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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득창

    조득창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북경사범대학교 대학원 박사
    고려대학교 대학원 중어중문학과 석사
  • 경력 협성대학교 중어중문학과 교수

2015.02.1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후스(胡適)
본명은 후훙싱(胡洪騂)이다. 중국현대문학가 겸 저명한 학자로, 1891년에 안후이 성 지시 현에서 태어났다. 14세 때 상하이로 가서 수학했다. 1910년 미국에 유학하여 처음에는 농학을 공부하다가 나중에는 문학과 철학으로 전공을 바꾸었다. 1914년 코넬대학을 졸업한 뒤 컬럼비아대학에서 존 듀이에게 교육학을 배우고 진화론·프래그머티즘의 영향을 받았다. 1917년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이해 7월에 귀국해 베이징대학 교수가 되었다. 1938년에는 국민당 정부에서 주미대사로 활동했으며, 1939년에는 노벨문학상 후보자로 추천되기도 했다. 그 뒤 행정원 최고정치고문, 베이징대학교 총장을 지냈다. 국공 내전으로 베이징이 중국 공산당에 포위되자 1948년 미국에 망명했다. 1957년에는 타이완 정부의 국제연합(UN) 주재 대사를 역임했고, 이후 타이완으로 가 타이완 최고 학술 기관인 중앙연구원 원장 등을 지냈다. 잡지 ≪자유중국≫의 발행인이 되어 국민당 독재를 반대하고 민주 사상과 언론 자유를 제창해 타이완의 민주화에 기여했다. 1962년 갑작스러운 심장병으로 사망했다.

훙선(洪深)
중국 현대 극작가 겸 연극 연출가이자 영화감독이다. 중국 현대극을 개척한 주요 인물 중 하나다. 1894년에 장쑤 성 우진 현에서 태어났다. 1912년 칭화학교에 들어간 뒤 연극 활동을 시작했다. 푸단대학교, 지난대학교, 산둥대학교, 중산대학교 등에서 외국 문학과 교수를 지내명서 연극과 영화 사업에 종사했다. 1930년에는 중국좌익작가연맹 및 중국좌익극단연맹에 가입해 활동했다. 1934년에는 칭다오에 있는 산둥대학교에서 교수로 재직하며 문학지 ≪피서녹화(避暑錄話)≫를 창간했고, 얼마 후 상하이에서 샤옌(夏衍) 등과 함께 잡지 ≪광명(光明)≫을 창간하고 발행인과 편집장을 맡았다. 중일전쟁 발발 후, 훙선은 상하이 문화계가 주도하는 항일구국운동에 참가했다. 또 1938년에는 국민정부의 군사위원회 정치부 제3청(第三廳)에서 연극을 관장하면서 항일 활동을 전개했다. 중일전쟁이 끝난 뒤에는 상하이로 돌아가 푸단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다가 국민당을 반대하는 학생운동을 지지했다는 이유로 해고당하고, 샤먼대학교로 가서 교수 생활을 했다. 중화인민공화국 수립 이후 중국연극가협회부주석, 중국인민대외문화협회부회장 등을 역임하다가 1955년 향년 61세로 병사했다.

<결혼 / 염라대왕 자오 / 오규교>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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