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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민호

    소민호 프로필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2년
  • 학력 한국방송통신대학교
  • 경력 2013년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
    2005년 <어린이 글수레> 대표
  • 데뷔 1994년 <동화문학> '바보 바위'
  • 수상 2011년 이주홍아동문학상
    2002년 부산아동문학상

2014.12.09.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소민호
나는 1952년 경상남도 합천군 대양면 정양리 회암마을에서 태어났다. 합천읍에서 2km가량 떨어진 곳이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에 태어난 나는 열악한 환경 탓이었는지 모르지만 요즘 아토피와 비슷한 태열을 앓았다. 온몸에서 진물이 나고 가려움에 밤낮으로 울어 대는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마을 사람들은 모두 고개를 흔들었다고 한다. 의료 시설이나 의술이 열악한 당시의 사람들 눈에는 완쾌될 가망이 없어 보였던 것이다.
할머니와 어머니는 포기하지 않고 좋다는 조약(민간요법에서 쓰는 약)은 무엇이든 찾아서 치료를 해 주셨다. 오늘에 와서 자식을 키우고 손자를 보면서 그 마음을 조금은 알 것 같다.
겨우 살아난 나는 한동안 아버지 얼굴을 못 봤다. 아버지는 부모와 처자식을 남겨 두고 전쟁터로 나가셨던 것이다. 몇 년이 흐른 뒤 제대를 하고 집에 돌아오자 아들이 낯설어하더라는 말을 하며 서운했던 그때를 종종 회상하셨다.
유년기가 지나고 1959년 국민학교에 입학을 했다. 공부에 관심이 많았던 아버지 덕분에 한글을 깨우치고 입학을 한 탓에 1학년 때부터 교내 웅변대회에 나가서 자주 입상했다. 선생님이나 마을 어른들이 써 주신 원고로 웅변을 했다. 지금 생각하면 비전문가들이라 시키는 사람마다 바라는 게 달라서 많이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그때는 동화책이 귀하던 시절이다. 특히 산골은 문화의 손길이 전혀 미치지 않았던 터라 교과서에 실린 동화를 접하는 게 고작이었다. 50여 년 전 국어 교과서에 실렸던 동화 몇 편, 지금도 널리 읽히고 있는 그 동화들이 떠오른다. 자식들에게 버림을 받으면서도 원망하지 않고 죽어서 할미꽃이 된 전래 동화 ≪할미꽃 이야기≫와 외로움을 사랑과 아름다운 꿈으로 버텨 내다가 바위가 된 ≪조금만 더 가지 바위≫, 그리움은 아픔을 지닌 아름다움이라는 것을 알려 준 ≪바위나리와 아기별≫ 같은 동화들이 나의 마음 밭을 아름답게 일궈 주었다.
사실 그때 나에게는 책 읽기보다 들로 산으로 뛰어다니며 놀거나 소 먹이는 일이 더 소중했다. 동화보다는 높은 나뭇가지에 있는 새 둥지를 기웃거리는 게 더 재미있었고, 여름에는 냇가에서 멱 감고 겨울에는 얼음지치기와 팽이치기가 내 어린 시절의 주된 일이었다.
어쩌다가 한 마을에 사는 또래가 어른이 읽던 이야기책이라도 손에 넣게 되면 이해를 못 하면서도 서로 돌려 가면서 읽고 또 읽는다. 간혹 차례를 기다리는 동무나 책 주인에게 쫓기기라도 하는 날이면 밥을 먹으면서 읽는다. 그러다가 김치 국물이나 반찬을 흘리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책이 몇 손을 돌아 주인 손에 들어갈 때는 이미 찢어지고 때가 묻어 책 구실을 더 할 수 없을 지경이 되기도 했다. 책 주인은 펄펄 뛰면서도 누가 그랬는지 굳이 따지지 않았다. 어련히 책은 사람 손을 거치면서 찢어지고 때가 묻게 마련이라는 걸 누가 가르쳐 주지 않아도 알고 있지 않았을까 싶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어른들이 들려주는 옛날이야기가 있어서 어린 가슴에 꿈을 키울 수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전래 동화에 나오는 이야기들이 대부분이지만, 저녁마다 호롱불 밑에서 콧구멍이 새까매질 때까지 들은 이야기를 듣고 또 들었다.
오늘날 베스트셀러의 인기를 누렸던 게 바로 옛날이야기였을 것이다. 어린 가슴에 꿈의 씨앗이 되었던 옛날이야기!
1965년 드디어 중학교에 입학을 했다. 합천읍에 있는 합천중학교였다. 중학교에는 국민학교에 없던 도서관이 있었다. 나는 도서관을 들락거리며 옛날이야기 대신 책을 읽었다.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늦은 시각까지 읽다가 쫓겨나기도 했던 일이 기억난다. 국민학교에 다니면서 책을 읽지 않아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때는 ≪홍길동전≫이나 ≪심청전≫과 같은 이야기책을 많이 읽었다. 그리고 빼놓을 수 없는 책은 ≪학원≫이라는 청소년 잡지다. 매월 새로운 내용을 읽을 수 있는 행복을 누렸다. 아마 다양한 내용과 또래의 글들까지 읽을 수 있어서 더 좋았던 게 아닌가 싶다. 더욱이 펜팔 란에 내 주소를 올려 또래들과 편지를 주고받으면서 글쓰기도 자연스럽게 이루어졌다.
1968년 중학교를 졸업하고 부모님이 먼저 자리 잡고 있는 부산으로 가서 고등학교에 진학을 했다. 고등학교 3년은 참으로 의미 없이 지나갔다. 공부에 흥미를 잃었다. 동적인 나는 도시의 생활이 답답했다. 도시의 냄새가 싫었고, 도시의 소리가 싫었다. 답답함을 달랠 길은 운동밖에 없었다. 아침 일찍 도장에 나가서 몸을 굴렸다. 학교를 마치고 나면 집보다 도장이 먼저였다. 온몸이 흠뻑 젖도록 운동을 하고 나면 답답했던 가슴이 조금은 후련해지곤 했다. 그렇게 고등학교 시절에는 운동한 기억밖에 없다.
1971년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대학 진학을 못 했다. 환경과 실력이 따라 주지 않았던 것이다. 그때부터 방황의 길로 접어든 나는 꿈을 찾지 못했다. 미래가 보이지 않는 암울한 시간들이 흘렀다. 나중에 나이가 들어 방송통신대학을 다니게 되었지만 많이 힘든 시기였다.
방황의 시간은 길었다.
고등학교 졸업 후 3년이 지난 1974년 7월 1일 나는 머리를 깎고 진주에서 입영 열차를 탔다. 처음 맞이하는 긴장된 분위기였다. 군인들이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숨도 크게 쉴 수 없을 만큼 공포의 분위기가 몸을 옥조였다.
내린 곳은 논산 훈련소 가까이 있는 연무역이었다. 캄캄한 밤중이어서 앞 사람 발소리만 들으며 어둠을 뚫고 발을 내디뎠다.
훈련은 혹독했다. 그래도 운동을 한 몸이라 다른 친구들보다 적응을 잘하는 편이었다. 그렇게 3년이라는 군 생활을 마치고 제대를 한 뒤 아내를 만났고, 웅변 학원을 운영했다.
나는 웅변 학원을 하면서 아이들 한 명 한 명의 특성에 맞추어 웅변 원고를 썼다. 다시 말하면 맞춤 원고였다. 대상 아이의 특성과 주변 환경을 참고로 해 원고를 써서 연습을 했고, 대회에 데리고 나가서 수상도 여러 번 했다. 그때만 해도 학원마다 누가 썼는지도 모르는 원고들이 나돌며 판에 박은 것처럼 훈련을 하던 실정이었다.
웅변과 함께했던 또 다른 일은 아이들에게 책을 읽히는 것이었다. 딱히 독서 지도라고 이름 붙여 지도하기보다는 책을 읽고 서로 생각을 발표하는 수준이었다. 그러다 보니 나도 동화를 자주 접하게 되고 동화에 대한 관심도가 높아지면서 동화를 쓰기 시작했다.
몇 년이 지난 어느 날 동화작가 한 분을 만났다. 우연한 인연이었다. 그렇게 만난 인연으로 1994년 계간 ≪동화문학≫이라는 어린이 잡지에 글을 투고하게 되었고, 신인상에 당선되어 등단을 하게 되었다. 등단 작품은 <바보 바위>였다. 동해안 삼사해상공원에 있는 바위를 소재로 한 동화였다. 동해가 한 눈에 내려다보이는 공원 마당 한쪽에 자리 잡은 바위 앞에는 ‘천하제일화문석’ 이라는 작은 돌비석이 서 있다. 그 후로 ‘글누리’라는 독서 교실과 작은 도서관을 운영하면서 아이들과의 생활을 이었다.
2001년부터 2005년까지 지인 몇 명과 힘을 모아 계간 ≪어린이글수레≫라는 어린이 잡지를 발행했다. 순수 어린이 잡지를 고집하면서 적으나마 작가들에게 원고료까지 지불했고, 글이 실린 어린이들에게도 도서 상품권을 보내 주었다. 하지만 생각과 달리 운영에 여러 가지 어려움이 따라 20호를 마지막으로 종간을 해야 했다.
2007년부터 2012년까지는 전국지역아동센터 부산지원단 소속 아동복지 교사로 활동하면서 부산 시내에 있는 지역아동센터 아동을 대상으로 독서 지도를 했다.
2010년에는 부산아동문학인협회 회장과 부산문인협회 아동문학분과 분과위원장을 맡아서 3년 동안 협회의 심부름꾼 노릇을 했다.

작품 및 수상 연보

1994년 계간 ≪동화문학≫ 봄호 신인문학상 동화 부문에 <바보 바위> 당선.
1996년 동화 ≪호박벌 이야기≫(동화문학) 출간.
1998년 중편 동화 <소년과 비둘기>가 ≪어린이동산≫에서 우수상 수상. <형제섬의 비밀>이 부산문학 우수상 수상, 대산문화재단 창작 지원금 수혜.
1999년 동화 ≪형제섬의 비밀≫(상서각) 출간.
2000년 동화 ≪작은 솔 씨의 고집≫(도서출판 대산), 그림 동화 ≪박물관에서 만난 인디언≫(한국헤밍웨이), 그림 동화 ≪차스키와 테라스≫(한국헤밍웨이) 출간.
2002년 부산아동문학상 수상.
2003년 동화 ≪기분 좋은 거짓말≫(도서출판 스타) 출간.
2005년 교양 도서 ≪어린이 리더십 50≫(동화사) 출간.
2006년 그림 동화 ≪꿈꾸는 빈 병≫(한국헤밍웨이) 출간.
2007년 그림 동화 ≪진짜 으뜸이지≫(한국솔로몬북스), 동화 ≪꿈꾸는 돌콩이≫(일곱난쟁이), 고전 ≪어린이 서유기≫(홍진P&M) 출간.
2008년 인물전 ≪우장춘≫(효리원) 출간.
2010년 동화 ≪다라국 소년 더기≫(섬아이) 출간. 한국문화예술위원회 창작 지원금 수혜.
2011년 동화 ≪일곱 빛깔 무지개≫(도서출판 해성), 동화 ≪작은 소리꾼≫(대성) 출간. 이주홍아동문학상 수상.
2012년 그림 동화 ≪개미 턱의 힘자랑≫(헤르만헤세), 그림 동화 ≪노래하는 돌멩이≫(헤르만헤세), 그림 동화 ≪작은 씨앗의 용기≫(헤르만헤세), 그림 동화 ≪곤충나라에 간 가람이≫(헤르만헤세), 동화 ≪바위틈에서 키운 하얀 꿈≫(달과소) 출간.

해설 - 김영균
1961년 강화에서 출생했다. 경인교대를 졸업하고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교육학 석사와 문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현재 한양초등학교에서 교사와 경희대학교에서 강사로 재직하고 있다. ‘공연과이론을위한모임’(공이모) 회장을 역임했으며 아동극작가, 연극 평론가, 교육연극학회 이사, 아동문학학회 이사로도 활동 중이다.

<소민호 동화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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