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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재홍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891년 - 1965년
  • 학력 1914년 와세다대학교 정치경제학 학사
  • 경력 제2대 국회의원
    미군정청 민정장관
    한성일보 사장
    1932년 조선일보 사장
  • 수상 1989년 건국훈장 대통령장

2014.12.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민세(民世) 안재홍(安在鴻)은, 1891년 12월 30일 경기도 진위(지금의 평택)에서 지주 출신인 아버지 안윤섭과 어머니 남양 홍씨 사이에 8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안윤섭은 대한제국 때인 1902년 혜민원 주사를 지냈지만, 스스로 사직서를 내고 고향 진위로 내려왔다. 아버지 안윤섭의 재산은 형 안재봉과 조카 안우용에게로 상속되었다. 어린 시절 안재홍은 근왕(勤王) 의식이 강했던 할아버지 안상규와 아버지 안윤섭의 영향을 받아 특별히 민족의식이 강했다고 한다.
민세는 열일곱 살 때 진위에 있는 사립 진흥의숙에 입학했고, 이어 수원의 미션계 학교로 진학한 후, 서울 경성 기독교 청년회(YMCA) 중학부에 입학했다. 기독교 청년회 중학부에 다니면서 그는 남궁억, 이상재, 윤치호 등에게서 많은 종교적, 사상적 영향을 입었다. 1910년 8월 여름 방학 때 진위에 내려와 있다가 한일 강제 병합 소식을 접하게 되었는데, 이때부터 민세는 생의 중요한 목표로 민족을 생각하게 되었다. 일제 강점기 때는 시대일보 이사, 조선일보 사장, 신간회 주역으로 활동했으며, 조선 어학회, 흥업 구락부 등에서도 커다란 활동을 했다. 일제 강점기 내내 사회단체와 독립운동, 칼럼 기고 활동을 벌였고, 그 외에도 사학자로서 고적지 답사, 어문 연구 등의 활동을 하기도 했다. 그리고 민세는 수필가로서도 폭넓게 활동했다.
안재홍은 1919년 3·1 만세 운동에 참여했고, 대한 청년 외교단을 조직해 상해 임시 정부와 연락하다가 체포되어 3년간 영어 생활을 했다. 1923년 시대일보 이사 겸 논설위원, 조선일보 사장 겸 주필로 활동하면서 송진우, 조만식, 이규완 등과 함께 물산 장려회에도 참여했다. 1925년에는 신간회 회원으로 가입해 활동하다가 8개월간 복역하기도 했다. 1936년 다시 임시 정부와 연락을 취하다가 2년간 투옥당했고, 1942년에는 조선 어학회 사건으로 또 1년간 투옥되었다. 이러한 투옥의 연쇄 속에서, 우리는 그가 민족 회복을 위해 얼마나 많은 활동을 했는가를 이해할 수 있다.
해방이 되자 민세는 건국 준비 위원회 부위원장과 한성일보사 사장 등을 맡았으며, 1946년에는 여운형, 김규식 등과 함께 좌우 합작 운동 활동 등을 전개했다. 1947년 2월 5일에는 미군정의 남조선 과도 입법의원 민정장관으로 임명되어 1948년 8월 15일까지 근무했다. 남북 협상에 상대적으로 소극적이었지만 남북 협상 실패 후 대한민국 정부 수립을 인정, 대한민국 국기 시정 위원회 위원 등으로 참여했다. 1950년 5월 제2대 국회 의원 총선거에 출마해 당선되어 국회 의원으로 활동했으나, 6월 25일 한국 전쟁 때 조선 인민군에 의해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으로 납북되었다. 북한에서 요청한 협조를 그는 거절했고, 이렇다 할 활동을 하지 않았다고 전해진다. 납북 이후 안재홍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재북 평통 최고위원으로 활동했다는 것만 알려졌을 뿐, 그 외에 구체적인 활동에 대해서는 알려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곳에서 그는 1965년 3월 1일 별세했다. 향년 75세였다.

<안재홍 수필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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