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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르지 루카치 Gyorgy Lukacs

    죄르지 루카치 프로필

  • 국적 헝가리
  • 출생-사망 1885년 4월 13일 - 1971년 6월 4일
  • 학력 부다페스트대학교 법학
  • 경력 1945년 부다페스트대학의 미학과 문화철학 교수
    1929년 마르크스-엥겔스 연구소 연구소원
    1919년 혁명정부 문교부장관

2020.06.0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죄르지 루카치
20세기의 가장 탁월한 마르크스주의 철학자, 미학자, 문학 이론가의 한 사람인 죄르지 루카치(György Lukács, 1885∼1971)는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부유한 은행가의 아들로 태어났다. 유태계인 아버지는 아들이 금융업에 종사하길 바랐지만, 그는 이미 청소년 시절부터 자본주의적 삶을 깊이 혐오해 이런 바람에 심하게 반발했다. 부다페스트대학에서 아버지의 뜻을 따라 법학을 공부했지만, 그의 진정한 관심은 사회학과 철학, 특히 미학에 있었다. 1904년에 노동자 계급에게 현대극을 소개하려는 목적으로 ‘탈리아’라는 극단을 창설하기도 했다.
1906년부터 상당 기간 외국에서 유학했다. 당시 독일 사회학계의 중심 인물은 지멜(G. Simmel)과 베버(M. Weber)였는데, 루카치는 1909년과 1910년에 베를린에서 지멜의 ‘개인적인 제자’가 되어 강의를 들었으며, 1913년에서 1917년까지는 하이델베르크에서 ‘베버 서클’에 속해 있었다. 특히 베버와는 각별한 교분을 나누었다. 철학적으로는 주로 리케르트(H. Rickert), 빈델반트(W. Windelband), 라스크(E. Lask) 등의 신칸트주의에 영향을 받다가 1차 세계대전을 계기로 점차 헤겔과 마르크스로 기울었다. 이 밖에도 딜타이(W. Dilthey), 키르케고르(S. Kierkegaard), 도스토옙스키 등의 영향을 받았다.

1918년 11월에 헝가리에서는 러시아에서 귀국한 벨러 쿤(Béla Kun)을 중심으로 공산당이 결성되었고, 루카치는 12월에 입당했다. 주위 사람들은 “일주일 만에 사울이 바울로 되었다”고 놀랐다. 그러나 그의 전향은 1902년부터 이따금 연구해 온 마르크스주의가 결국 진리라는 내적 확신, 청소년 시절부터 자본주의적 삶에 대해 품어 온 증오심, 윤리적 동기 등이 작용한 것으로 이미 오래전부터 내적으로 준비되어 온 것이었다.
1919년 3월에는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선포되었는데, 루카치는 이 정부에서 교육 및 문화 부인민위원이 되어 교육과 문화의 재편성을 위한 광범위한 프로그램을 짰다.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이 133일 만에 무너지자 빈(Wien)으로 망명해 1929년까지 머물렀다. 1928년에는 다음 해에 열릴 헝가리 공산당 대회에 제출하기 위한 정치 논문들을 작성했다. 그의 가명을 따서 ‘블룸 테제(Blum-Thesen)’라고 불린 이 논문들에서, 루카치는 헝가리가 소비에트 공화국으로 곧장 전환하는 것이 불가능하기 때문에 당은 프롤레타리아 독재가 아니라 노동자와 농민의 민주주의적 독재를 당면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공산주의자들에게 기회주의라는 비난을 받았다. 루카치는 자기 관점이 정당하다고 믿었지만 당에서 쫓겨나서는 파시즘과 효과적으로 싸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자아비판을 단행했다. 그 후 그는 자기 입장이 옳다고 해도 다른 사람들에게 인정받을 수 없다면 자신의 실천과 정치 능력이 부족하다는 것을 뜻한다고 생각하고,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이론 작업에 전념하기로 작정했다.
1930년에 빈에서 추방되어 모스크바에 머물다가 1931년에 베를린으로 갔다. 1933년 나치가 권력을 장악한 뒤 1934년에 소련에 가서 1944년까지 머물렀다. 1933년과 1934년에 ≪역사와 계급의식≫에 대해 자아비판을 하고 이후 미학과 문학사 연구에 몰두했다. 자아비판을 한 동기는 복합적이었다. 우선 그는 사회주의가 어떤 일이 있어도 존속해야 한다고 보고, 스탈린주의에 대한 공공연한 비판은 파시즘에 정신적 지지를 줄 수 있으므로 잘못된 것이라고 판단했다. 또한 자기가 이제 더 이상 찬동하지 않는 ≪역사와 계급의식≫의 견해들을 비판하는 것은 문학 비평을 쓰고 출판하기 위해서 치러야 할 최소한의 대가라고 생각했다. 그는 한편으로 스탈린의 말을 인용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결코 스탈린의 교조주의적 견해를 강요하지 않는 글을 씀으로써, 자기 사상을 옹호하기 위한 일종의 ‘게릴라전’을 효과적으로 수행할 수 있었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자 1945년에 헝가리로 돌아왔다. 부다페스트대학의 미학과 문화철학 교수가 되었고 헝가리 의회의 의원으로 선출되었지만 공산당 내부의 요직은 차지하지 못했다. 이 무렵 헝가리 공산당은 소련군의 지원을 받으며 라코시(M. Rákosi)의 지도 아래 일당 독재 체제를 수립했는데, 1956년에는 흐루시초프의 스탈린 격하 운동에 힘입어 독재 체제에 맞서 헝가리 봉기가 발발했다. 루카치는 헝가리 봉기로 들어선 너지(Nagy) 정부에 문화부장관으로 입각했지만, 너지 정부가 바르샤바 동맹에서 탈퇴한 데 반대해 물러났다. 소련군의 탄압으로 봉기는 실패하고 루카치는 루마니아로 추방되었지만, 1957년 4월에 부다페스트로 돌아올 수 있었다. 그때부터 일체 정치에 관여하지 않고 오로지 미학과 철학 연구에만 몰두하면서 마지막까지 저술 활동을 하다가 1971년 6월에 세상을 떠났다.

역자 - 조만영은 서울대학교 독어교육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교 대학원을 졸업했다. 서울대 등에서 강의하고 있다. 옮긴 책으로 ≪독일 비애극의 원천≫(발터 벤야민 저, 새물결, 2008), ≪맑스 · 엥겔스 문학예술론≫(만프레트 클림 편, 돌베개, 1990), 엮은 책으로 ≪맑스주의 문학예술 논쟁: 지킹엔 논쟁≫(마르크스 외 저, 돌베개, 1989) 등이 있다.

역자 - 박정호는 서울대학교 철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철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경희대, 서울대, 국민대, 서울시립대, 건국대, 한양대 등에서 강의했고, 뉴욕주립대(스토니브룩 대학) 객원교수를 지냈다. 현재는 인제대학교 인문학부 교수로 일하고 있다. 사회 정의와 인간 실존의 문제에 관심을 갖고 있으며 그 밖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공부하고 있다. 엮은 책으로는 ≪현대 철학의 흐름≫(공편저, 동녘, 1997), ≪지식의 세계≫ 1∼2권(동녘, 1998)이 있고, ≪철학대사전≫(한국철학사상연구회 편, 동녘, 1997) 편찬에도 관여했다. 옮긴 책으로는 ≪사회과학의 역사≫(J. D. 버날 저, 한울, 1984), ≪역사와 계급의식≫(공역, G. 루카치 저, 거름, 1986), ≪유물론과 경험비판론≫ 상 · 하(레닌 저, 돌베개, 1992) 등이 있다.

<역사와 계급의식>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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