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리디 접속이 원활하지 않습니다.
강제 새로 고침(Ctrl + F5)이나 브라우저 캐시 삭제를 진행해주세요.
계속해서 문제가 발생한다면 리디 접속 테스트를 통해 원인을 파악하고 대응 방법을 안내드리겠습니다.
테스트 페이지로 이동하기

박재형

    박재형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2017.11.30.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박재형(朴在馨)의 자는 백옹(伯翁), 호는 퇴계의 사상으로 나아가고자 하는 열망에서 스스로 진계(進溪)라 지었으며 본관은 밀양이다. 조선 중기의 문인 소요당(逍遙堂) 박하담(朴河淡, 1479∼1560)의 후손으로 헌종 4년(1838)에 경북 청도군 금천면 신지(薪旨)리에서 태어났다. 4세 때까지 말도 못하고 걷지도 못해 가족들의 걱정은 이만저만이 아니었지만 성장하고 나서는 학문을 좋아해 13경 공부에 몰두했으며 특히 성리학을 깊이 구명했다.
박재형은 부친 박시묵의 사우(師友) 관계를 배경으로 유치명과 허전의 문인이 되어 수학함으로써 영남 유학 안에서도 독특한 학맥을 형성하고 있다. 당대의 석학이었던 이종상, 류주목, 이돈우, 장복추, 이원조, 이진상 등에게서도 가르침을 받아 학문을 깊이하고 김흥락, 이만인, 이종기, 김도화 등의 학자들과 교유하며 학덕을 닦았다.
고종 7년(1870) 생원시(生員試)에 입격했으며 그의 훌륭한 인품과 뛰어난 학문으로 유일(遺逸)로서 천거되어 의령원참봉으로 서수(敍授)되었지만 응하지 않고 평생을 처사로서 향리에 살면서 후진 육성과 저술에 전념했다. 그는 자력으로 의창(義倉)을 설치해 구휼에 힘쓰는가 하면 문간계(文簡契)를 만들어 장학에 힘쓰기도 했다.
광무 4년(1900)에 항일 의병장으로 추대받아 거제도 부인당포에 출격했으나 그해 8월 12일 적탄에 맞아 순국했다.
그의 저술에는 ≪해동속소학≫ 외에 ≪해동속고경중마방(海東續古鏡重磨方)≫, ≪교자요언(敎子要言)≫, ≪도산지언(陶山至言)≫ 등 40여 권이 있다. 이 책들은 대개 당시의 유교 윤리의 책들이 중국 위주이던 것을 통탄한 박재형이 우리나라 선현들의 언행을 바탕으로 저술한 것이었다. 특히 ≪도산지언≫은 퇴계의 언행을 ≪논어≫에 비겨 정리함으로써 국학의 성립을 꾀했다.

<해동속소학> 저자 소개


본문 끝 최상단으로 돌아가기

spinner
모바일 버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