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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민아

    박민아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박사
    서울대학교 대학원 과학사 석사
    서울대학교 물리교육학과 학사
  • 경력 한양대학교 강사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교수

2015.02.0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마리 퀴리(Marie Sklodowska Curie, 1867~1934)
마리 퀴리만큼 유명한 여성 과학자가 있을까.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 최초의 노벨상 2회 수상자, 최초이자 유일하게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사람, 최초의 파리 대학 여교수. 이렇게 ‘최초’라는 영광을 장식품처럼 매달고 다니는 사람이 바로 마리 퀴리다.

하지만 ‘최초’라는 수식어는 그것을 이루기 위해 감내해야 했던 여러 어려움의 다른 표현일 수도 있다. 최초의 여성 노벨상 수상자라는 영광 뒤에는 여성의 대학 입학을 허가하지 않았던 고국 폴란드를 떠나 프랑스에서 이방인으로, 혹은 이방인 취급을 받으며 살아야 했던 어려움이 있었다. 러시아 치하에 있던 고국 폴란드의 독립을 갈망하고 최초로 발견한 방사능 원소에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폴란드를 사랑했던 폴란드인 마랴 스코더프스키는 과학을 공부하고 과학연구를 지속할 수 있었던 프랑스를 제2의 고국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으며 폴란드식 이름 대신 프랑스식 이름으로, 그리고 프랑스인 남편의 성을 따라 마리 퀴리로 알려지게 되었다. 노벨상을 두 번이나 받았어도 프랑스에서는 외국인으로 홀대받기도 했다. 1920년대 초 미국인들의 열광에 놀란 프랑스인들이 마리 퀴리를 ‘우리 프랑스인’으로 인정하기 전까지 그녀는 때로는 프랑스인, 때로는 폴란드인으로 이방인의 삶을 살아야 했다.
1903년 물리학 분야에서, 1911년 화학 분야에서, 이렇게 두 과학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은 최초의 여성이자 유일한 과학자−물리학에서만 두 번을 받거나 물리학상과 평화상을 받은 경우는 있지만, 서로 다른 과학 분야에서 받은 것은 퀴리가 유일하다−라는 타이틀 뒤에는 전문 분야가 아니었던 화학의 연구 방법을 익히기 위해 들였던 각고의 노력과 전문 분야인 물리학에서의 실력을 의심받기도 했던 아픔이 있었다. 1903년 방사능 복사에 대한 연구로 앙리 베크렐, 피에르 퀴리와 함께 노벨물리학상을 받았던 마리 퀴리는 1911년에는 라듐과 폴로늄 원소의 발견과 라듐의 분리 및 그 특성에 대한 연구를 인정받아 두 번째 노벨상인 노벨화학상을 수상했다. 이처럼 물리학과 화학 두 분야에서 노벨상을 받을 수 있었던 것은 마리 퀴리의 방사능 연구가 방사능 및 방사선에 대한 물리학적인 탐구와 방사능 원소에 대한 화학적인 탐구로 두 분야에 걸쳐 이루어졌고 두 분야의 실험 방법과 이론을 모두 사용하고 있었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하지만 피에르 퀴리와 공동 연구를 하면서 점차 피에르 퀴리는 주로 물리학적 탐구에, 마리 퀴리는 주로 화학 분석에 집중하게 되면서 여성인 마리 퀴리는 지적이고 이론적인 물리학적 분석에 약해 화학 분석의 허드렛일을 맡게 되었다거나 피에르 퀴리의 연구에 숟가락만 얹었다는 식의 폄하가 나오기도 했다. 파리대학의 수학 학사 시험을 2등으로 통과한 결과로 증명된, 마리 퀴리의 이론적 분석력은 무시되기 일쑤였다.
파리대학 최초의 여교수라는 영예 이면에는 노벨상으로 명성을 얻었음에도 남편이 죽은 후에나 남편의 교수 자리를 이어 받을 수 있었던 여성 과학자의 비애가 있었다. 1903년 노벨물리학상도 처음 명단에는 마리 퀴리가 올라가 있지 않았다. 마리 퀴리의 박사 논문으로 시작된 연구였고 몇 차례 단독으로 논문을 발표했음에도 불구하고 연구의 영예는 고스란히 피에르 퀴리의 것으로 인식되고 있었던 것이다. 피에르 퀴리가 노벨위원회에 요청을 한 덕에 마리 퀴리도 노벨상 명단에 이름을 올릴 수 있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1906년 남편이 죽을 때까지 그녀는 독립 연구자로서 크게 인정을 받지는 못했다.
최초로서의 여러 가지 어려움을 감내해야 했지만, 그렇다고 마리 퀴리가 그런 어려움에 조용히 쓴 울음을 삼키고 참기만 했던 연약한 사람은 아니었다. 마리 퀴리는 처음으로 발견한 방사능 원소에 폴로늄이라는 이름을 붙일 정도로 자신이 폴란드인이라는 것을 밝힐 줄 아는 자신감 있던 사람이었고, 피에르 퀴리의 조수로 인식되지 않기 위해서 자신이 한 연구가 무엇인지를 분명히 구분해서 밝힐 줄 아는 영리한 사람이었다. 또 1차 세계대전 중에는 방사능 진단 차량을 끌고 전장을 누비며 부상자들을 치료했던, 사회적인 일에도 적극적인 관심을 가졌던 사람이었다. 이런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과 적극성, 영리함이 최초로서 직면해야 했던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그녀를 최초의 자리에 올려놓았던 강인한 자질이 아니었을까.

역자 - 박민아
박민아는 서울대학교에서 물리교육을 전공하고 과학사 및 과학철학 협동과정에서 과학사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MIT 박사후연구원을 거쳐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연구교수를 지냈다. 과학사를 통한 과학대중화 및 과학교육에 관심을 갖고 있다. 지은 책으로 ≪뉴턴과 아인슈타인: 우리가 몰랐던 천재들의 창의성≫(공저), ≪뉴턴 & 데카르트: 거인의 어깨에 올라선 거인≫, ≪퀴리 & 마이트너: 마녀들의 연금술 이야기≫ 등이 있고 번역서로는 ≪논쟁 없는 시대의 논쟁≫(공역), ≪프리즘: 역사로 과학읽기≫(편역)가 있다.

<방사성 물질>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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