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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1994년 쓰쿠바대학교 대학원 박사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 학사
  • 경력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

2015.10.01.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제아미(世阿彌, 1363∼1443)
제아미는 일본 중세 무로마치(室町) 초기에 활약했던 인물로, 일본이 자랑하는 전통 예능 노(能)를 대성시킨 장본인이다. 그는 노의 연기자임과 동시에 연출가이기도 했으며, 노의 대본인 요쿄쿠(謠曲)의 명작을 다수 써서 남기기도 해, 당대를 대표하는 예능인이자 문호로 손꼽히는 인물이다.
그가 태어난 시기는 당시 대표적 노 극단 중 하나였던 간제좌(觀世座)의 창시자로 지목되는 아버지 간아미(觀阿彌, 1333∼1384)가 출세의 발판을 막 다졌을 무렵이었다. 새로운 시대를 연 무로마치의 아시카가(足利) 막부 정권이 제3대 쇼군(將軍) 아시카가 요시미쓰(足利義滿, 1368∼1394 재위)의 통치하에 정치적 기반을 더욱 공고히 다지던 시기였다.
그는 어렸을 적부터 재능이 남달랐고 외모 또한 출중해, 뛰어난 예능인이자 문호로서의 자질을 천부적으로 타고났던 듯하다. 13세 때에 당대의 최고 지식인 중 한 사람이었던 니조 요시모토(二條良基)로부터 그 글재주와 외모에 관한 아낌없는 찬사를 받았다는 얘기는 너무도 유명하다.
그가 열두 살 되던 무렵, 그러한 그의 모습이 당대 최고 권력자인 제3대 쇼군 요시미쓰(義滿)의 눈에 들게 된 일대 사건이 벌어졌다. 교토(京都) 교외의 이마쿠마노(今熊野)라는 곳에서 아버지 간아미가 개최했던 노 공연을 쇼군 요시미쓰가 소문을 듣고 구경하러 왔던 것이다. 제아미보다 5년 연상인 열일곱 살의 소년 쇼군은 아역으로 무대 위에 선 미동(美童) 제아미의 모습에 매혹되고 말았다. 이것은 노 극단들의 생존경쟁이 치열했던 당시 상황으로서는 일대 사건이었다.
그 후 요시미쓰는 43세의 나이로 생을 마칠 때까지 제아미의 절대적인 후원자가 되었다. 이 기간 동안 제아미와 그의 극단 간제좌는 다른 경쟁 극단 사람들이 감히 넘볼 수 없는 절대 우위의 번영을 누리게 되었다.
이 같은 요시미쓰의 비호하에 그가 필생의 과제로 삼았던 예술적 지향점은 관객이나 독자가 최대의 감동을 느끼는 매력적 포인트를 가리키는 개념인 ‘꽃’의 완성이었다. 쇼군 요시미쓰도 예술적 안목이 무척 높아, 그 안목의 수준에 맞추려 제아미도 필사적으로 노력했다고 한다. 그리하여 그는 불교적 선(禪) 개념에 입각한 이 꽃 이론을 토대로 해서 ≪풍자화전(風姿花傳)≫, ≪화경(花鏡)≫ 등의 뛰어난 이론서를 써서 남겼다. 이들 저술들의 책 이름에도 ‘화(花)’ 자가 들어 있음을 보아도 이들 저술들의 중심에 ‘꽃’의 이론이 있음을 엿볼 수가 있다.
그러나 그토록 제아미를 총애하던 요시미쓰는 1394년 아들 요시모치(義持)에게 쇼군 자리를 물려주고 불교에 귀의해 출가하게 되며, 급기야 1408년에는 병을 얻어 죽고 만다. 그다음을 이은 제4대 쇼군 요시모치는 아버지가 생전에 자신을 냉대했던 것에 앙심을 품고, 아버지 사후에는 아버지가 시행하던 모든 방침을 철저히 폐지하려 들었다. 요시미쓰의 총애를 받던 제아미도 이 소용돌이 속에 휘말려야 했다. 요시모치는 아버지가 아끼던 제아미를 박대하고 다른 예능 쪽을 지원하고 장려했다. 제아미로서는 암울한 후반생의 시작을 맞이하게 된 셈이다.
요시모치의 뒤를 이은 제6대 쇼군 요시노리(義敎)도 제아미의 조카이자 라이벌 격인 온아미(音阿彌)를 가까이하고 제아미와 그의 아들들에게 갖은 탄압을 가했다. 이러한 시련은 급기야 늙은 몸으로 사도(佐渡)라는 외딴섬으로 유배되는 지경에까지 이르러 극에 달했다 하겠으며, 이 유배 사건은 역경의 연속이었던 제아미의 후반생을 극명하게 대변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이 한 가지 있다. 그것은 그 같은 시련의 후반생이 잉태해 낸 산물이기라도 하듯, 여기서 번역해 소개하는 ≪풍자화전≫을 위시한 대부분의 그의 역작들이 이 후반생에 이루어졌다는 점이다. 앞에서 소개한 ≪제아미십륙부집(世阿彌十六部集)≫에 수록된 이론서들이 거의 이 시기에 이루어졌던 것이다.
흡사 속살과 껍질의 틈새에 끼어든 불순물의 아픔을 진주로 승화시켜 낸 진주조개처럼 그는 이 암울한 후반생 속에서도 시련에 굴하지 않고 주옥과도 같은 그의 노 작품들 대부분을 지어냈다. 그는 자신에게 주어진 시련의 깊이를 사색의 깊이로 승화시킴으로써, 그가 필생의 과제로 삼았던 연기자로서의 ‘꽃’의 개화를 인생의 무대 위에서도 이룩해 냈던 것이다.

역자 - 김충영(金忠永)
김충영은 1985년 한국외국어대학교 일본어과를 졸업하고, 그해 가을에 일본 쓰쿠바(筑波)대학 대학원에 유학해 제아미(世阿彌)의 노(能)를 연구했다. 1994년에 제아미의 무겐노(夢幻能) 연구로 박사 학위를 취득하고 귀국했으며, 같은 해 3월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고려대학교 일어일문학과 교수로 봉직해 왔다. 무겐노(夢幻能)란, 노 작품 중에서도 주인공이 유령이나 신 등의 초현실적인 존재인 작품군을 가리키는 말인데, 그중에서도 특히 여인이 주인공인 작품들을 이전 문학과의 영향 관계를 중심으로 연구하고 있다. 또한 최근에는 노 이론서 쪽으로도 관심의 영역을 넓히고 있다. 일본학회 산하 일본문학회의 회장을 지냈으며, 현재 한국 일본학회의 편집위원을 맡고 있다. 대표적인 저서로서는 ≪일본 고전의 방랑문학≫(고려대학교 출판부, 1997),

<풍자화전>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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