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유여촌
교단 작가인 유여촌(柳麗村)은 50대 초반 비교적 늦은 나이에 등단해 20년도 채 안 되는 기간 동안 열 권의 동화선집과 몇 권의 창작집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그리고 환상적인 시적 문체와 자연과 합일된 의인화 동화로 문단의 주목을 받으며 열정적인 창작혼을 불태우다 69세를 일기로 서울에서 별세했다.
그는 1912년 4월 18일 경북 안동군 풍남면 하회리 731번지(현재 안동시 풍천면 하회리)에서 출생했다. 본명은 운생(云生)으로 4남 2녀 중 장남으로 태어나 하회마을 앞 낙동강가를 놀이터로 성장했다. 그가 태어나고 자란 하회마을의 멋진 풍광은 훗날 그가 동화를 쓰는 데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으리라 짐작된다.
그가 쓴 수필집 ≪도루묵 교장≫의 <왕릉과 장미열차>를 보면 하회마을에 대한 추억이 나온다. 자신은 강변이 가까이 있는 곳에서 자랐고, 강기슭의 우거진 솔숲에는 솔방울과 낙엽이 쌓여 있었다는 것이다. “막 겉날개가 피기 시작하는 솔방울일수록 토실한 솔씨가 날갯죽지 한 칸 한 칸에 싸여 있었다. 쌀알 크기의 솔씨가 투명한 엷은 날개를 달고 있었다. 날개를 제거하고 솔씨를 입에 씹으면 고소한 솔씨 특유의 향기가 입 안에 감돈다.” 유여촌은 이처럼 부용대를 끼고 흐르는 낙동강 상류 따라 솔향기 흩어지는 하회마을의 자연을 만끽하며 자라났다.
중요민속자료 제122호로 지정된 안동 하회마을은 풍산 류씨가 600여 년간 대대로 살아온 한국의 대표적인 동성마을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대유학자인 겸암 류운룡과 임진왜란 때 영의정을 지낸 서애 류성룡 형제가 태어난 곳으로도 유명하다.
그는 15세인 1927년 하회리에 위치한 풍남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야학을 열어 마을 어린이들에게 한글 공부를 시켰다. 1929년 대구사범학교에 입학하여 문학 서적을 탐독하는 등 문학에 뜻을 펼쳤다. 1학년 때에 ≪어린이≫지에 단편소설을 투고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
20세 때인 1932년 이순학(李順鶴)과 대구에서 혼인해 이듬해에 장남 병락(炳洛)을 낳았다. 1934년 대구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전북 남원군 운봉보통학교에 발령을 받아 교직의 길을 걷게 된다. 이 무렵 ≪은하철도의 밤≫으로 유명한 일본의 동화작가 미야자와 겐지(宮澤賢治)에 심취되어 그의 동생인 미야자와 세이로쿠(宮澤淸六)와 편지도 주고받았다.
1936년 장남 병락이 뇌막염으로 발병 한 달 만에 사망하자, 삶에 회의를 느껴 불교 서적을 탐독하기도 했다. 이 무렵 ≪닛뽕가이시진(日本海詩人)≫이라는 잡지의 편집동인으로 활동했으며 차남 걸호(杰浩)가 출생했다.
1938년에는 경북 상주군 함창면 동부심상소학교로 전근했고, 매일신보사에서 발행하던 ≪매신순보(每申旬報)≫에 일본어 소설 <산협의 서광(山峽의 瑞光)>을 응모하여 당선됐다. 이 무렵 ≪시진지다이(詩人時代)≫와 ≪닛뽕가이시진≫의 편집 동인이 되었으며, ≪경성일보≫에 수필을 기고하기도 했다. 이해에 3남 영호(榮浩)를 낳았다.
1940년 향리에서 가까운 안동군 풍북심상소학교로 전근해 방학 때는 아동극단을 이끌고 인근 지방 순회공연을 했다. 1941년 태평양 전쟁 중에는 일시 교직에서 물러나 하천부지를 개간하는 등 농업에 종사했다. 이해에 장녀 연자(燕慈)가 태어났고, 1944년에는 차녀 덕자(德子)가 출생했다.
1945년 해방을 맞아 교직에 복귀해 미군정청 학무과에 근무하게 되었고, 이듬해에는 학무과 성인교육계장이 되었다. 1947년에 3녀 미자(美慈), 1949년에 4남 명호(明浩), 1952년에 4녀 난희(蘭熙), 55년에는 5녀 애라(愛羅)가 출생했다. 1952년에는 대구초등학교 분교사 주임, 1955년에 남산고등학교 강사, 1963년 지금은 폐교된 문경군 생달국민학교 교장이 되었다. 그는 이 학교에 부임하며 아동문학에 뜻을 두고 여러 편의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그가 교장으로 첫 부임한 생달국민학교는 주로 화전민촌 아이들이 다니는 학교였다. 그가 쓴 <나의 문학 수업>에 따르면 생달국민학교는 “깎아지른 험한 기슭에 위치하고 있는 데다 밤이면 짐승 소리가 바로 코앞에서 들리듯 선명해 화장실 다니기도 힘들었다. 이런 학교의 위치 덕분에 재임 기간 동안 많은 글을 쓰게 되었다”고 술회한다.
그는 지극히 가난하게 사는 이곳 아이들을 보며 가슴 아파했다. 아이들은 교과서도 제대로 갖추지 못했고, 공책도 거의 없으며, 있는 아이들조차 공책이 “배추장이의 문서”보다 못한 형편을 보고 그 대안을 모색하게 된다. 그 모색이 바로 동화를 직접 써서 아이들에게 들려주는 일이었다.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해 불우하고 초라한 아이들에게 꿈을 심어 주자고 결심했고 그 결과가 동화 쓰기와 읽어 주기였던 것이다. 유여촌은 그때부터 한 번도 써 본 일이 없는 동화를 밤새워 쓰기 시작했다고 회고한다. 그런 이유로 그의 동화에는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사람들과 그 자연을 구성하고 있는 동식물이 많이 등장한다.
1964년 ≪경향신문≫ 신춘문예에 동화 <바람을 그리는 어린이>(마해송 심사)가 당선되어 52세 늦깎이로 등단했다. 이 작품에서 그는 지명과 산천 이름은 물론 등장하는 어린이들도 실명대로 썼다. 이후 1965년 구미 동부초등학교, 1970년 대구 평리초등학교, 1971년 대구 서부초등학교 교장으로 재직하며 동화 창작에 몰두했다. 그는 동화를 탈고하면 교실을 순회하며 아이들에게 읽어 주었다. 자기가 사는 곳과 산, 개울 이름이 나오고 자신의 이름이 나오는 동화를 들으며 아이들은 주인공인 듯 기뻐하고 슬퍼하며 눈동자를 빛냈다. 이런 유여촌은 당시 아이들 사이에서 ‘동화 교장 선생님’으로 불렸다.
그는 15년 정도의 짧은 기간 동안 200여 편의 단·중·장편동화와 아동소설을 썼을 만큼 동화 창작에 천착했다. 1965년 ≪소년동아일보≫에 <에디슨 여우>를, 1967년에는 같은 신문에 <병득 할배와 아기 너구리>를 연재했다. 계속 창작열을 불태워 1967년에 ≪바람을 그리는 어린이≫, ≪금개구리 은개구리≫, ≪어린이나라 별나라≫, ≪물새알≫, ≪우정이 싹틀 무렵≫ 등 동화선집 다섯 권을 상재했고, 새싹회가 주관한 제1회 ‘해송동화상’을 수상했다. 그리고 1971년에 ≪사랑 학교 꿈 학교≫, ≪봉숭아의 노래≫, ≪철수의 동화나라≫, ≪은방울꽃 피는 마을(전편)≫, ≪은방울꽃 피는 마을(후편)≫(성문각) 등 동화선집 제2집 전 다섯 권을 상재했는데, 제1집에 실린 99편에 이어 58편의 동화가 실려 있다.
1975년에는 모성애를 소재로 한 동화집 ≪눈 내리는 밤≫(성문각)을 출간했다. 1977년 경북 금천 모암국민학교 교장으로 정년퇴직 후에는 서울 영등포구 당산동 자택에서 창작 활동에만 전념했다. 그 결실로 유년동화집 ≪달나라 땅나라≫를 출간했고, 미발표작으로 ≪도루묵 교장선생≫, ≪염소 할아버지≫, ≪당자동 마을≫, ≪낙동강≫ 등이 있다.
유여촌이 활동했던 1960년대 후반과 1970년대를 통틀어 그만큼 왕성하게 창작 활동을 했던 아동문학가는 찾아보기 힘들다. 그는 ‘동화 할아버지’로 통할 만큼 동화문학에 대한 열정이 강렬했다.
유여촌은 주로 자연과 인간의 교감을 통한 일치된 감정의 세계를 작품에 투영하고 있다. 이는 여촌이 산골 학교에 근무하며 겪은 체험을 바탕으로 한 것이다. 그의 작품 경향을 한마디로 요약하면 목가적인 이상주의의 추구라고 할 수 있다.
그는 말년까지 동화 창작에 열중하다 위암 진단을 받고 투병 중 서울대병원에서 수술을 받았다. 하지만 병세가 호전되지 않아 자택에서 요양하다 향년 69세를 일기로 1981년 5월 9일 별세했다. 경기도 고양 벽제 국제공원묘지에 부인과 함께 잠들어 있다.
해설 - 박상재
1956년 2월 3일 전북 장수에서 출생했으며, 전주고등학교와 전주교육대학, 서울교육대학교를 졸업하고, 성균관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석사 학위를, 단국대학교 대학원 국문과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9년부터 ≪전북신문≫과 ≪서울신문≫ 등에 동화를 발표하기 시작했으며, 1981년 월간 ≪아동문예≫ 신인상에 동화 <하늘로 가는 꽃마차>가 당선되었다. 또한 1983년에는 새벗문학상 공모에 장편동화 <원숭이 마카카>가, 1984년에는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꿈꾸는 대나무>가 당선되었다.
전라북도와 서울의 초등학교에서 33년 동안 아이들을 가르쳐 왔으며, 30년 넘게 활발한 창작 활동을 하여 50여 권의 창작집을 펴냈다. 아동문학의 학문적 연구와 학회 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여 ‘제2차 세계아동문학대회’(서울, 2006) 때에는 집행위원장으로 대회를 이끌었고, ‘아시아아동문학대회’ 등의 대외 활동에서도 중심적인 역할을 하며, 현재는 한국글짓기지도회 회장과 한국아동문학학회 부회장으로 활동한다.
그동안 받은 문학상으로는 ‘한국아동문학상’(1993), ‘방정환문학상’(2002), ‘한정동아동문학상’(2008), ‘박경종아동문학상’(2012) 등이 있다. ≪원숭이 마카카≫, ≪그림 속으로 들어간 아이≫, ≪어른들만 사는 나라≫, ≪춤추는 고양이≫, ≪개미가 된 아이≫, ≪춤추는 오리≫, ≪꿀벌삼총사≫, ≪통일을 기다리는 느티나무≫, ≪장수골 만세≫, ≪술 끊은 까마귀≫, ≪물새가 된 조약돌≫, ≪도깨비가 된 장승≫ 등 많은 동화책과 ≪한국 창작동화의 환상성 연구≫, ≪한국 동화문학의 탐색과 조명≫, ≪동화 창작의 이론과 실제≫ 등의 연구서를 펴냈다. 현재는 서울강월초등학교 교감으로 있으며 단국대학교 대학원에서 외래교수로 아동문학을 강의하고 있다.
<유여촌 동화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