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사오카 시키(正岡子規)와 나쓰메 소세키(夏目漱石)는 1867년생 동갑이다. 소세키는 2월 9일 에도(江戶, 현재의 도쿄)에서, 시키는 10월 14일 이요(伊予, 현재의 에히메 현)의 마쓰야마에서 태어났다. 이해는 메이지 유신이 일어나기 직전으로, 말하자면 두 사람은 일본의 근대와 함께 탄생해 성장했다고 할 수 있다. 같은 시대를 살며 일본의 근대 문학을 말할 때 빼놓을 수 없는 족적을 남기게 되는 두 사람이지만 이들의 삶은 전혀 다른 궤적을 보여 준다.
시키는 옛 마쓰야마 번(藩)의 무사였던 아버지 마사오카 쓰네히사(正岡常尚)와 어머니 야에(八重)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5세 되던 해에 아버지를 여의고 일찍이 가장으로 집안을 일으켜야 할 책임을 지게 되었다. 유학자였던 외조부 오하라 간잔(大原観山)에게서 한적과 서화를 익히면서 13세에 한시를 짓기 시작했으며, 18세에는 와카를 익히기 시작했고, 20세에는 고향의 하이쿠 시인인 오하라 기주(大原其戎)를 스승으로 모셨다.
1889년 5월, 대량의 각혈을 경험하고 ‘시키’라는 호를 쓰기 시작했다. 이후 시키의 문학은 결핵이라는 병과 함께 성장하고, 병고 속에서 완성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항상 죽음을 의식할 수밖에 없는 절박함은 대학을 중퇴하고 ≪니혼(日本)≫ 신문의 기자로서 본격적인 문예 활동을 시작하게 했으며, 나아가 하이쿠와 단카(短歌), 사생문(寫生文)에 이르기까지 거침없는 혁신에 착수하는 추동력이 되었다. 근대라는 새로운 시대를 온몸으로 살아가고자 했으나 청일 전쟁 종군으로 악화된 병세는 서양 유학을 좌절시킨 대신 내부로부터의 새로움을 발견하게 했다. 그의 혁신은 서양의 신문학이 아닌 스스로의 전통에서 문학의 표준을 찾는 것이었으며, 그 결과 자신만의 눈으로 대상을 파악하는 ‘사생(寫生)’이라는 방법론을 열어 가게 된다.
그의 삶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기간이었을 마지막 6년간, 누운 채 집필한 수필과 평론들은 삶의 소중함과 문학의 아름다움을 일깨우는 건강한 정신으로서 당대의 문인들을 병상에 불러 모았다. 그로부터 시작된 하이쿠와 단카 모임은 ≪호토토기스(ホトトギス)≫와 ≪아라라기(アララギ)≫라는 일본 시가 문학의 양대 산맥으로 이어졌다.
1902년 9월 19일, 35세를 일기로 영면하기까지, 병자의 감성이라고는 믿기 어려운 섬세하면서도 천진한 수많은 하이쿠와 단카, 수필 ≪묵즙일적(墨汁一滴)≫, ≪병상육척(病床六尺)≫, ≪앙와만록(仰臥漫録)≫을 남겼다.
소세키는 나쓰메 고헤나오카쓰(夏目小兵衛直克)의 5남 3녀 중 막내로 태어났다. 유신 직후 가세가 기울면서 늦둥이였던 소세키는 태어나자마자 두 번이나 양자로 보내졌다가 되돌아오는 파란을 겪었다.
어려서부터 문학에 흥미를 두어 니쇼가쿠샤(二松学舍)에서 한학을 공부했으며, 영어 교육 기관이었던 세이리쓰 가쿠샤(成立学舎)를 거쳐 17세에 도쿄대 예비 과정에 입학했다. 학창 시절에는 영어의 수재로 두각을 나타냈으며 장래 진로로 건축가를 꿈꾸기도 했다. 22세에 동급생 시키와 교제를 시작하면서 하이쿠를 짓기 시작했고, 시키의 고향을 방문해 훗날 그를 직업 작가의 길로 인도한 다카하마 교시(高浜虚子)를 처음 알게 되었다.
1903년 귀국 후 도쿄 제국대학 강사로 재직하면서도 동양인으로서 영문학을 강의한다는 위화감에 힘겨워했는데, 그의 처녀작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는 신경 쇠약을 치유하기 위한 수단으로 집필한 것이다. 1907년부터는 대학 교수라는 최고 엘리트 신분을 박차고 ≪아사히(朝日) 신문≫의 전속 작가로 전향했다. 이후 10년간에 걸친 창작 활동을 통해 근대화의 모순, 근대 문명 속의 개인의 불안과 고독, 인간의 속물성과 에고이즘에 대한 탐구 등, 근본적인 고민을 이어 갔다.
근대 지식인 청년의 사랑과 인생에 대한 모색을 그린 삼부작 ≪산시로≫, ≪문(門)≫, ≪그 후(それから)≫에 이어, ≪행인(行人)≫, ≪마음(こころ)≫의 대표작은 일관되게 개인의 내적 고뇌를 묘사한 것이다. 한편 근대 문명에 대한 안티테제로서 전통과 탈속적 세계관으로 인생을 바라보고자 한 ≪풀베개(草枕)≫와 ≪열흘 밤의 꿈(夢十夜)≫, 만년의 자전적 소설 ≪길 위의 생(道草)≫ 등에 이르기까지, 독보적 작품 세계를 구축했다.
정치적 사회적 격변이 휘몰아치는 시대에 태어나 근대의 빛과 그림자를 온몸으로 체득하고 고뇌한 지식인으로서, 그의 소설은 그의 삶 자체였으며 나아가 일본 근대의 표상이기도 하다. 그 오랜 고투의 상징이기도 한 위궤양 악화로 1916년, 49세로 타계했다. 마지막 작품 ≪명암(明暗)≫이 미완으로 남아 있다.
<시키와 소세키 왕복 서간집> 저자 소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