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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주명

    이주명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서울대학교 경제학과 학사
  • 경력 출판사 '필맥' 대표
    아시아경제 논설위원
    프레시안 편집부 부국장
    이코노미 21 편집장
    한겨레 기자

2014.12.08.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존 스튜어트 밀(John Stuart Mill)
1806년 런던에서 태어났다. 그의 아버지인 제임스 밀은 벤담의 제자이자 친구로서 대학 교육과 종교를 불신했지만, 아들인 밀의 교육에는 남다른 노력을 기울였다. 그 덕택에 밀은 일찍부터 천재성을 발휘하게 되고, 열일곱 살이 되던 1823년에는 아버지가 몸담고 있던 동인도회사의 서기로 취직도 하지만, 스무 살이 되면서 프랑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벤담주의에 대한 반감과 아버지의 냉정한 주지주의적 태도로 인해 심각한 정신적 위기를 겪게 된다. 이 정신적 위기는 스물네 살이 되던 1830년까지 지속되는데, 이런 정신적 위기 극복과 관련해서 밀은 전혀 새로운 경험을 하게 된다. 그것은 곧 해리엇 테일러(Harriet Taylor) 부인과의 만남이다. 밀은 해리엇의 남편인 테일러의 양해를 얻어 해리엇과 20년 동안 순수한 교제를 지속하다가, 1849년 테일러가 사망한 후에 2년간의 품위 있는 간격을 가진 다음 해리엇과 결혼한다. 해리엇과 [자유론(On Liberty)](1859)을 공동으로 저술하는 등 행복한 나날을 보내지만, 결혼한 지 7년 반 만에 해리엇이 결핵으로 죽음으로써 밀은 새로운 위기를 맞게 된다. 그러나 기적적으로 건강을 회복해 웨스트민스터 지역구 의원(Member of Parliament for Westminster)으로 정치 활동을 시작한다. 입후보를 부탁하러 온 정당 관계자들에게 밀은 특히 여성의 참정권을 지지한다는 공약을 제시해 뜻밖의 높은 지지를 얻어 하원 의원으로 당선된다. 임기 동안 밀은 노동자 출신 의원들을 지지하고 여성의 참정권을 위해 노력하는 등 매우 진취적인 의정 활동을 펴지만, 3년 후 총선에서의 재선에는 실패하고 만다. 그 후 해리엇의 딸인 헬렌의 보살핌을 받던 밀은 1873년 아비뇽에서 "나는 내 일을 다 끝마쳤다"는 말을 남기고, 부인 해리엇의 묘 옆에 묻혔다.
주요 저작에는 [논리학 체계(A System of Logic)](1843), [정치경제학 원리(Principles of political Economy)](1848), [자유론(On Liberty)](1859), [자서전(Autobiography)](1873) 등이 있다.

<자유에 대하여>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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