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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원봉

    이원봉 프로필

  • 학력 서강대학교 대학원 철학과 석사
    서강대학교 독문과

2016.04.0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한창 번창하던 동프로이센의 국제적인 항구도시 쾨니히스베르크에서 태어나 평생 그곳을 떠나지 않았던 칸트는, 가난한 마구제조업자의 아홉 남매 중 넷째로 태어났다. 여덟 살 때 담임목사가 운영하던 경건주의 학교에 입학해 라틴어에 매료된 그는 신학을 공부하기 위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 진학했다가 논리학과 형이상학 담당 교수인 마르틴 크누첸에게서 뉴턴의 물리학과 독일 계몽주의자 크리스티안 볼프의 사상을 접하게 된다. 이때부터 뉴턴의 물리학과 볼프의 사상은 칸트에게 엄밀한 학문의 표본이 된다. 아버지의 죽음 후 더 이상 학교를 다닐 수 없게 된 칸트는 대학을 떠나 9년 동안 가정교사 일을 하고, 이후 절친한 친구의 도움으로 학위를 마치고 무급 대학강사가 된다. 수학과 물리학으로 시작했던 강의는 점차 범위가 확대되었고, 광범위한 독서를 바탕으로 한 구체적인 사례와 유머로 매우 실감나고 생기 있는 강의를 해 그는 능력과 인기를 갖춘 강사로 평가받는다.
《형이상학적 인식의 제1원칙에 관한 새로운 해명》이라는 논문으로 교수자격을 얻긴 했으나, 쾨니히스베르크에서 교수직을 얻지는 못한다. 베를린 대학교에서 많은 특권이 부여된 교수직을 제안받긴 했지만 타지에서의 활동 자체를 전혀 염두에 두지 않았던 그는 이 제안을 거절한다. 이후 1770년 15년간의 강사직을 끝내고 마침내 쾨니히스베르크 대학교에서 논리학·형이상학 교수로 임명된다. 이때부터 그의 독창적인 저술들이 쏟아져나온다. 쉰일곱이 되던 1781년 철학사상 일대 혁명이라 할 만한 《순수이성 비판》을 출간한다. 이 책의 출간으로 그는 유능한 대학교수이자 철학의 천재로 인정받지만, 여러 해석자들이 그의 뜻을 오해하자 이를 바로잡고자 재판을 출간한다. 하지만 해석자들의 논의는 해결되지 못한 채 아직도 계속되고 있다.
왕성하게 집필을 하던 그는 “이제 되었다”는 말을 마지막으로 세상을 떠난다. 주요 저작으로는 《실천이성 비판》, 《판단력 비판》, 《이성의 한계 내에서의 종교》, 《학부들의 논쟁》 등이 있다.

<고전의 세계 개정판>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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