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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진오

    양진오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5년
  • 학력 서강대학교 대학원 문학 박사
    서강대학교 국문과 학사
  • 경력 경주대학교 문예창작학과 교수
    실천문학 편집위원

2015.03.0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김열규는 1932년 2월 10일 경남 고성에서 출생했다. 김열규의 고향은 그느리로 불렸다. 정정한 나무 그늘에 마을이 안겨 있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는 고성 인근 부산에서 다닌다. 중학생이 되어 해방을 맞이한다. 1950년 서울대학교 국문학과에 입학한다. 부산으로 피난했다가 전쟁이 끝나자 상경해 대학과 석사 과정을 마친다. 1959년 충남대학교 국문과 교수로 부임한다. 1962년까지 충남대학교에서 후학들을 가르친다. 1963년 평론 <현대시의 언어적 미망>으로 조선일보 신춘문예에 당선한다.
1963년 스물아홉의 나이에 서강대학교에 교수로 부임한다. 서강대학교에서 김열규는 신화, 문학, 민속학 등을 연구하고 강의하며 우리나라의 내로라하는 한국학자로 주목받는다. 1971년 일조각에서 출간된 ≪한국 민속과 문학 연구≫는 한국 문학의 원형적 패턴을 밝힌 불후의 업적으로 평가받는다. ≪한국 문학사≫, ≪삼국유사와 한국 문학≫ 등도 한국 문학의 심층 기반을 밝힌 이 방면의 업적으로 인정받는다.
정년을 6년 앞둔 1991년 김열규는 고향 고성으로 낙향하며 읽기와 쓰기의 삶에 전념한다. 낙향은 김열규의 제2의 인생을 여는 계기가 된다. 낙향이 아니라 김열규의 말마따나 상향이라도 해도 좋을 정도였다. 고향 인근의 대학들이 김열규를 초빙했다. 김열규는 1991년부터 2002년까지 인제대학교에서 교수를 한다. 일흔의 나이에 인제대학교를 그만두게 되자 계명대학교에서 김열규를 석좌교수로 초빙한다. 김열규는 2002년부터 2003년까지 계명대학교 한국학연구원 원장직을 수행하며 석좌교수를 지낸다. 고향에서 김열규의 글쓰기는 활화산처럼 타오른다. ≪공부≫, ≪행복≫, ≪한국인의 에로스≫, ≪욕, 카타르시의 미학≫, ≪한국인의 신화≫,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한국인의 자서전≫, ≪독서≫, ≪푸른 삶 맑은 글≫의 원고가 그의 고성 서재에 탈고된다. ≪세계일보≫에 칼럼 <김열규의 예맥>을 연재하던 중 2013년 10월 22일 향년 81세로 타계한다.

<김열규 수필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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