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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훈

    김정훈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62년
  • 학력 일본 관서학원대학 문학 박사
    조선대학교 국어국문학
  • 경력 전남과학대학교 교수

2016.04.0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본명은 긴노스케金之助로 근대 일본의 소외된 지식인들이 처한 곤경에 초점을 맞추어 이를 명료하고 설득력 있는 문장으로 그려낸 소설가이다. 메이지 유신 바로 전 해 에도(지금의 동경)에서 태어나 곧바로 시오바라가의 수양아들로 보내졌다. 아홉 살 때 양부모의 이혼으로 시오바라가에 호적을 둔 채 본가에 돌아왔으나 소년기의 불우한 환경은 마음의 골이 되어 그의 사상과 문학에 깊이 뿌리를 내렸다.
도쿄대학 문학부 영문과를 졸업하고 도쿄고등사범학교 강사로 출강하지만 1895년 사임하고 에히메현의 마쓰야마 중학교 교사로 부임했다. 그러나 1년 뒤 마쓰야마 중학교를 그만두고 구마모토의 제5고등학교에서 근무하던 중 나카네 교코와 결혼했다. 구마모토에서 생활한 지 4년째 되던 1900년, 문부성에서 영국 유학 명령을 받고 그해 9월 런던으로 떠났다. 그러나 런던에서 영어 연구에 회의를 느껴 대학에 가지 않고 하숙집에 틀어박혀 문학 서적을 탐독했다. 결국 그는 영국인과 동양인은 근본적으로 풍속, 습관, 국민의 성격 등이 다르기 때문에 서양 문학과 동양 문학의 괴리만큼 그와 영국인도 다르다는 결론을 내리고 자기본위라는 확고부동한 명제를 세워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보편적 문학 이론을 정립하기로 마음을 굳혔다. 그러나 그 때문에 극도의 신경쇠약에 걸린 그는 1903년 귀국하여 도쿄대학 영문과에서 문학론을 강의하며 원고를 정리했다.
1905년 1월 《호토토기스》에 게재한 《나는 고양이로소이다》를 시작으로 〈런던탑〉, 〈환영의 방패〉, 〈취미의 유전〉, 《도련님》 등을 발표했다. 1907년에는 아사히신문사에 입사하여 이후 평생 신문 연재소설을 썼다. 주요 작품으로는 《개양귀비》, 《그 후》, 《문》, 《춘분이 지날 때까지》, 《행인》, 《마음》, 《노방초》, 《명암》 등이 있다. 《아사히신문》에 《명암》을 연재하던 중인 1916년 12월 9일 위궤양 내출혈로 사망했다.

<고전의 세계 개정판>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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