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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름

2015.10.2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종름宗?, 498?~561?)은 자는 원름(元?)이며 남양(南陽) 열양(涅陽)이 본관이다. 출생 시기를 498∼502년 사이, 사망 시기를 561∼565년 사이로 추정한다. 어릴 때부터 총명하고 독서를 좋아해 말에 고사 인용을 잘했다. 향리에서 소아학사(小兒學士)라 불렀다. 525년 수재로 추천되어 대책시험(對策試驗)에 응할 수 있었다. 다음 해 왕부(王府)장사 유지린(劉之?)이 종름을 인재로 추천해, 훗날 양 원제(元帝)가 되는 상동왕(湘東王)이 그를 만나 보고 그날로 왕부기실(王府記室)과 서기관(書記官)을 겸하게 했다. 이때부터 30년 가까이 양 원제와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 하룻밤 사이 용천왕묘비(龍川王廟碑)를 지어 왕의 신임을 두터이 받았다. 왕이 540년 강주(江州)에 전임했을 때 왕부의 형옥참군(刑獄參軍)과 장서기(掌書記)를 겸했다.
그 후 임여(臨汝)·건성(建成)·광진(廣晋) 3현(縣)의 현령을 역임하고 모친상을 당해 퇴관했다. 상을 당해 슬피 곡하며 20일간 절명하고 깨어나길 세 번이나 했다는 기록이 있다. 또한 부친 고지가 재관 중 법을 어기니 대신 속죄하며 종신토록 채식하여 향리에 그의 효성이 회자되었다.
547년 상동왕이 형주의 장관으로 부임했을 때 종름을 불러 별가(別駕)와 강릉령(江陵令)을 지내게 했다. 552년 상동왕이 형주에서 원제로 즉위하고 종름을 중용해 오병(五兵)·도관(都官)·이부(吏部) 각 상서(尙書)의 요직을 맡았다. 이부상서 재임 시 천도 문제에 직면해 형주 토착인 종름은 다수의 건업 천도설에 반대하고 형주 천도설을 주장했다.
557년, 차기장군(車騎將軍)·의동삼사(儀同三司)를 맡았다. 세종(世宗)이 즉위하자 왕포(王褒)와 인지전(麟趾殿)에서 군서간정(群書刊定) 사업에 종사해 자주 위로연을 받았다. 북조에 출사하여 10년 정도 지낸 뒤 보정 연간에 64세로 생을 마감했다. 문집 20권을 세상에 남겼으나 그 책은 전하지 않고 오직 ≪수서≫·≪구당서≫·≪당서≫에 저록만 보인다.

<형초세시기>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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