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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Gottfried von Strassburg

    고트프리트 폰 슈트라스부르크 프로필

  • 국적 독일
  • 사망 1210년

2015.09.2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고트프리트 폰슈트라스부르크
중세 독일 기사문학의 3대 작가 중 한 사람으로 평가되며, 그의 ≪트리스탄≫은 ≪파르치팔≫과 더불어 2대 서사시로 꼽힌다. 고트프리트는 12세기 말에서 13세기 초까지 생존했으며 동시대인으로는 미네 시인 하르트만 폰아우에, 볼프람 폰에셴바흐, 발터 폰데어포겔바이데가 있다.
알자스 지방 출신인 고트프리트에 관한 기록은 남아 있지 않아, 출신이나 사회적 배경 등에 대해서는 후대의 간접적인 언급, 또는 ≪트리스탄≫의 내용에서 추론할 수밖에 없다. 한 예로, 중세 서사시인 루돌프 폰엠스(1200∼1254?)는 <훌륭한 게르하르트>에서 고트프리트 폰슈트라스부르크가 ≪트리스탄≫의 작가이며, 자신이 그 작품에서 영향을 받았다고 기록하고 있으며, <알렉산드로스>에서 하이델베르크 필사본을(코덱스 마네세) 증거로 대면서 고트프리트를 서사시인이자 격언시인이라고 칭하고 있다. 이것이 고트프리트에 관한 가장 오래되고 중요한 기록으로 평가된다.
그 외에 ≪트리스탄≫의 내용에서, 고트프리트는 13세기에 가장 융성한 도시였던 슈트라스부르크에서 상류층에 속하는 디트리히의 후원을 받아 활동했으며, 중세 대학의 하위 과목인 문법, 논리학, 수사학에 대한 광범위한 교양을 갖고 있고, 궁정문학가들뿐만 아니라 여러 지식인들과도 교류했을 것이라고 추정된다. 이는 고트프리트가 귀족 출신이 아니라 성직자로 세속적인 일을 맡았을 것임을 확인해 준다. 아마도 고트프리트는 파리나 볼로냐에서 대학 교육을 받았을 것이며, 프랑스어에 능통하고 라틴어 서적에 대한 지식도 가지고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트리스탄≫이 미완성으로 남게 된 이유는 알 수 없다. 고트프리트는 서사시를 완성하지 못하고 1215년경 죽은 것으로 추정된다.

진일상
이화여자대학교 독어독문학과에서 학부와 대학원 과정을 마치고 독일 레겐스부르크대학교에서 낭만주의와 고전주의 등 당시 예술의 주류와는 거리를 두고 자신의 독창적인 문학 세계를 구축한 하인리히 폰클라이스트에 관한 연구 논문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이화여대에서 연구와 강의 및 번역을 병행하고 있다. 클라이스트의 단편들을 옮긴 ≪버려진 아이 외≫로 2006년 한·독문학번역상을 수상했고, 번역서로 카프카의 ≪변신≫, 슈니츨러의 ≪엘제 양≫ 등이 있다.

<원서발췌 트리스탄>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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