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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일엽

    김일엽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896년

2015.08.1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김일엽(金一葉, 1896∼1971)은 시인, 소설가, 수필가 등 어느 호칭으로 불려도 좋을 만큼 전방위 글쓰기를 보여 준 사람이다. 또한 여성운동가, 계몽운동가, 종교인의 면모도 간과할 수 없다. 널리 불렸던 일엽(一葉)은, 춘원 이광수가 일본의 유명 여성 문인의 이름에서 따와 지었다고 알려지기도 한 아호인데, 본명은 원주(元周)다. 후일 불가에 귀의하고 얻은 이름은 하엽(荷葉), 도호(道號), 백련도엽(白蓮道葉) 등이나 널리 알려진 것은 아니다.
1896년 6월 9일(음력 4월 28일) 평안남도 용강군 삼화면 덕동리에서 5대 독자이며, 개신교 목사인 용겸(用兼) 씨와 이마대(李馬大) 여사의 5남매 중 장녀로 태어났다. 구세학교와 진남포 삼숭여학교를 다녔는데, 신체시 <동생의 죽음>이 육당 최남선의 <해에게서 소년에게>보다 한 해 앞선 1907년에 창작되었다는 견해가 있어, 사람에 따라서는 이를 신체시 또는 신시의 효시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1909년에 어머니를 병으로 여의고, 이화학당을 다니던 1915년경 아버지마저 여의었다. 그사이 동생 넷도 세상을 떠나 가족을 모두 잃게 되었다. 이후 그의 가세를 자세히 알 길은 없으나, 이 무렵 첫 번째 결혼을 하게 되고 1918년에는 이화전문을 졸업하며, 이듬해 3·1 운동 때는 전단을 작성해 돌리는 등 적극적으로 참여했다. 이어 외할머니의 후원으로 일본에 건너가 도쿄 영화(英和)학교에 다녔는데, 1920년에 이 학교를 수료하고 귀국한 후 잡지 ≪신여자≫를 창간해 4호까지 간행했다. 이 무렵 기독교 청년회관에서 ‘여자 교육과 사회 문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고, ≪동아일보≫에 <여자 교육의 필요> 등의 계몽적 주제의 글을 싣는 등 여성 운동에 앞장섰다. 아현보통학교 등에서 교사로 잠시 재직한 적이 있으며, 첫 번째 결혼의 실패에 이은 ‘사랑’의 문제를 둘러싼 방황으로 세인의 주목을 크게 받은 바 있다. 이 무렵 단편소설로, <계시>(1920), <어느 소녀의 사>(1920), <혜원>(1921) 등을, 시로는 계몽적 주제의 창가류에 이어 개인의 애욕과 정서를 표현한 <짝사랑>, <그대여 웃어 주소서> 등을 썼다.
1923년 9월에는 충남 예산 수덕사에서 만공 스님의 법문을 듣고 크게 감명을 받은 바 있었고, 1927년에는 불교 기관지 ≪불교≫에 관여해 1932년까지 문예란을 담당하면서 활발한 집필 활동을 보여 주었다. 1928년 금강산 서봉암에서 입산하고, 이어 서울 선학원에서 만공법사 문하에서 수계를 했으며, 1933년 수덕사 견성암에서 득도한 후 이 암자의 입승(入繩)으로 25년 동안 머물렀다. 입산 후 사회생활을 가능한 한 자제한 채, 수도에 전념하다가 1971년 1월 28일 총림원 별실에서 열반했고, 수덕사가 있는 덕숭산 기슭에서 다비식이 거행되었다. 생전에 ≪어느 수도인의 회상≫(1960), ≪청춘을 불사르고≫(1962), ≪행복과 불행의 갈피에서≫(1964) 등의 산문집을 펴냈으며, 열반 직후 유고집 ≪미래세가 다하고 남도록≫(1974)이 간행되었다.

<김일엽 수필선집> 저자 소개

김일엽 작품 총 4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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