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두아르트 슈프랑거(Eduard Spranger)
1882년 6월 27일 베를린에서 태어났다. 1888년 도로텐 레알 김나지움에 진학하기 위해 예비학교(Vorschule)에 입학했고, 레알 김나지움의 과정을 마친 1894년 프란체스코 교단에서 운영하는 그라우 수도원 인문 김나지움으로 진학했다. 1900년에 베를린 대학교에 입학하여 철학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1905년 철학자 프리드리히 파울젠과 심리학자 카를 슈툼프에게 ‘역사과학의 토대’라는 인식론적 연구 주제를 가지고 박사학위 논문을 제출함으로써 철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1909년 교수 자격 논문으로 저서 《빌헬름 폰 훔볼트와 인본주의 이상》을 출간했으며, 1년 후 이 연구의 보강판으로서 두 번째 저서인 《빌헬름 폰 훔볼트와 교육제도의 개혁》을 출간했다. 이후 슈프랑거의 연구와 학문은 그가 학자로서 처음 시작한 역사주의 논쟁과 늘 관련을 맺게 되었다. 또한 정부의 정책 자문관이자 학자로서 슈프랑거는 평생 동안 정치, 국가, 행정과 교육제도의 관련성에 대하여 부단한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으며, 국가 정책의 결정에서도 커다란 영향력을 행사했다. 아울러 그는 교수 자격시험을 거쳐 베를린 대학교에서 강사로 철학과 교육학 강의를 시작했다. 1911년 라이프치히 대학교에서 철학 및 교육학 교수 직위를 얻게 되는데, 이것이 생애 첫 번째 교수직이다. 이 밖에도 독일 땅 세 곳의 대학교에서 교육학과 교수직을 취득했다.
1912년 당시 교육계와 철학계에서 거목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던 게오르크 케르셴슈타이너와 인간적·학문적인 친분을 쌓기 시작했다. 이러한 개인적 친분 관계는 케르셴슈타이너가 죽은 1932년까지 지속되었다. 특히 직업학교 제도의 구축을 위한 케르셴슈타이너의 업적은 후에 슈프랑거에게 학문적 전범으로 작용했으며, 슈프랑거의 교육 이론 및 직업교육 이론 전반에 걸쳐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1919년 자신의 모교인 베를린 대학교의 철학과 정교수로 채용된다. 그는 교사 교육 및 교사 재교육 문제를 계속해서 교육부에 건의했으며, 드디어 1926년 바이마르 공화국의 문화부 장관이었던 하인리히 베커(Heinrich Becker)로부터 ‘독립학교로서의 교육학 아카데미’의 설립 허가를 받아낸다. 이것은 후에 초등학교 교원을 전문적으로 양성하는 교육대학교(Pädagogische Hochschule)의 설립으로 이어졌다.
바이마르 시절에 공공교육 정책 문제와 학문적 논쟁 영역에서 슈프랑거가 주력했던 테마들은 직업학교, 통합학교, 향토학, 학교의 종교적 형상화, 그리고 의무교육제도의 연장 등이었다. 또한 오랫동안 자신이 구상하는 교육학의 핵심 요소를 중심으로 이론 작업을 한 결과, 〈청년기의 심리학〉이라는 논문을 발표하게 된다. 1924년 저서로 출간된 이 논문은 슈프랑거의 네 번째 대작으로서 1979년까지 11개 국어로 번역되었다.
1920년대 중반을 지나면서 슈프랑거의 저작들은 사회과학적 논쟁을 위해 범위와 폭을 달리하게 된다. 그는 자신만의 고유한 철학 및 교육 사상의 틀을 가지고 변증신학, 셸러, 슈펭글러, 베버류(流)의 철학과 사회학, 심리학, 심리 분석 등 새로운 학문 그리고 파시즘, 마르크시즘, 민주주의 이론으로 대표되는 당시 정치학 영역과 지상 논쟁을 시작한다. 당시 이렇게 시작된 슈프랑거의 사회과학적 논쟁은 1950년대에 들면서 그가 ‘문화 비판’이라는 삶의 전체적 주제에 몰입할 수밖에 없도록 했으며, 이는 슈프랑거 만년의 사상 체계 정립에 중심 관점으로 부각되었다. 나치스 시절에는 나치스에 동조했느니 반대로 반(反)나치스 암살 사건에 가담했느니 하는 애매모호한 논쟁에 휩쓸리기도 했지만, 종전 후 튀빙겐 대학교의 총장으로 부임했다. 1951년부터 1954년까지 독일 연구 공동체의 부회장을 지냈고, 독일 정부의 교육 관계 법·제도 정책에 대해서 강력한 영향력을 행사하다가 1963년 9월 17일 튀빙겐에서 서거했다.
이상오
연세대학교 학부에서 독어독문학을 공부하고, 대학원에서 슈프랑거에 대한 연구를 통해 교육학 석사학위를 취득했다. 졸업 후 4년 6개월 동안 홍익고등학교에서 독일어를 가르쳤지만, 유학의 꿈을 버릴 수 없었기에 비교적 늦은 나이에 슈프랑거의 모든 유고(遺稿)가 도서관 문고(archive)로 남아 있는 독일 튀빙겐 대학교로 날아가서 그에 대한 연구를 계속할 수 있었다. 한국에서는 슈프랑거의 교육철학에 대해서만 연구했지만, 튀빙겐에서는 그의 교육철학을 바탕으로 직업교육론, 고등교육론 및 성인교육론까지 연구의 폭을 확대할 수 있었다. 1994년 10월 18일 독일 튀빙겐 대학교 사회행동과학부(교육학 전공)에서 사회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했으며, 현재는 연세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가르치고 있다.
귀국 후 지금까지 주로 교육철학회와 성인교육학회, 한독교육학회, 한국진로교육학회에서 활동하고 있으며, 한국청소년학회 편집위원으로도 일하고 있다. 주 관심 영역은 페다고지와 안드라고지의 통합적 이해다. 최근의 관심은 복잡계 이론(Complexity Systems Theory)과 교육의 관계, 존재론적 차원에서의 교육 이해, 학습 노마디즘, 교육 리더십, 교육학적 상상력 등이다.
최근 5년간 출간된 역서와 저서로는 《슈프랑거의 초등교육론》, 《교육해석학》, 《교육학 연구의 논리》, 《평생교육론: 역사, 조건, 전망》, 《계몽주의 교육: 이론과 실제》, 《대학교육 개혁의 철학과 각국의 동향》, 《리더십: 역사와 전망》, 《홀로스사고: 시스템사고의 새로운 전략》 등이 있으며, 최근 5년간 학술지 게재 논문으로는, 〈학교에서의 ‘사회화’: 문제와 대안−‘학교철학’의 재구조화를 위하여〉, 〈지식의 생성 과정과 지식교육의 방식에 대한 고찰: 포스트모던의 지식관을 중심으로〉, 〈초기 성인기의 ‘위기’: 성인교육을 위한 의미와 전망〉, 〈Educational Perspectives in the Ecological Paradigm〉, 〈교육사 연구에 있어서 해석학적 연구 방법의 전망〉, 〈Städtische Erwachsenenbildung in Südkorea in vergleicher Sicht〉, 〈대학의 정체성에 관한 교육학적 사유−슈프랑거의 대학론에 근거하여〉, 〈어떤 교육 공백: 단절된 소크라테스의 유산−교육철학의 열린 담론을 위하여〉, 〈대학의 본질과 대학교육의 방향에 대한 일 고찰〉, 〈‘대화’의 근거로써 슈프랑거의 유형학에 대한 일 고찰: 삶과 교육의 본질 규명을 위하여〉, 〈E. Spranger 교육 사상의 형성 근거에 대한 일 고찰: 그의 ‘소크라테스 해석’〉 등이다.
<원서발췌 삶의 형식들>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