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요한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요한 피히테 프로필

  • 경력 독일 관념론 대표자

2015.11.13.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에드먼드 버크 Edmund Burke
아일랜드 태생의 정치가이자 학자. 1729년에 아일랜드 더블린의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1744년 더블린 트리니티 칼리지에서 공부하였다. 1747년 더블린 클럽을 창설하였으며, 법을 공부하기를 희망하는 아버지의 뜻에 따라 1750년 런던으로 이주하였다. 그러나 유럽 대륙을 여행하기 위해 공부를 곧 포기하였다. 그리고 글을 통해 생계를 유지하면서 생활하였다. 그의 문학에 대한 관심은 문학가에 대한 열망을 높였고 그의 저서인 '자연적 사회의 옹호론' (1756)에서 정치에 대한 추상적 이론을 비판함으로써 문학가로서의 결실을 맺음과 동시에 정치사상가로서의 면모를 보이게 되었다. 그러던 중 1759년 버크는 영국 정계에 진출하게 된다. 이때부터 영국의 정치가로써의 경력을 쌓게 되고 1766년에 어렵지 않게 하원의 의원이 되어 1794년까지 활동하였다.

버크는 처음부터 체계적인 정치 이론가가 아니라 정치가로서 활동하였다. 버크의 저술은 영국 휘그당의 온건 개혁파의 입장을 대변하는 데 쓰였다. 그는 왕실이 의회의 독립성을 침해한 것을 폭로하였고 아메리카 영국 정부의 식민지 정책을 비난하였으며 동인도 회사의 식민지 지배에 대한 비판을 하였는데 이것들은 휘그당의 온건 개혁파의 입장과 일치하는 주장들이었다. 이와 같은 행동에서 볼 수 있듯이 초기의 버크는 자유주의자의 입장이었다.

그러나 말기에 갑작스럽게 프랑스 혁명에 의해 분출된 자유주의적 평등주의 사상을 격렬히 비판함으로써 보수주의의 입장으로 선회하게 되었다. 1797년에 생을 마감할 때 까지 수많은 정치적 이슈에 관한 유명한 저술과 연설이 있다. 특히 18세기의 수많은 이슈들에 대한 그의 발언과 논의는 지금까지 많은 이들에게 '버크문제'로서 관심의 대상이 되고 있으며 그에 대한 칭찬과 비판이 공존하고 있다.

저자 - 요한 피히테 Johann Gottlieb Fichte
독일 관념론의 대표자이다. 초기 저작「종교와 이신론에 관한 아포리즘(1790)」은 B. 스피노자의 결정론 영향을 받는다. 1792년 「모든 계시의 비판 시도」를 출판하여 명성을 얻게 되고, 1794년 예나대학에 초빙된 이후 「모든 지식학의 기초」 등 주요저작을 발표한다. 1798년 논문 <신의 세계 지배에 대한 우리들 신앙의 근거에 관하여>를 발표, 신을 우주의 윤리질서로 정의하여, 무신론 논쟁을 불러일으킨다. 또한 그는 1807∼1808년 나폴레옹 점령 아래 베를린에서 「독일국민에게 고함」이라는 강연을 통해 독일의 민족독립과 문화재건을 역설한다.

역자 - 박희철
미국 일리노이대학교 어버너-섐페인캠퍼스 MBA과정 졸업했다. 한국외환은행에 30여년간 재직하며 이코노미스트로 활약했다. 에너지관리공단 IPE위원 및 저탄소녹색성장국민포럼 정책분과위원으로 활동하였다. 지은책에 『녹색성장과 금융』, 『서브프라임 패닉』, 『제국 경제학』, 『한국경제 2000~2010』, 『은행원을 위한 경제학』, 『장미와 함께하는 경제』 등 다수가 있다.

<프랑스혁명 성찰 / 독일 국민에게 고함> 저자 소개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