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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순태

    배순태 프로필

  • 출생 1925년 2월 26일
  • 학력 1944년 진해공등해원양성소
    조선총독부 고등해원양성소
    1937년 창원 상남보통학교
  • 경력 진해고등해원양성소 실습선 승선

2016.09.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해옹 배순태

1925년 2월 26일 창원 상남면 토월리 출생
1937년 2월 경남 창원 상남보통학교 졸업
1941년 4월 조선총독부 고등해원양성소 입학
1944년 진해고등해원양성소 실습선 승선
1944년 11월 진해공등해원양성소 본과 졸업 등

우리나라가 세계 6대 해양강국으로 도약하기까지에는 수많은 해운항만 관계자들의 밤낮을 가리지 않는 불굴의 투지와 각고의 노력, 그리고 국가 발전에 이바지 하겠다는 투철한 사명감이 큰 역할을 했다고 할 수 있다.

그 중에서도 직접 배를 타고 5대양 6대주를 누비면서 거친 파도와 싸워온 선원들과 또 선박 입출항을 원활하게 도와주기 위해 위험을 무릅쓰는 도선사들의 역할은 그야말로 중차대하다고 하지 않을 수 없다.

타고난 뱃사람의 뚝심과 배짱으로 선원 생활과 도선사 생활을 통해
후배들에게 영원한 귀감이 되고 있는 한국 해운계의 살아있는 증인 배순태(裵順泰) 회장님은 '인간등대'라고 불리우신다.

그만큼 그에게 딸린 수식어는 대한민국의 ‘마도로스’라면 누구나 탐낼 만한 것이다. 배순태 회장은 대한민국 선장으로서 태극기를 휘날리면서 최초로 세계일주를 한 것을 비롯하여 처음으로 원양항로를 개척해 나갔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민간 외교관으로서의 역할을 담당했었다.

또한 인천항과 아산만의 도선구를 개척했으며 낙후되었던 항만 예선업에 과감히 뛰어들어 예선업 발전에도 이바지했다. 더구나 도선사협회를 창설하여 도선업무의 선진화와 도선사의 권익 향상에 큰 기여를 한, 말 그대로 ‘도선사의 사표’라고 할 수 있다.

대단한 체력과 괄괄한 성품으로 뱃사람의 씩씩함을 잃지 않으면서도 선장과 도선사, 그리고 해운경영인으로서 큰 성공을 거두었음은 물론, 해양대학교 등에 후진양성을 위해 15만평을 넘는 재산을 기부하는 등 ‘좋은 일을 많이 한 업계 원로’이시다.

<난 지금도 북극항해를 꿈꾼다>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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