 반쪽 미륵불 이라니.. 놀라움을 금할 길이 없습니다. 라엘 깨서 현세한 미륵불이라 알고 있었는데 쌍 미륵 이라니 듣던 중 금시초문..
그래서 인터넷에서 자료를 찾아보니 아래의 사진이 있어 습니다 “쌍 미륵화”

어쩐지 라엘리안 활동을 하면서 라엘 성하 와 많이 닮았다는 동료들에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이것이 천명 하늘의 뜻이라면 나는 이미 따를 뜻이 언제 나 부 터 있었던 같습니다.
어린 시절 저의 형제들이 7남매인데, 그 중에 제가 4째입니다. 형제들 중에 제일 무녀리(못남)로 여겨졌으며. 하늘의 북두칠성을 바라보며 네 번째 별이 나의 별이구나, 잘 보이지도 안는 볼품없는 작은 별 그 네 번째 별을 나의 별로 삼았습니다. 허나, 여기서 보기에는 작고 흐릿하나 실은 가장 크고 빛나는 별일 것이다. 다만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서 작게 보일 뿐일 것이다. 라고 스스로 위안 했어 습니다. 무지하고 보잘것없는 자신을 알면서도 왜! 어떻게 그런 마음 이 생겨 났는지 그 이유를 이제야 알게 되었습니다. 뒤돌아보면 준비 되었던 것이 분명 합니다. 성경을 읽으며, 먼저 인자가 나중 되고, 나중 인자가 먼저 되리라! 꼴찌가 일등 되리라. 는 구절에 의미를 이제야 이해합니다.
호숫가에 두 사람과 함께 서 있는데 물에 비친 나의 그림자 에서만 부처의 휘황한 빛이 발한 이유를 이제야 알 것 같습니다……
인류의 창조주 아버지의 엘로힘의 사명을 받들어 인류를 무리 없이 은하권 문명으로 들어설 수 있도록 인도하여 나가겠습니다.

<쓰리 - 유마경 인봉을 풀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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