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진채
나는 1936년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김전동(金田洞)에서 태어났다.
북으로 대왕산 뻗어 내리고/ 앞 남산 학일봉은 반공에 솟아/ 명랑하고 장엄한 우리 김전교/ 울울창창 영골숲 맑은 앞 시내/ 이 학사 지난 역사 속삭이노라/ 모여든 사백여 씩씩한 건아/ 부지런히 배우는 우리 김전교
인용한 글은 당시 내가 다니던 김전국민학교의 교가다.
산골 마을의 정경이 잘 담긴 교가로, 나는 지금도 고향이 그리울 적마다 마음속으로 이를 되뇐다.
태어날 적부터 어머니의 팔자에는 내가 없다 하여 어머니는 나를 용왕에게 팔았고 주변 사람들은 나를 용왕의 아들이라 불렀다. 어머니는 보름날이나 명절에는 동네 앞 시냇물 가운데 놓인 큰 바위 옆에서 나를 데리고 용왕을 먹였는데 그럴 때마다 나는 색 헝겊이 둘러 쳐진 바위와 그 아래 시퍼렇게 맴도는 시냇물에 압도되어 부지런히 절을 올리고 좋은 사람이 되게 해 달라고 빌었다. 그 장소가 ‘고이방골’이라 간혹 내 작품의 소재가 되기도 한다.
초등학교 3학년 8월에 일제강점기에서 해방이 되었고, 그 혼란 속에서 한글을 익혔다. 언제나 읽을거리에 목말랐던 5학년 초입에 호기심 많던 나는 동네 형들을 따라 마을에서 30리나 떨어진 자인장(경북 경산군 자인면)에 갔다가 노점에서 ≪춘향전≫을 한 권 사 왔다.
‘진채가 자인장에서 춘향전을 사 왔다!’는 소문이 동네는 물론 학교까지 전해져서 어린 나이에 연애소설을 밝히는 놈으로 지독한 곤욕을 치른 경험이 있다. 이것이 훗날 동화작가나 소설가가 되리라는 일종의 암시가 아니었을까 하고 지금에 와서 생각해 본다.
중학교 재학 시절에는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을 밤새 눈물로 읽었던 기억이 있다. 그뿐만이 아니다. 밤새 책을 읽고 다음 날 충혈 된 눈으로 등교한 적이 한두 번이 아니었으니까. 세계 명작이나 한국 명작 소설에 푹 빠졌던 중학 시절이었다.
고등학교에 진학한 뒤 담임선생님이 시인이었기 때문에 나도 시와 시조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후 학교 백일장에 입상하여 ≪청마시집≫을 상품으로 받으면서 더욱 시에 심취하게 되었다. 당시에 학생 문예 지도를 겸한 잡지인 ≪학원≫지가 있어서 투고를 한 결과 1955년 시 <그 냇가에서>로 3회 추천을 완료하여 주변으로부터 시인 대우를 받았다. 2학년 말이었는데 당시에 기억에 남는 이들은 산문에 이재하 씨, 운문에 성종화, 유경환 제씨였던 것으로 기억이 된다.
1959년도에 교육공무원으로 발령을 받아 향지인 청도금천초등학교를 시작으로 10년간 경북 영일군 관내 초등학교에서 근무를 했다. ‘영일군 아동문예연구회’를 조직하고 초대 회장을 지내면서 관내 초등학교의 학생문예지도회 회원들과 함께 최선을 다했다. 당시 대구에는 경북아동문예연구협회가 있었는데 연구원의 김동극 회장이 도내의 지회들을 지원해 주었다. 나는 그런 일들로 인해 대구 출입이 잦았다.
1965년 가을에 첫 시집 ≪꽃밭≫을 김성도 선생의 추천으로 발간하고 문단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다. 김성도 선생은 연희전문학교를 나와 한국 최초로 ≪안데르센 동화집≫을 번역하신 분이다.
이어 1966년부터 1968년까지 ≪새교실≫지에 동시 <익을 때까지는>, <꽃눈이 텄다>, <누나야>가 3회에 걸쳐 이원수 선생에 의해 천료가 되었다. 이후 1980년대 초등학교 4학년 1학기 국어 교과서 <바닷가에서>란 동시가 수록되었고 작곡이 되어 KBS ‘우리들의 새 노래’로 뽑혀 가수 문정선에 의해 전파를 타기도 했다.
내가 소설 공부를 정상적으로 한 것은 아무래도 대구 ≪영남일보≫ 신춘문예에 1967년부터 1970년까지 4년 동안 연달아 <오리감나무>, <옹달샘 둘레의 이야기>, <감꽃이 필 무렵>으로 당선 없는 가작을 세 번 하고, 네 번째 <그 양옥집>으로 당선을 하기까지 그 피 말리는 과정을 겪었기 때문이라는 생각을 한다.
당시에 문화부장이었던 전경화 여사는 나에게 신춘문예에서 세 번이나 연속으로 당선 없는 가작이라도 했으면 당선이나 마찬가지니까 그만해도 된다고 만류를 했다. 나는 가작은 열 번을 해도 가작일 뿐이라고 대답했고 드디어 다음 해에 당선이 된 것이었다.
1970년엔 부산으로 전근을 했고, 동화에 몰두한 결과 197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동화 <연밥>으로 당선했다. 그해 가을 부산의 원로 이주홍 선생과 조유로 선생을 고문으로 추대하여 부산아동문학회를 창립하고 초대회장을 역임하면서 회지 ≪부산아동문학≫을 창간했고 회장직을 연임하면서 부산 아동문학 발전에 힘썼다.
1988년 교직에서 물러나 ‘꽃사슴 독서 교실’을 열고 어린이 독서 지도를 시작하였다. 독서 교실이 활기를 띠자 모자분들의 요청으로 ‘부산여성문예대학’을 설립하여 동화, 소설, 수필, 시 등의 강좌도 함께 열었다. 현재 25년째 뒤를 이어 ‘부산문예대학’을 경영하며 300여 명의 문인을 배출했다.
1990년에 아동독서교실의 강의록을 묶어 빛남출판사에서 ≪아동독서지도법≫을 출간했다. 2010년대에 이 책은 부산교육대학과 광주교육대학의 교재로 선택이 되기도 했다.
1990년은 전국에서 처음으로 동화만을 다루는 잡지 ≪동화문학≫을 창간한 해다. 이재철 박사의 ‘동화문학 창간의 의미’란 축사를 요약해 본다.
첫째, 전문지 전문화 시대를 열었다.
둘째, 전문지가 전문가에 의해 나오게 되었다.
셋째, 전문지의 지방화 시대를 열었다.
나는 창간사에서 이렇게 소신을 밝혔다.
“어른들이 바쁜 일상에 쫓겨 미처 살펴보지 못하는 동안에 어린이들은 저질 상업 출판의 홍수에 떠밀리고 있다. 이러한 시점에서 조국의 내일을 열어 갈 어린이들에게 순수한 창작 동화를 읽게 하여 믿음과 용기와 사랑을 심어 주고 꿈과 슬기와 애국심을 기르며, 한국 동화 문학의 위상 정립을 위하여 기여하고자 이 책을 창간하게 되었다.”
이렇게 창간한 ≪동화문학≫은 7년 만에 IMF라는 장애를 넘기지 못하고 발행이 중단되었다. 안타까운 일이다.
아동문학에 대한 평론은 1977년부터 1988년까지 10여 년 동안 계속해서 계간 ≪아동문학평론≫지에 발표해 왔다. 1989년 가을에 그동안 발표한 평론을 모아 ≪80년대의 한국동화문학≫을 빛남출판사에서 간행하게 되었다. ‘한국동화문학 10년의 흐름’이라는 제하의 머리말을 그 일부만 소개한다.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 동화 문학은 명실공히 환상과 현실의 아름다운 융합에서 빚어지는 독특한 문학 양식으로 크게 소년소설과 장르를 달리하면서 정리기를 맞이한 것이다. 나는 이 정리 기간에 동화와 소설의 평을 10여 년 써 오면서 나름대로 미력이나마 이 나라 동화 문학을 위하여 일을 해 왔다고 생각한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36년 경상북도 청도군 금천면 김전동 출생. 본명 정한길.
1965년 시집 ≪꽃밭≫(중외출판사) 출간.
1972년 동화 ≪연밥≫(아성출판사) 출간.
1974년 동화 ≪산소녀≫(아주출판사) 출간.
1976년 동화 ≪무화과 이야기≫(아동문예사) 출간.
1979년 동화 ≪반디야 반디≫(계림출판사) 출간.
1980년 동화 ≪꿈꾸는 산≫(문화교육원) 출간.
1982년 동화 ≪호금조 이야기≫(교음사), ≪용왕삼국지≫(광문출판사), ≪운문산의 별≫(아동문학사) 출간.
1984년 동화 ≪사랑의 새≫(금성출판사), ≪아기산새와 꽃사슴≫(겸지사) 출간.
1985년 동화 ≪하얀 꽃사슴≫(아동문예사), ≪남해바다 이야기≫(아동문예사), 소설집 ≪초록빛 태양≫(한국서적공사), ≪그해 여름 빈지늪≫(동아일보사) 출간. 동화 <하얀 꽃사슴>으로 대한민국문학상 수상. 한국아동문학인협회 수석부회장 역임.
1986년 동화 ≪콩팥장군≫(계몽사), 소설집 ≪황금열쇠의 비밀≫(한국서적공사) 출간.
1987년 동화 ≪관유와 돌각시≫(문학세계사), ≪몸빛≫(대교문화), 동시집 ≪바닷가에서≫(도서출판 시로), 동화 ≪덕보 이야기≫(견지사) 출간.
1989년 동화 ≪흰 매미≫(아동문학사), 평론 ≪80년대의 한국동화문학≫(빛남) 출간.
1990년 동화 ≪할아버지와 비밀지도≫(을유문화사, 공저), ≪꽃사람 이야기≫(아동문예사), 수필집 ≪아직도 못다한 이야기≫(도서출판 화술, 공저) 출간.
1991년 동화 ≪동해바다 왕국≫(윤성) 출간.
1992년 동화 ≪오늘 밤의 별을 기억할 거야≫(예림당), 이론서 ≪누구나 동화를 쓸 수 있다≫(빛남) 출간.
1993년 동화 ≪눈썹만 보이는 할배≫(빛남), ≪팔랑이의 한가위≫(윤진문화사) 출간.
1994년 동화 ≪소리를 먹는 열매≫(관음출판사) 출간.
1995년 동화 <팔랑이의 한가위>로 제5회 방정환 문학상 본상 수상.
1996년 동화 ≪내가 만난 초록사람≫(아동문예사), ≪꿈꾸는 낙하산≫(위스덤미디어) 출간. 아세아아동문학학회 공동 부회장으로 역임.
1997년 동화 <무화과 이야기>로 제3회 한국아동문학상, 부산광역시 문화상(문학 부문) 수상. 서울세계아동문학대회 부대회장으로 역임.
1998년 동화 ≪현이와 꽃귀신≫(여명출판사), 수필집 ≪가을산조≫(대산출판사) 출간.
1999년 이론서 ≪현대동화 창작법≫(빛남) 출간.
2000년 평론 ≪80년대의 한국동화문학≫으로 한맥문학 대상(평론 부문) 수상.
2001년 부산광역시 문인협회 회장으로 역임.
2002년 동화 ≪바위나라로 간 폰테추장≫(영림카디널), 시조집 ≪귀뚜라미≫(대산출판사) 출간. 한국바다문학회 초대회장으로 역임. 기관지 ≪바다문학≫ 창간. <세 바다 이야기>를 오래전부터 기획하여 지금도 집필 중.
2004년 동화 ≪꽃지와 금붕어≫(한국헤밍웨이) 출간.
2005년 동화 ≪은방울 이야기≫(아동문예사) 출간.
2006년 수필집 ≪앵초꽃 사랑≫(삼아출판사) 출간.
2010년 시집 ≪모과≫(삼아출판사) 출간.
2011년 소설집 ≪주모시대≫(삼아출판사) 출간.
2012년 동화 시집 ≪눈에 관한 명상≫(삼아출판사) 출간.
해설 - 이성천
1968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에서 현대문학을 공부했고, 동 대학원에서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2002년 ≪중앙일보≫ 중앙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에 <알리바바의 서사, 혹은 소설의 알리바이>가 당선되어 평론 활동을 시작했다. 이후 ≪시, 말의 부도(浮圖)≫, ≪위기의 시대와 글쓰기≫, ≪한국 현대소설의 숨결≫,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 ≪한국 소설의 얼굴≫(전 18권) 등의 저서 및 공저를 출간했으며, 계간 ≪시와시학≫, ≪시에≫, ≪시와사람≫ 등의 문예지 편집 위원으로 활동하고 있다. 현재는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객원교수로 재직 중이다. 제10회 젊은 평론가상과 제17회 시와시학 평론상을 받았다.
<정진채 동화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