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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버트 박 Robert Park

    로버트 박 프로필

  • 학력 University of Houston 경영학과
  • 경력 The Learning Institute of Texas(LIT) 영어학교 교장
    Bank One 은행장

2017.01.25.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로버트 박 (Robert Park)
8.15해방 후 한국에 온 미국 군사고문단의 일원인 미국인 아버지와 중국 베이징의대 학생인 한국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났다. 한국 이름은 박철수(朴喆洙). 연세대학교 1학년 재학 중에 ‘펄 벅 재단’ 제1호 장학생으로 선발되어 미국으로 갔다.
재단 본부가 있는 Philadelphia에서 수년간 펄 벅 여사와 함께 생활하며 노벨문학상에 빛나는 대문호로부터 직접 체계적인 영어를 배운 후, 미국 전역을 여행하면서 한국에 살고 있는 혼혈아들을 위해 모금운동을 벌였다.
그 뒤 캐나다로 가서 광부와 택시기사로 일하며 대학교를 마치고, 다시 미국 Texas주의 University of Houston 경영학과를 졸업했다. 서부의 유명은행 Bank One의 은행장에까지 올랐으나 그만두고 40세에 신학대학원에 입학, 3년 후 목사 안수를 받았다. Houston의 침례교회에서 사역하면서 2001년부터 The Learning Institute of Texas(LIT) 영어학교의 교장도 맡고 있다.
그는 세계 어느 민족보다 머리가 좋고 지식이 많은 한국인들이 다만 하나, 영어가 부족해 외국에서 제대로 대접받지 못하고 고생하는 것을 가장 안타까워하며, 연방정부의 I-20(학생비자를 위한 입학허가) 발급 인가를 받은 이 국제학교에서 특히 한국 이민들의 영어 능력 향상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다.
또한 1990년대 후반부터 사회주의 국가인 쿠바에서 당국의 눈을 피해 비밀 선교를 시작해서, 19개의 신학교와 96개의 교회를 세우는 놀라운 성과도 이룩했다.

노벨문학상 작가 - 펄 S. 벅 (Pearl S. Buck, 1892. 6. 26∼1973. 3. 6)
펄 벅은 미국 West Virginia 주에서 태어난 지 석 달 만에 장로회 선교사인 부모를 따라 중국으로 건너가 ‘진강’이라는 곳에서 어머니와 왕 노파의 손에서 자랐다. 그녀는 중국 선교에 전념한 아버지의 영향을 받아, 어린 시절에는 자신을 중국 사람으로 생각했을 정도로 중국에 대한 애착이 강했다.
펄 벅은 대학에 다니기 위해 18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랜돌프매콘Randolph-Macon 여자대학을 우등으로 졸업하고 다시 중국으로 돌아갔다. 25세에는 훗날 중국 농업 연구의 세계적 권위자가 된 미국인 John Lossing Buck 박사와 결혼해 성이 Buck이 되었다.
그들 사이에는 두 딸(첫째는 친자, 둘째는 입양)이 있었는데, 큰딸은 극도의 정신박약아였다. 《자라지 않는 아이 The Child Who Never Grew》(1950)에서 펄 벅은 이 사실이 그녀를 작가로 만든 중요한 동기의 하나라고 밝혔다. 이 딸은 《대지 The Good Earth》에서 주인공 왕룽의 딸로 그려진다.
여기에 더해, 중국 전역이 국민당과 공산당의 내전에 휘말리자 국민당군의 난징 공격 때, 온 가족이 몰살당할 뻔했던 위기를 겪으면서 동서양의 차이를 깊이 체험한 일도 그녀가 창작활동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되었다.
1930년에 처녀작으로 동서양 문명의 갈등을 다룬 장편 《동풍·서풍 East Wind·West Wind》을 중국에서 출간했는데, 출판사의 예상을 뒤엎고 1년도 안 되어 3쇄를 거듭하는 대성공을 거두었다. 이어서 빈농으로부터 일어서서 대지주가 되는 왕룽을 주인공으로 삼아 그 아내와 아들들의 일대기를 그린 장편 《대지》(1931년)를 써내 작가로서의 명성을 굳히면서 1932년, 미국의 퓰리처Pulitzer 상을 수상했다.
1934년에는 그녀의 저서들을 낸 미국 출판사 John Day Publishing Company의 사장 Richard Walsh와 재혼해 미국에 정착하고, 1938년에는 《대지》를 통해 미국 여성작가 최초로 노벨Nobel 문학상을 받았다.
펄 벅은 문학뿐 아니라 세계 인권 평등 운동에도 힘을 쏟아 인종 간의 편견 해소와 민족 간의 이해 증진을 위한 가교 형성에 헌신했다. 1949년에는 전쟁 중 미군에 의해 태어난 아시아 여러 국가의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입양기관 Welcome House를 창설하고 본격적인 사회사업을 시작했다.
유한양행 창업자 유일한(柳一韓) 박사를 통해 처음 한국을 알게 된 펄 벅은 한국에 대한 사랑이 남달라 박진주(朴眞珠)라는 한국어 이름까지 지을 정도였으며, 한국의 수난사를 그린 《갈대는 바람에 시달려도 The Living Reed》(1963)와 한국의 혼혈아를 소재로 한 《새해 New Year》(1968)를 펴내고, 1965년에는 다문화아동 복지기관인 ‘펄 벅 재단’Pearl S. Buck Foundation 한국지부를 설립했다. 2년 후에는 경기도 부천에 ‘소사희망원’을 세우고 10여 년 동안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복지활동을 펼쳤다.
일생 동안 소설과 수필, 평론, 아동서적에 이르기까지 80여 권의 책을 집필하며, 세계 다문화아동들을 위한 사랑을 실천하다가 81세에 생가가 있는 미국 Pennsylvania 주 Perkasie의 Green Hills 농장에 묻힌 펄 벅은 위대한 작가이자 혼혈아들의 영원한 어머니로 지금도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고 있다.

<펄s.벅에게 배운 미국영어>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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