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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제희

  • 출생 1987년
  • 학력 한국외국어대학교 이란어

2016.12.1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13세기 신비주의자이자 시인. ‘잘랄 아드딘 무하마드 발키’라고도 불리며 ‘루미’가 가장 보편적으로 알려져 있다. 1207년 9월 30일 지금의 아프가니스탄인 발흐에서 태어난 루미는 당시 ‘학자들의 술탄’이라 불렸던 신학자 아버지와 지역 지도자의 딸이었던 어머니와 함께 무굴 제국의 침략을 피해 현재 터키인 아나톨리아로 이주했다. 이후 그들은 코니아에 정착했고 ‘루미’는 이때 붙여진 이름이다. 아버지의 뒤를 이어 저명한 학자이자 신비주의자로 평가받던 루미는 37세가 되던 해에 평생의 친구이자 스승이자 연인이었던 샴스를 만나 인생 최대의 전환점을 맞는데, 전해져오는 이야기에 의하면 루미는 샴스와 눈이 마주치자마자 너무 강렬한 인상을 받은 나머지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고 한다. 두 사람이 함께 지낸 시간은 짧았지만 처음 만난 순간부터 사랑과 존경을 기반으로 한 아주 깊은 유대 관계를 유지했다. 자유로운 방랑자였던 샴스의 영향으로 루미는 강연과 설교를 모두 취소하고 샴스와 토론하는 데 시간을 보내며 영혼의 교류를 나누었다. 루미는 이슬람 신비주의의 분파인 수피즘의 가치이자 목적인 ‘신과의 합일’을 위해 교리 학습이나 율법이 아닌 철저한 금욕주의를 수행했다. 이들의 초월적인 교감에 주변 사람들은 의심과 질투를 일으켰고, 결국 샴스는 루미를 떠나고 만다. 샴스의 부재로 루미는 깊은 슬픔에 빠졌고 자기만의 세계에 완전히 고립되기에 이르렀다. 이후 샴스는 돌아왔지만 계속되는 시기와 질투에 코니아를 떠나 다시는 돌아오지 않았는데, 루미의 아들에 의해 살해되었다는 설이 있다. 그 시기에 루미는 고통과 슬픔을 마음속에 간직한 채 수많은 시와 산문을 쏟아냈고, 이때 이슬람 문화뿐 아니라 시문학 전 영역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마스나비(전 6권)》가 탄생했다. 루미는 극도의 황홀경 속에서 무려 2만 6천여 구의 시를 노래했고 그것을 받아 적어 만들어진 것이 ‘신비주의의 바이블’이라 불리는 《마스나비》이다. 이 작업은 루미의 가장 위대한 업적이라 평가받았을 뿐 아니라, 그에게 ‘우주적 시인’이라는 칭호를 선사해주었다. 이 외에도 4행 연구, 가잘 형식의 시가, 담론, 편지, 설교를 모은 산문들이 전해지고 있다. 1273년 스스로 죽음을 예언했던 루미는 그해 12월 자신의 아버지 곁에 묻혔다. 현재 코니아에 있는 메블라나 사원 안에 루미의 묘가 안치되어 있으며, 매일같이 전 세계에서 순례자들이 모여 그를 기린다.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성인이자 시인이자 종교인이었던 루미가 죽음으로써 완벽한 ‘신과의 합일’을 이루었음을 기념하기 위해 매년 12월 2일에서 17일 사이에 메블라나 교단에서 축제가 열린다.

<루미 시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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