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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근

    이동근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대학원 문학박사
    서울대학교 국어국문학과 학사
  • 경력 대구대학교 국어국문학과 교수
    육군 제3사관학교 국어과 부교수

2015.11.1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박인량[朴寅亮, ?∼1096(숙종 1)]은 고려 전기의 문신이자 학자다. 본관은 평산(平山). 자는 대천(代天). 호는 소화(小華). 고려 개국공신 수경(守卿)의 현손(玄孫, 高孫子)이다. 문종 때 문과에 급제해 문한(文翰)의 여러 벼슬을 거쳤다. 1075년 요(遼)나라와 고려가 국경 문제로 다툴 때 요나라는 고려가 차지하고 있던 철령(鐵嶺) 이북의 땅을 강점하고는 압록강을 국경으로 하자는 제의를 했다. 이에 박인량이 진정표(陳情表)를 지어 요의 황제에게 보내자, 요 황제가 그의 문장에 감탄해 그 후 고려와의 국경 문제를 더 이상 거론하지 않았다고 하니 가히 박인량의 글재주를 알 만하다 하겠다. 우부승선(右副承宣)을 거쳐 1080년(문종 34) 예부시랑(禮部侍郞)으로 있을 때 송나라 황제가 풍비(風痺)에 쓸 약재를 보내준 데 대해 사례하기 위해 호부상서(戶部上書) 유홍(柳洪)과 함께 송나라에 방물(方物)을 바치는 사은사로 갔는데, 저장(浙江)에 이르러 태풍을 만나 대부분의 방물(方物)을 잃은 죄로 귀국하여 죄를 받을 뻔하기도 했다. 문장이 아담하고 화려하다는 평가를 받아 중국에 보내는 외교문서를 주로 담당했다. 송나라 신종(神宗) 때는 김근(金覲)과 함께 사신으로 갔는데, 그가 저술한 척독(尺牘)·표(表)·장(狀)·시(詩)를 송나라 사람들이 매우 칭찬했다고 한다. 이에 두 사람의 시와 문을 엮어 ≪소화집(小華集)≫이라는 책을 간행하기도 했다. 1089년(선종 6)에는 동지중추원사(同知中樞院事)에 오르고, 이어 우복야(右僕射)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를 지냈다. 저서로는 책을 지은 뒤 비의(秘意)가 담겨 있어, 은밀한 곳에 간직했다는 ≪고금록(古今錄)≫ 10권과 ≪해동고승전 (海東高僧傳)≫에서 작자를 박인량이라고 밝힌 ≪수이전(殊異傳)≫이 있으나 현재 전하지 않는다. ≪수이전≫의 작자를 최치원 또는 김척명(金陟明)으로 보기도 하나 최치원을 원편저자(原編著者)로, 박인량을 증보자(增補者)로, 김척명을 개찬자(改撰者)로 보는 견해도 있다. 현재 남아 있는 작품으로는 ≪동문선(東文選)≫에 <사송과사주구산사(使宋過泗州龜山寺)>·<오자서묘(伍子胥廟)>란 제목의 시 2편 외에, <문왕애책(文王哀冊)>·<순덕왕후애책(順德王后哀冊)>이란 제목의 책(冊) 2편, <상대료황제고주표(上大遼皇帝告奏表)>란 제목의 표전(表箋) 1편 및 <입료걸파각장장(入遼乞罷?長狀)>이란 제목의 장(狀) 1편이 실려 있다. 세 아들 경인(景仁)·경백(景伯)·경산(景山)이 모두 과거에 급제해 높은 관직에 오름으로써 고려 전기 명가(名家)의 위치를 확고히 다졌다. 시호는 문열공(文烈公)이다.

<수이전>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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