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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휴

    이승휴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사망 1224년 - 1300년

2015.03.24.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지은이 이승휴(李承休)의 자는 휴휴(休休), 자호(自號)는 동안거사(動安居士)다. 9세에 독서를 시작하여 12세에 <좌전(左傳)>과 <주역(周易)> 등을 익혔다. 14세에 아버지 상을 입고 종조모인 북원군부인(北原郡夫人) 원씨(元氏) 밑에서 양육되었다. 그 후 몽고 침입으로 고려 정부가 천도(遷都)한 강화도로 들어가서 낙성재(樂聖齋) 도회소(都會所)에서 수업하면서 많은 사람들과 교유 관계를 맺게 된다. 29세에 과거 시험에 급제했다. 과거 급제 후 홀어머니가 있는 삼척으로 금의환향했으나, 몽고의 침입으로 환도하지 못하고 두타산 구동(龜洞)에서 농사를 지으며 홀어머니를 봉양했다. 1263년 나이 40세에 이르러 강도에 들어가 당시 유력자들에게 구관시를 지어 보내고 다음 해에 이장용과 유경의 천거를 받아 벼슬을 시작했다. 1273년 원나라에서 황후와 황태자를 책봉한 사실을 알려오자 서장관이 되어 원나라에 가서 책봉을 하례했다. 원나라에서 올린 그의 표문(表文)은 원 세조(世祖)와 낭리(郎吏)들의 탄복을 받았다. 동행했던 송송례도 “문장이 중국을 감동시킨다는 말은 임자를 두고 하는 말이오”라고 탄복했다. 충렬왕 6년에 국왕의 실정 및 국왕 측근 인물들의 전횡을 들어 10개조로 간언했다가 파직된 후 국사(國事)와 세론(世論)에 일절 함구하고자 했다. 77세를 일기로 고단한 생을 마쳤다. 저서로 ≪제왕운기≫와 ≪동안거사집≫이 남아 있다.

옮긴이 진성규는 경북 예천에서 출생했다. 은풍국민학교를 졸업한 후 서당에서 3년 동안 한학을 공부했다. 예천의 대창중·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3년 여 공무원 생활을 했다. 중앙대학교 사학과를 졸업한 후, 서울대 대학원 국사학과 및 중앙대 대학원 사학과에서 석·박사 과정을 수료했다(문학석·박사).
한국정신문화연구원(현 한국학 중앙연구원) 및 부산여대(현 신라대)를 거쳐 현재 중앙대 역사학과 교수로 재직하다가 현재 중앙대 명예교수로 있다.
저서로는 ≪진각국사 혜심연구≫, 공저로는 ≪신라의 불교사원≫, ≪인물로 본 한국불교사상사≫, ≪한국사상사입문≫ 등이 있다. 역서로는 ≪서하집(西河集)≫, ≪원감국사집(圓鑑國師集)≫, ≪계와문집(溪窩文集)≫, ≪경기금석문대관(京畿金石文大觀)≫ 등이 있다.

<동안거사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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