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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영길

    심영길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42년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불어과 학사

2015.04.0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530년 프랑스의 중서부 페리고르Perigords의 소도시 사를라Sarlat에서 태어났다. 대대로 법관들이 나온 교양있는 집안에서 자란 그는 어릴 때 아버지를 여인 탓에 삼촌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으며 성장했다. 그가 자신의 명저 《자발적 복종》 서설의 초고를 썼던 때는 오를레앙대학교에 입학할 무렵이었다. 이후 오를레앙대학교에서 법학사 학위를 취득한 그는 1553년 보르도의회 고등재판관으로 임명되었다. 당시 그의 나이 24세였다. 본래 이 직위에 임명될 수 있는 자격 조건은 26세. 이보다 두 살이나 어린 나이에 이 직위에 올랐던 것은, 라 보에시의 재능과 학문적 성취에 감복한 오를레앙대학교의 담당 교수들이 그를 적극 추천한 결과였다.

재판관이자 철학자였으며 29편의 시를 남긴 뛰어난 시인이기도 한 라 보에시는 33세의 이른 나이에 전염성 복통으로 요절했다. 임종 직전 그는 유언서를 작성해 자신이 쓴 모든 원고와 소장한 서적을 절친인 몽테뉴에게 상속했다. 몽테뉴는 라 보에시가 남긴 모든 원고의 발행을 시도하면서도 독재 타도를 주장하는 소책자인 《자발적 복종》만은 제외했다. 왕의 재판 권한을 대리하는 고등재판소 재판관이 쓴 독재자에 대한 격문은 왕정 질서에 엄청난 파문을 일으킬 위험을 내포하기 때문이었다. 라 보에시의 이 저서는 1574년 처음 세상의 빛을 보았고, 그가 남긴 사상은 이후 프랑스혁명과 아나키즘운동, 시민불복종운동에 적지 않은 영향을 끼쳤다.

라 보에시와 그의 절친 몽테뉴가 나눈 각별한 우정은 몽테뉴의 《수상록》 중 <우정>이라 명명된 장에 잘 묘사돼 있다. 거기서 몽테뉴는 두 사람 사이의 우정에 대한 유명한 말을 남긴다. “누군가 내게 왜 내가 그토록 라 보에시를 좋아하는지 묻는다면, 난 이렇게밖에 답할 수 없을 것 같다. 그게 바로 라 보에시니까, 그리고 그게 바로 나니까.” 지금도 파리 8구에는 몽테뉴 가街와 라 보에시 가가 맞닿아 있다. 마치 후세의 사람들이 두 사람의 각별했던 우정을 죽어서도 이어주고 싶었던 것처럼.

<자발적 복종>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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