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자 - 정갑숙
대학 졸업 후 곧바로 결혼했다. 꿈이 순장되고 순식간에 모든 것이 마비 상태가 되었다. 얼마 후 내면에서 무엇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무엇인지 형체를 알 수 없는 그것이 임부 배 속의 태아처럼 날마다 꿈틀거렸다. 그때마다 선사인(先史人)이 소망을 바위에 기호로 새기듯이 해독불능의 암호 같은 영혼의 몸부림들을 종이에 쓰기 시작했다. 쓰고 또 썼다. 쓰지 않으면 견딜 수 없었다. 그것은 내 호흡이었다. 그런 행위가 없었으면 내 숨이 멎었을지도 모른다.
그즈음 주부 백일장이 있다기에 나가 보았다. 마침 시제가 ‘고향 가는 길’이었다. 처음으로 시의 이름으로 끄적거렸다. 그것이 입선 되어 어느 국회의원의 축전이 집으로 날아왔다.
그 사건은 내게 문학의 길을 안내하는 이정표가 되었다. 그 후 여러 차례 백일장에 나갔는데 그때마다 입상 소식은 내가 살아야 할 이유를 안겨 주었다.
그 무렵 글나라 동화창작 교실에 나갔다. 동화보다 시에 자질이 있다며 김재원 선생님이 동시를 권유했고 ≪아동문예≫라는 월간지를 소개해 주었다. 그 인연으로 잠시 시를 접어 두고 동시의 길로 들어섰다.
하루는 생명체에 유독 관심이 많은 딸이 달팽이를 제 손등에 태워 우리 집에 데려왔다. 저자는 <아기 달팽이>라는 축시를 딸에게 바치며 달팽이 환영식을 했다. 그 무렵이 동시에 입문하던 때다. 동시집에서 맨 처음 만난 동시는 문삼석 선생님의 <도토리 모자>였다. 처음 응모한 동시가 ≪국제신문≫ 신춘문예 최종심에 올랐다. 충격이었다. 동시가 무엇인지 모르고 덤볐는데 그 사건이 내게 용기를 심어 주어 나중 ≪동아일보≫ 신춘문예로 결실을 안겨 주었다.
어린 시절 자연 속에서 누리던 행복을 시로 보답하고 싶은 심리의 작용인지 저자의 동시에는 유독 자연을 노래한 것이 많다. 제1 동시집 ≪나무와 새≫ 속에는 유년기의 정서적 체험이 형상화되어 있다. 제2 동시집 ≪하늘 다락방≫과 제3 동시집 ≪개미의 휴가≫도 그 연장선상이다.
2007년 ≪개미의 휴가≫ 이후 심리적 기후 변화를 겪는다. 그동안 살아온 날들이 맑고 화창했다면 그 후 5년간은 흐리거나 비바람 부는 날들이 많았다 제4 동시집 ≪말하는 돌≫은 그렇게 저자를 찾아왔다. 앞으로 오래 사는 시를 쓰고 싶다고 한다.
<정갑숙 동시선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