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린위탕

    린위탕 프로필

  • 국적 중국
  • 출생-사망 1895년 - 1976년

2016.12.0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895~1976의 인물로 소설가, 수필가, 언어학자였다. 복건성 출생. 기독교 집안에서 태어나 이상주의자이며 낙천주의자였던 아버지 영향을 많이 받고 자랐다. 영어에 관심이 많아 상해 성요한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했다. 북경 청화학교 영어교사로 3년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대학 비교문화연구소에서 석사학위를 받았으나 지원금이 끊기는 바람에 프랑스로 건너가 중국인 이주노동자들에게 글을 가르쳤다. 그 후 독일 예나대학과 라이프치히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철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북경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문학비평과 음운학을 가르치면서 왕성한 집필활동을 시작했다.

1924년에 노신(魯迅)을 만나 그에게 많은 감화를 받는다. 군벌통치의 폐해를 고발하는 노신의 사상에 호응하면서 둘은 모든 군벌의 지명수배자가 되어 북경을 떠나 복건성 하문대학으로 자리를 옮겼다. 노신과 교류한 이 시기는 임어당의 문학 생애에 있어서 가장 진취적인 시기였다. 1930년대부터 중국어 외에도 영어로 글을 쓰고 발표했다. 1936년 뉴욕으로 갔고, 외국 독자들에게 중국을 소개하는 《생활의 예술》(우리에게는 《생활의 발견》으로 잘 알려져 있다)이 그 다음해에 미국, 영국, 캐나다에서 출간되었다. 이후에도 대외에 중국을 알리는 작업을 계속하여 중국 고전을 영어로 번역했다. 1948년 유네스코 예술부장, 1954년 싱가포르 난양대학 총장을 지냈다. 1965년 이후 대만에 정착하였고 1968년, 1970년 서울에서 열린 국제대학총장협회 회의와 제37차 국제펜클럽대회에 참가하여 강연을 하기도 하였다. 1976년 82세의 나이로 홍콩에서 생을 마쳤다. 작품으로는《폭풍 속의 나뭇잎》,《붉은 대문》등이 있다.

<이교도에서 기독교인으로>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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