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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성유

    장성유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8년
  • 학력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박사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 경력 세계아동문학대회 부집행위원장
  • 수상 2008년 방정환문학상

2015.02.0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장성유
나는 1968년 경남 산청 신등면 지리산 골짜기에서 태어났다. 어머니가 합천에서 걸어서 걸어서 함진아비 따라 들어오실 때, ‘언제 이 골짜기를 다시 나갈까’라는 생각을 하셨다고 한다. 그만큼 첩첩으로 깊은 산골짜기였다.
어머니는 스물두 살 때 나를 낳으셨다. 입덧이 심한 탓에 겨우 풀 낱을 뜯어 먹으며 지내셔서, 막 태어난 나는 살이 아주 쪼글쪼글 붙어 있었다고 한다. 내가 살던 집은 요즘 전설에나 나올 법한 세 칸 초가집이었다. 넓은 마당 저쪽에는 대나무 숲이 있었다. 집에 돼지 축사가 붙어 있고 거기에 새까만 똥돼지를 키웠다. 또 다른 옆방에는 시집 안 간 고모가 지냈고, 나는 할머니와 단둘이 한 방에 살았다. 아버지가 부산 라디오 공장에 일하러 내려가시고 얼마 뒤 어머니도 내려가셨다.
할머니랑 둘이 살면서도 외로운 것을 몰랐다. 동네 언니 오빠들을 따라서 산 능선을 뛰어다니며 진달래꽃을 꺾고 여름에는 물레방아 옆 봇도랑에서 물 헤엄을 치고 놀았다. 어른들은 깎아지른 흙 절벽에서 칡뿌리를 캐내고 모두 모여 감탄하던 그런 시절이었다. 꽤 깊은 소(沼)도 있어서 어른들은 그 시퍼런 물에 석회를 풀어 물고기도 잡았다. 오빠들은 바위에 올라가 소를 향해 몸을 거꾸로 풍덩 던졌다.
자연 세계의 신비스러운 비밀과 거대한 힘을 느끼곤 했다. 나는 오로지 자연의 일부였으며, 그 세계와 조금도 불화가 없었다. 기억하고 있는 내 최초의 꿈은 그 시퍼런 소의 밑바닥에 들어가 자갈을 더듬으며 노는 것이었다. 이때의 내 유년기 체험은 30여 년이나 뒤에 쓰게 될 장편 환상 ≪마고의 숲≫에 스며들었다고 생각된다.
그런데 1972년 내가 다섯 살 때, 우리 마을에 큰 물난리가 났다. 계곡은 며칠 동안 시뻘건 황토물이 흘러내렸다. 징검다리는 잠겨 버렸고, 물 건너에서 사람들이 마을로 건너오지 못해 발을 동동거리며 서 있던 것이 생각난다. 이 난리에 우리 윗집 할머니가 죽는 사건이 일어났다. 윗집 할머니는 집을 고쳐 주던 애꾸눈 할아버지와 말싸움 끝에 그만 대청마루에 쓰러지고 말았다. 해가 지고 날이 어둑어둑해질 무렵,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 나와 있는 틈에 나도 끼어 있었다.
홍수가 끝나고 애꾸눈 할아버지가 그 할머니를 등에 업고 징검다리를 건너오던 장면이 아직도 기억에 선하다. 이 사건은 다섯 살 어린아이에게 삶과 죽음에 대한 풀지 못할 고민을 안겨 주게 되었다. 그때 어린아이의 눈에는 애꾸눈 할아버지가 할머니를 죽인 것으로 비쳤다. 그런데 어째서 그 애꾸눈 할아버지가 할머니의 주검을 등에 업고 마을 사람들 앞장에서 징검다리를 건너오는 것일까…. 어린아이는 밤이 깊도록 그 생각을 했다. 그 후에도 자주자주 그 사건을 떠올리며 나름대로 사건의 정황을 추리하곤 했다.
이 불가해한 사건은 내 유년기의 깊은 기억으로 가라앉았다. 나는 늘 삶의 현실적 문제보다는 인간이 처한 본질의 문제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그런 문제에 해답을 얻을 수 있는 깨달음을 동경했다. 조숙했던 탓인지, 다른 아이들이 하이틴 로맨스에 열광할 때 나는 애당초 그런 것에는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17세 때 플라톤, 칸트 같은 철학에 손을 대기 시작했다.

최초의 문학 체험은 어머니의 시 공책

그림도 제법 잘 그려서 초등학교 1학년 때의 장래 희망은 화가였다. 우리 집에는 책도 없었고, 읽을 만한 명작도 없었다. 그런 것을 사 들여놓을 만큼 집안 형편이 넉넉하지도 않았다. 나는 그저 동무들과 집 밖에서 뛰어놀 뿐이었다. 교과서 말고는 따로 읽을 것이 없었다.
그런 나에게 최초로 다가온 문학은 바로 어머니의 시 공책이었다. 해 질 무렵이었다. 놀 거리가 없어서 장롱 뒤지기를 하다가 서랍 속에 묻혀 있던 어머니의 시 공책을 발견했다. 그것을 펼쳐 보려고 공책에 손을 대는 순간 심장이 뛰고 손이 떨렸다. 한 장 한 장 넘겨 읽을 때 어린 나이의 나에게도 아주 좋아 보이던 시 몇 편이 있었다. <옥수수>라는 시가 가장 인상이 깊었다.

난간에 싹이 튼 나의 운명을
내 하나 생애를 위해
저 해는 가지만
넓고 긴 나래를 펴고
옷깃은 우러도
한 가닥의 그리움은 사방을
손짓한다.

난간에 서 있는 옥수수의 절박한 심정과 아득한 그리움의 세계를 노래하고 있었다. 불과 아홉 살에 지나지 않는 조그만 아이였지만, 나는 옥수수가 처해 있는 절절한 그리움의 세계를 알 것 같았다. 그것은 바로 어머니의 운명을 옥수수라는 화자를 빌려 표현한 시였다. 그 시 공책의 시들은 어머니가 열아홉 살 처녀 때 쓴 거라고 한다.
어머니는 시재(詩才)가 아주 뛰어났던 분 같다. 집 앞에 고등어 장수가 ‘고등어 사려’ 하고 지나가면 시인에게는 그 고등어가 ‘시’가 된다는 말씀도 하셨다. 초등학교 3학년 때였다. 어머니는 마루 가운데에 널찍하게 깔린 신문지 위에 콩나물을 태산같이 쌓아 놓고, 모두 모여 콩깍지를 까자고 우리 자매들을 불러 모으셨다. 어머니는 딸을 다섯이나 줄줄이 낳으셔서 우리 집은 ‘5공주 집’으로 통하고 있었다. 내 아래로 여동생이 넷이나 있었다. 제일 꽁당뱅이 동생 둘은 아직 젖먹이여서 세 자매가 둘러앉아 어머니와 콩깍지를 까고 있었다. 아침 햇살이 마루 끝을 쪼이던 기억이 난다. 갑자기 어머니가 종이 한 장을 갖고 오라고 하셨다. 내가 눈치 빠르게 일어나 공책을 한 장 찢어 왔다.
어머니는 그 종이를 마루 위에 펼쳐 놓고 연필로 쓱쓱 시를 써 나가셨다.

아버지가 꺾어 오신 콩깍지 위에
사르르 떨어지는 노란 은행잎
사뿐사뿐 나비 되어 날아안지네

할머니가 걷어 오신 목화 단 위에
하얀 눈송이가 솟아났구나
파란 목화 열매 시들고 나면
무얼 따 먹으라고 들에 갈거나

개울가 모래 위에 둥근 얼굴,
귀 두 개 그려 넣고
두 눈썹은 버들잎으로 침 발라 붙였건만
눈과 코, 입은 무얼로 만들까?

어디 한 자 고치거나 깊이 생각하는 것도 없이 단숨에 써서 주셨다. 그 시는 내 차지가 되었다. 어찌 그리 쓱쓱 생각이 풀어 나오는지 그런 어머니가 마냥 부럽고 존경스러웠다. 비록 콩깍지를 까며 쪼그리고 앉아 계셨어도 어머니는 늘 맑고 순수했던 어린 시절의 동경을 잃지 않으셨던 것이다.
얼마 뒤 우리 집 책장에 ≪소년소녀 세계 문학 전집≫(계몽사) 50권이 채워졌다. 그리하여 ≪피노키오≫, ≪피터팬≫ 등 많은 명작 아동문학을 접하게 되었던 것은 참 다행한 일이었다. 중학교 때는 이광수의 ≪흙≫, 심훈의 ≪상록수≫, 브론테 자매의 ≪제인 에어≫와 ≪폭풍의 언덕≫, 도스토옙스키의 ≪죄와 벌≫, 토머스 하디의 ≪테스≫ 등을 읽었다. 또 부산 주례 고모 댁에는 남색 하드커버의 문학 전집이 꽂혀 있었는데, 갈 때마다 한두 권씩 빌려 와서 읽곤 했다. 그러고는 돌려주지 않고 내 책꽂이에 그대로 남겨 두었다. 그때 내게 가장 어려웠던 책은 카프카의 ≪성≫으로 기억된다. 우선 왜 주인공을 ‘K’로 했는지 그것부터 굉장한 의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이리저리 난삽한 중에서도 ‘문학’이라는 성지를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왔던 것이다.

운명처럼 준비되었던 동화작가의 길

대학에서 학생들에게 아동문학을 가르치고 있는 요즘 생각해 보면, 내가 대학 다니던 시절에 아동문학을 진작 만날 수 있었다면 얼마나 좋았을까 싶기도 하다. 좀 더 영민한 시절에 아동문학을 만나서 시작했더라면…. 다니던 부산대학교의 학풍은 김영송 교수의 국어학, 김준오 교수의 시론 수업이 대단했다. 창작 기풍은 얕았으며 일부에서는 경시 풍조마저 없지 않았다.
그 틈에 국문과 안에서는 소설 동인 ‘우듬지’라는 것이 만들어졌다. 나도 끼어서 선배들과 열띤 토론에 참가했다. 우리들은 돌아가며 자기의 창작 소설을 써 가지고 와서 합평 시간을 가졌다. 그때 나의 작품에 대한 여러 선배의 충고들이 있었는데, 그중에 기억에 남는 평은 교훈성이 짙다는 것이요 동화 같은 분위기라는 것이다. 대학 시절에는 소설보다 주로 철학을 탐독했다. 크리슈나무르티의 명상 서적과, 노장 사상 같은 동양철학에 특히 관심이 깊었다. 수십 권 시리즈를 다 읽고 나서는 서양철학으로 옮겨 키르케고르부터 시작해 마르크스에서 쇼펜하우어까지 갔다. 그럴수록 내 얼굴에서 늘어나는 것은 시커먼 그늘뿐이었다. 아무런 깨달음이 없었다. 거기에는 나를 후려칠 만한 스승도 보이지 않았다.
그 시절 조세희, 황석영, 이문열, 이청준, 강석경, 문순태, 이호철, 조정래 등이 작가 지망생의 선망의 대상이었다. 그중에서도 나는 이청준의 문학에 퍽 깊은 호소력을 느꼈다. 딴에는 혼자 도서실에 파묻혀 <이청준 문학의 구원 의식>이라는 것을 혼자 힘으로 작성해서 학사 논문으로 제출한 기억이 선하다.
내가 막연히 동화 세계에 대해 눈을 뜨게 된 것은, 1995년 미하엘 엔데의 ≪모모≫라는 작품을 읽으면서부터다. 동화라는 것이 비단 아동 시기에 한때 읽히는 문학이 아니라, 인류가 닥친 현실을 진단하고 비판하며 새롭게 빛을 던질 수 있는 굉장한 철학의 문학이라는 인식의 전환이 있었다. 그때부터 동화 습작이 시작되었다. 스승도 없었고, 지도해 줄 만한 동화 교실 같은 것도 없었다. 다만 그때 나에게는 어린이가 있었다. 잠깐 소일로 시작했던 어린이 글쓰기 지도였다.
1995년 어느 날, 어린이야말로 나의 진정한 스승이다… 하는 깨달음이 찾아왔다. 새로운 것을 더 찾아 나설 것이 아니라, 이미 잊어버리고 있거나 잃어버린 자기의 세계를 다시 회복하는 것이야말로 참된 깨달음에 이르는 길이었다. 그 세계는 가장 완전한 것으로 이해되는 순수 동심의 공간이었다. 내가 처음 마주친 ‘어린이의 세계’는 너무도 낯설었다. 그 낯선 체험이 나를 당황하고 놀라게 했다. 내가 틀림없이 거쳐 왔던 세계이지 않은가! 그 세계로부터 너무나 멀리 와 버린 자신을 깨달았다. 어린 시절의 완전한 세계를 점점 부수고 하나하나 조각내면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네 삶이었다. 어린이는 통합적 사고와 통합적 감각을 그들의 생활로 즐기고 있었다. 그들의 웃음과 슬픔은 서로 연결되면서 한데 뭉치고 서로 어울린다. 그러나 이미 어른은 쪼개고 나누는 일에 길들여져 울고 웃는 감정 역시 어떤 특정한 사건에 재단해 맞춤 제작되는 식으로 이루어진다. 나의 길은 이제 내 안의 잃어버린 어린이의 세계를 되찾아 가는 일이었다.
하루에 한 편씩 습작을 해 나갔다. 그 교실의 사방에 둘러싸여 있는 책장의 아동문학을 모두 섭렵했다. 그때는 누구의 작품인지도 모르고 마구잡이로 읽었는데, 지금 떠올려 보면 마해송, 강소천, 최효섭, 이준연… 한국 아동문학가의 작품 시리즈를 정신없이 소화하고 있었던 것이다. ≪뉴스피플≫이라는 잡지에 <문화기행>을 연재할 때는 어떻게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자연과 역사를 동화와 접맥시켜 볼 것인지 고민했다. 그 시절에 오세발 동화작가를 처음 알게 되었다. 그분에게 그동안 습작한 원고 뭉치를 조심스럽게 내밀며 읽어 봐 주십사 청탁했다. 한동안 아무런 소식이 없었다. 잊고 지냈다.
그러다가 몇 달 뒤 내 작품이 ≪아동문학평론≫에 투고되어 당선되었다는 황당한(?) 소식을 알게 되었다. 이만하면 됐다 싶으셨던지 오세발 선생께서 대신 투고를 하셨던 것이다. 내가 투고하지 않을 것을 지레 짐작하시고 하신 일이었으리라! 당선 소식을 듣고 처음에는 어리둥절했다. ‘어떻게 내가 생전 듣도 보도 못한 잡지로 등단을 해 버린 거지?’ 솔직히 이런 심정이었다.
그러나 그것이 운명이라면 운명이었다. 오늘날 한국 아동문학가 중에서 제 작품을 투고도 하지 않은 채 당선된 사람은 아마 나뿐일 것이다. 그런 사정으로 나는 습작의 시기에 당선되었다는 생각을 가지며 섣불리 책을 내지 못했다. 10년 정도 습작기를 갖기로 스스로 다짐했다. 대신, 사계 이재철 선생 곁에서 아동문학을 배우면서 여러 가지 굵직한 아동문학 사업들을 열심히 도왔다. ≪아동문학평론≫ 잡지 만드는 일, ‘한국아동문학학회’를 꾸리는 일, ‘국제아동문학관’ 건립을 추진하는 일, ‘세계아동문학대회’를 개최하는 일…. 창작으로 봐서는 외방적인 사건이었지만 한국 아동문학을 위해서는 꼭 필요한 사업으로 여기며 적으나마 소임을 다했던 것이다.
등단 10년째에 나는 이제 ‘습작’의 꼬리표를 떼고 기다리고 기다리던 처녀작을 출판했다. ≪마고의 숲≫! 처녀작치고는 상당한 볼륨이었다. 오래전부터 쓰고 싶었던, 커다란 거인 ‘마고’가 주인공이 되는 동화를 마침내 탈고해 세상에 내놓게 된 것이다. 처음 기획할 당시에는 전체 ‘아홉 세상 이야기’로 구성했으나, 우선 그 첫 번째 세상 이야기를 꾸려서 내었다. 집필 당시 28일간 ‘침묵 수행’ 하면서 방의 한쪽 벽면에는 커다란 ‘비밀 지도’를 걸어 놓고 풀리지 않는 대목을 구상하기도 했다. 우리 어린이가 이 작품을 읽어 나가며 마지막 한 장을 넘길 때 마침내 또 한 사람의 진정한 ‘거인’으로 새롭게 태어나 주었으면 하는 간절한 소망을 담았다.

환상 동화는 내가 그리는 ‘또 다른 현실’의 지도

등단 당시부터 나는 환상 동화의 창조에 힘을 기울였다. 공교롭게도 실험적 문체의 작품 여러 편을 오세발 작가에게 보였지만, 뜻밖에 당선된 작품은 다름 아닌 판타지였다. 그때부터 판타지에 적성이 있는 것을 알고 환상 동화를 써 나갔다.
판타지 역시 ‘현실의 기초공사’다. ‘비현실의 세계’ 또한 ‘또 다른 현실’의 진실로 받아들이며 ‘현실’의 이면을 들추어낸다. ‘존재’하는 현실에서 ‘존재해야’ 하는 현실로 나아가려는 강렬한 충동으로 인해 어떤 면에서 판타지는 ‘현실’에 대한 강한 불만의 표시이기도 하다. 인간은 누구나 현실과 이상 사이에서 갈등하기 마련이다. 그 갈등의 줄다리기는 늘 팽팽하게 긴장되어 있다. 그러나 이상이 아무리 높더라도, 현실이 비참하고 비루하더라도, 판타지는 그 이상과 현실의 관계를 조화롭게 연결시키는 방법을 찾아 준다. 판타지에는 현실과 비현실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중간 지대−고리’가 있다. 그런 중간 지대는 이상과 현실의 충돌을 조율해 주는 완충지대 같은 것이다. 본질적으로 판타지는 현실을 전복하며 혁명을 해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또 다른 세계’는 현재의 복사판이 아니라, 현실에서 이루어지지 못한 ‘미래의 현재’를 재현시킨다. 그러한 미래를 미리 가져와서 보여 주는 것이야말로 판타지가 담당해야 할 몫이라고 생각한다.
이러한 것은 등단부터 지금까지 갖고 있는 판타지에 대한 나의 기본 생각이다. 나에게 판타지는 ‘또 다른 세계’의 지도 그리기다. 늘 ‘또 다른 세계’를 갈망하고 그것을 실현시키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다. 지금 내 눈앞의 세계만 있다면 이 세계는 얼마나 심심할까? 이런 엉뚱한 생각…. 어딘가에 숨어 있는 그런 보이지 않는 세계를 동화적 상상력으로 끄집어내어서 서로 나눠서 보고 즐길 수 있는 것… 그리고 그 세계에서 마음껏 즐겁게 뛰어놀 것!
나의 동화 문학은 이제 출발점에 서 있다고 생각한다. 새로운 변화가 내 앞에 와 있다. 그러한 꿈틀거리는 느낌을 받아들이며… 이만 쓰기로 한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68년 경남 산청에서 출생.
1991년 부산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졸업.
1998년> ≪아동문학평론≫에 단편 동화가 당선되어 등단.
2000년 국제아동문학관 건립 운동 시작.
2002년 과천시에 국제아동문학관 건립 기초 예산을 통과시켰으나 새 시장의 선출로 어린이 사업이 백지화되자, 1인 시위를 하며 어린이들과 77일간의 행진을 이어 감.
2005년 고(故) 사계 이재철 선생을 도와 ‘한국 아동문학 100년사 희귀 자료 전시회’ 개최. 그림책 ≪열한 그루의 자작나무≫(헤세), ≪디딜방아 쿵더쿵 아저씨≫(삼성비엔씨) 출간.
2006년 고(故) 사계 이재철 선생을 도와 ‘제3차 서울 세계아동문학대회’ 개최.
2008년 장편 환상 동화 ≪마고의 숲 1·2≫(현암사) 출간, 방정환문학상 수상.
2009년 <소파 방정환의 장르 구분 연구>로 석사 학위 받음.
2010년 ≪물레방아 둥글랑의 꿈≫(삼성비엔씨) 출간.
2011년 <골동품 가게 주인 득만이>로 율목문학상 수상. ‘제11차 동경 아시아아동문학대회’에서 ‘한국 아동문학의 밤’(동경 워싱턴 호텔에서)을 주관해 한국 아동문학 작가의 국제 교류에 힘씀.
2013년 고려대학교 대학원 국어국문학과 졸업. <소파 방정환 문학 연구>로 박사 학위 받음.
현재 ≪아동문학평론≫ 편집 위원, 제3차 세계아동문학대회 부집행위원장, 고려대학교와 서울예술대학교에 출강.

해설 - 고인환
1969년 경상북도 문경에서 태어나 예천에서 자랐다. 경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및 동 대학원을 졸업했다. 2001년 ≪중앙일보≫ 신인문학상 평론 부문을 통해 등단했다. 2006년 한국문학평론가협회에서 수여하는 제7회 젊은평론가상을 받았다. 저서로 ≪결핍, 글쓰기의 기원≫(2003), ≪이문구 소설에 나타난 근대성과 탈식민지성 연구≫(2003), ≪말의 매혹: 일상의 빛을 찾다≫(2005), ≪공감과 곤혹 사이≫(2007), ≪한국문학 속의 명장면 50선≫(2008), ≪한국 근대문학의 주름≫(2009), ≪작품으로 읽는 북한문학의 변화와 전망≫(공저, 2007) 등이 있다. 현재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 칼리지 부교수로 재직하면서 재미있고 알찬 글을 읽고 쓰기 위해 학생들과 고민하는 한편, 한국작가회의 산하 민족문학연구소에서 민족문학, 비서구 문학, 동시대 한국문학 등에 관심을 가지고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장성유 동화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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