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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철준

    양철준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벨기에 헨트대학교 대학원 사회언어학 박사
    케냐 나이로비대학교 대학원 스와힐리어학 석사
    한국외국어대학교 스와힐리어학 학사
  • 경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 강사
    서강대학교 교양학부 강사
    전남대학교 인류학과 전임연구원

2014.12.1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줄리어스 캄바라게 니에레레(Julius Kambarage Nyerere, 1922∼1999)
줄리어스 캄바라게 니에레레는 1922년 4월 11일 탄자니아의 북부 빅토리아 호에 인접한 마라 주 무소마 지방의 부티아마라는 곳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 부리토 니에레레는 마라 주 무소마 지역에 주로 거주하는 비교적 작은 규모의 종족인 자나키족의 족장이었다.
영국의 식민 통치를 받고 있던 시기 무소마에 소재한 음위셍게(Mwisenge)초등학교에 입학한 니에레레는 뛰어난 성적으로 두각을 나타냈다. 초등교육을 마치고 타보라에 있던 탕가니카 유일의 중등학교에 진학해 공부를 계속했다. 중등학교를 마치고 우간다의 마케레레대학에서 수학했으며 대학을 졸업한 1945년 교사 자격을 획득해 우간다의 캄팔라에서 교사로 근무했다. 독립을 위한 정치 활동을 시작하기 전에는 교사로서 근무했기 때문에 오늘날까지도 ‘음왈리무(선생)’라고 불리고 있다.
그는 1929년부터 최초의 정치조직이었던 탕가니카 아프리카협회(Tanganyika African Association, TAA)의 캄팔라 지회 활동에 참여함으로써 이후 탄자니아 정치 지형의 변화에 주도적인 역할을 하기 시작했다.
1949년부터 1952년까지 영국 에든버러대학교에 유학해 역사와 정치경제학을 공부했다. 그는 영국에서 공부한 최초의 탕가니카인이었다. 유학 당시 페이비언사회주의에 깊은 영향을 받았고, 이는 이후 사회주의와 아프리카의 전통적 공동체 주의를 접목하고자 했던 그의 열망이 형성되는 데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인다.
에딘버러대학교에서 3년간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이후 탕가니카 아프리카협회 의장을 지냈다. 1954년에는 오스카 캄보나(Oscar Kambona)와 함께 탕가니카 아프리카 민족연맹(Tanganyika African National Union, TANU)을 조직했다. TANU는 초기에는 사회적 평등, 인종 간의 화합이라는 목표를 갖고 출범했지만 이후에는 탕가니카의 완전한 자치를 쟁취하기 위한 투쟁에 진력했다. 이 시기부터 1957년까지 TANU가 실질적으로 유일한 정치조직으로 존재했으며 니에레레는 식민 통치 시기와 탈식민 이후 탄자니아 정치에서 가장 핵심적인 인물로 부상했다.
니에레레는 탕가니카 전역을 돌며 대중의 지지를 호소했고 탕가니카가 독립을 얻는 데 중추적 역할을 수행했다. 니에레레는 1960년 영국 통치하에서 수상에 올라, 독립 이후인 1961년부터 1962년까지도 수상으로서 신생 독립국인 탕가니카를 이끌었다. 그리고 TANU를 재조직하기 위해 수상직을 사임했다가 1962년 대통령으로 선출되어 탕가니카는 공화국이 되었다.
잔지바르는 1963년 12월 10일 영국으로부터 독립했으나 오만계 아랍인들의 통치가 계속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1964년 1월 12일 잔지바르 혁명이라 불리는 유혈혁명이 발생해 1만∼1만 2000명의 아랍계 잔지바르인들이 희생되었다. 잔지바르 혁명이 발생하면서 탕가니카의 초대 대통령 니에레레는 잔지바르의 아베이드 카루메(Abeid Karume)와 함께 ‘한 민족/국가 안에 두 나라(nchi mbili taifa moja, two countries in one nation)’를 만드는 데 합의했다. 이에 따라 1964년 탄자니아 본토(Tanzania Bara, Mainland Tanzania)인 탕가니카와 잔지바르 및 펨바(Tanzania Visiwani, Island Tanzania)가 연합해 탄자니아연합공화국(Jamhuri ya Muungano wa Tanzania, United Republic of Tanzania)이 탄생하게 된 것이다.
니에레레는 자신이 열정적으로 추구했던 정책들이 실패했음을 인정하며 1985년 스스로 권력의 정점에서 내려왔다. 당시 혁명당 전당대회에서 “나는 이제 물러납니다(Ninang'atuka)”라고 말하며 정치 일선에서 퇴진했다. 스와힐리어에서 ‘공직이나 지도적 위치에 있는 사람이 자발적으로 물러나다’를 의미하는 동사 ‘응아투카(ng'atuka)’는 니에레레의 강직한 면모를 드러내는 상징적 어휘가 되었을 정도로 니에레레는 권력에 집착하지 않았다.
권력에서 스스로 물러난 니에레레는 고향 부티아마로 돌아갔다. 정치 일선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1990년대 중반까지 탄자니아 정치에 강한 영향력을 미쳤다. 그가 권력을 떠난 뒤에도 강력한 영향력을 미칠 수 있었던 것은 높은 수준의 도덕성과 청렴성을 가진 인물이었기에 가능했던 것으로 보인다. 특히 부패한 세력에 대한 거침없는 그의 비판과 직설은 아직도 많은 이들에게 회자되고 있다.
정치의 전면에서 물러난 이후에도 부룬디 등 역내 국가들의 지역 분쟁을 종식시키고 평화를 회복하기 위해 다각도로 노력했으며 중재자 역할을 수행했다. 그리고 빈곤의 완화 및 타파, 지속 가능한 개발을 위해 설립된 남반구 위원회(the South Commission)의 초대 의장을 역임하기도 했다. 그의 이러한 헌신적 노력들을 높이 평가해 2009년 유엔총회에서는 니에레레를 ‘사회정의의 영웅’으로 지명했을 정도로 그는 한평생을 사회정의와 평등의 구현을 위해 헌신했다.
1999년 10월 14일 77세를 일기로 런던에서 백혈병으로 세상을 떠났으며 고향인 부티아마에 안장되었다.

역자 - 양철준
양철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에서 스와힐리어를 전공했고 케냐 나이로비대학교 언어학ᐨ아프리카언어학과에서 스와힐리어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벨기에 헨트대학교 아프리카 언어ᐨ문화학과에서 비판 담화 분석과 사회언어학을 공부해 박사 학위를 받았다. 전남대학교 인류학과에서 전임연구원으로 연구에 참여했으며 서강대학교 교양학부에서 강의했다. 현재 한국외국어대학교 아프리카학부에서 강의하고 있으며 아프리카연구소의 인문한국 연구교수로 연구 프로젝트에 참여하고 있다.

<인간과 개발>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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