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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보 안드리치 Ivo Andric

    이보 안드리치 프로필

  • 국적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 출생-사망 1892년 10월 10일 - 1975년 3월 13일
  • 학력 그라츠대학교 대학원 철학 박사
    빈대학교
  • 경력 유고슬라비아 외교관
  • 데뷔 1918년 산문시집 '흑해로부터'
  • 수상 1961년 노벨문학상
    국민훈장

2016.06.16.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이보 안드리치(Ivo Andric)
1892년 보스니아 트라브니크에서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 부모 사이에서 태어났다. 두 살 때 아버지가 돌아가시고 생활이 여의치 못하자 어머니는 안드리치를 비셰그라드에 있는 유복한 고모에게 맡겼다. 비셰그라드의 드리나 강에는 약 400년 전 옛 터키 제국 고관이 세웠다는 유명한 다리가 있는데, 안드리치는 날마다 이 다리를 건너면서 유소년 시절을 보냈다. 훗날 그는 이 다리를 중심으로 400여 년에 걸쳐 펼쳐진 이곳 사람들의 삶을 대하소설로 형상화했는데, 『드리나 강의 다리』이 그것이다. 이 작품은 그의 또 다른 작품인 『트라브니크의 연대기』, 『아가씨』와 더불어 ‘보스니아 3부작’으로 불린다.
12세 때 사라예보에 있는 벨리카 김나지야에 입학하여 새로운 지적 세계에 눈을 떴다. 한편 이 당시 그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이중 제국의 점령 아래 있던 남슬라브 민족의 해방을 주장하던 진보적 민족 단체인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가담하기도 했다.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난 직후에는 청년 보스니아 운동에 가담했다는 죄로 오스트리아 당국에 체포되었으며, 1917년에 특사로 석방되었다. 그 후 그라츠 대학에서 학업을 재개하여 「터키 지배의 영향하에서 보스니아 정신 생활의 발전」으로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 논문은 보스니아의 과거에 대한 뛰어난 통찰력을 가지고 있어 이후 발표하는 작품들의 토대가 되었다. 1920~1930년대에는 외교관으로 이탈리아, 프랑스, 스페인, 포르투갈, 벨기에, 스위스 등 유럽 각국에 주재하기도 했다.
몇몇 예외도 있지만, 그의 작품의 주된 배경은 보스니아다. 이곳은 인종적, 지리적으로는 유럽에 속해 있으면서도 오스만 투르크 제국의 지배, 이어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의 지배, 이어 유고 연방의 일원이었다가 1990년대 극심한 내전을 겪으면서 매우 복잡한 문화를 형성해 왔다. 안드리치는 어릴 때부터 이곳에서 서로 대립하는 두 세계, 즉 ‘회교도-동양’ 세계와 ‘기독교-서양’ 세계의 끊임없는 충돌과 혼합으로 어우러진 독특한 문화를 경험했다. 그는 이런 보스니아 문화에 깊이 매료되었고, 또한 이를 특수성에 매몰되지 않고 인간 보편성의 차원으로 끌어 올릴 줄 알았다. 보스니아 3부작 외에도 백여 편이 넘는 중, 단편을 발표함으로써 그는 발칸 최고의 작가가 되었다. 1961년에는 “자국 역사의 주제와 운명을 서사시적 필력으로 그려 냈다”는 평을 받으며 노벨문학상의 영예를 안았다. 1975년 83세의 나이로 타계했다.

<저주받은 안뜰 외>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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