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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명옥

  • 국적 대한민국
  • 학력 충남대학교 대학원 박사
    충남대학교 대학원 석사
    충남대학교 대학원 영어 영문학과 학사
  • 경력 인천대학교 초빙교수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위원회 사무국장
    연간지 ≪POETRY KOREA≫ 편집
  • 수상 허난설헌 번역문학상
    세계우수시인상
    세계계관시인상

2014.12.12.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에밀리 디킨슨(Emily Dickinson)
에밀리 디킨슨은 1830년 12월 10일 매사추세츠(Massachusetts)의 애머스트(Amherst)에서 변호사이자 정치가, 대학 이사였던 아버지 에드워드 디킨슨(Edward Dickinson)과 어머니 에밀리 노크로스(Emily Norcross)의 사이에서 세 남매 중 둘째로 태어났다. 그녀는 세상을 떠날 때까지 생애의 대부분을 애머스트에서 살았다. 1847년부터 1848년까지 약 1년간, 해외 파견 선교사의 신붓감을 양성할 목적으로 수준 높은 교양 과목과 신앙인의 자세를 가르치던, 애머스트 근교 사우스 해들리(South Hadley)에 있는 마운트 홀리오크 신학교(Mount Holyoke Seminary)를 다녔다. 그러다가 기침과 허약증으로 인해 그녀의 건강이 악화되는 것을 염려한 아버지의 만류로 집으로 돌아온 후, 워싱턴(Washington)을 한 번 방문하고 이모 댁을 방문하거나 눈병을 치료하기 위해 보스턴(Boston)을 몇 번 여행한 것을 제외하고는 평생 애머스트를 떠나 본 적이 없었다. 또한 그녀는 외출을 극도로 자제하는 은둔 생활을 했는데, 1872년 이후로는 의사도 집으로 찾아와 약간 열린 문틈으로 걸어 다니는 그녀를 보며 진찰을 해야 했을 정도로 과도한 대인 기피 증세를 보이기도 했다.
디킨슨이 은둔 생활을 하게 된 것은 그녀의 악화된 시력은 물론, 심한 신경통으로 고생하던 병약한 어머니를 돌보아야 하는 딸로서의 책임감, 종교 문제, 아버지와의 사고방식의 차이, 식구들 사이에서의 경쟁의식, 그리고 주 의원으로 활동하던 아버지로 인해 끊임없이 드나들던 손님들을 맞이해야만 하는 것에 대한 일종의 무의식적인 거부감 등에서 기인한 것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이보다 더 큰 이유로, 그녀의 생애에 걸쳐 몇 번 있었던 정신적이고 정서적인 위기를 들 수 있다. 말하자면, 그녀는 사랑하는 사람들과의 이별을 경험하면서 스스로 바깥세상과 점점 담을 쌓게 된 것이다.
그 첫 번째로, 그녀의 아버지 디킨슨의 법률사무소에 근무하며, 그녀에게 당대 작가들의 작품을 소개함으로써 문학적 소양과 자유로운 종교관을 심어 주고 교양의 지평을 넓혀 주었으며, 창작에 대한 야심을 불러일으켜 주었던, “불멸을 가르쳐 주었던 친구”로 언급되는 청년 법률학도 벤저민 뉴턴(Benjamin Newton)과의 이별을 들 수 있다. 뉴턴이 1850년에 자립해 자신의 법률사무소를 개업할 목적으로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가서 거기서 결혼을 하고 1853년에 죽자, 그녀는 실의에 빠지게 된다.
두 번째로는, 문학적 설교를 통해 그녀에게 지적 도전과 외부 세계와의 접촉 기회를 준, 힘차고 매력적인 기혼의 중년 목사 찰스 워즈워스(Charles Wadsworth)와의 이별을 들 수 있다. “가장 절친한 이 세상의 친구”라고 생각했던 워즈워스가 필라델피아에 살다가 캘리포니아의 샌프란시스코로 이사를 가면서 연락이 끊기자, 그녀는 다시 한 번 정신적으로 위기를 겪게 된다. 이때부터 디킨슨은 흰옷만 입고 살면서 서서히 은둔 생활을 시작해 외부와의 접촉을 피하는 삶을 살게 된다.
그리고 세 번째로는, 아버지의 오랜 친구로서 그녀의 집에 자주 드나들던 오티스 로드(Otis P. Lord) 판사와의 이별을 들 수 있다. 그녀는 아내를 잃고 홀로 된 로드 판사를 아버지처럼 생각하고 그에게서 위안을 찾았는데, 이 같은 관계는 장차 정열적인 연인 관계로 발전하게 된다. 하지만 그때까지 지속되던 자신의 독특한 독자적 생활 패턴을 바꾸기 어려울 뿐 아니라, 시 창작 활동의 자유를 구속당하는 것이 두려워 그와의 결혼을 수락하지 않는데, 디킨슨을 “북극광처럼 빛나는” 존재로 여기던 로드 판사가 1884년에 죽자 실의에 빠져 헤어나지 못하다가, 자신의 건강까지 악화되어 1886년 5월 15일에 세상을 떠남으로써, 그녀는 55년 5개월 5일간의 생애를 마치게 된다.
사랑하던 사람들과의 사별로 인한 슬픔과 아픔은 그녀로 하여금 사색과 명상의 생활에 더 깊이 빠지게 함으로써 은둔 생활을 가속화시키는데, 1866년 이후로 그녀는 사람을 상대하는 것은 아이들로 제한하고 완전한 칩거에 들어간다. 그리고 이로 인해 “은둔 여왕(Queen Recluse)”이라는 별명을 얻게 된다. 또한 그녀는 미혼으로, 늘 흰옷만 입고 다녔기 때문에 “뉴잉글랜드 수녀” 혹은 “백의의 처녀”라는 별명을 얻기도 하는데, 흰옷은 그녀에게 영적 결혼을 한 신부 드레스로서의 의미와 육체적 죽음을 뜻하는 수의로서의 의미를 동시에 갖는 것이었다. 그리고 후에 신경쇠약 증세가 생기면서 교회에서 사람들로부터 “마귀 들린 여자”라는 비난을 듣기도 한다.
디킨슨은 초등교육 과정을 거친 후, 애머스트 아카데미(Amherst Academy)에서 희망하는 강좌를 선택해 중·고등학교 수준의 교육과 문예 창작 훈련을 받았으며, 약 1년간의 신학교 교육을 받기도 했지만, 이 밖의 정규 학교 교육을 받은 적은 없었다. 하지만 성서보다는 문학작품에 더 많은 흥미를 가졌던 그녀는 독서를 통해 문학적 소양을 기르는 것과 창작에 대한 열의와 영감을 얻었다. 그녀는 책을 많이 읽지는 않았지만, 깊이 탐독하는 습성이 있었다. 그녀는 고대 신화와 셰익스피어, 밀턴(Milton) 등의 작품을 읽었고, 영국 낭만주의 작가 중 특히 존 키츠(John Keats), 셸리(Shelley), 바이런(Byron)을 좋아했으며, 여성 작가로는 엘리자베스 브라우닝(Elizabeth Browning)과 브론테(Bronte) 자매, 조지 엘리엇(George Eliot)을 좋아했고, 빅토리아조의 시인인 로버트 브라우닝(Robert Browning)과 앨프리드 테니슨(Alfred Tennyson)도 좋아했다. 또한 미국 작가로는 주로 초월주의 작가들인 랠프 월도 에머슨(Ralph Waldo Emerson), 헨리 데이비드 소로(Henry David Thoreau), 너새니얼 호손(Nathaniel Hawthorne) 등의 작품을 읽었다. 그녀의 삶과 자아 탐색 정신이 세상과 단절된 것으로만 생각하는 독자들이 많지만, 사실 그녀는 실제로 만나 접촉을 하지는 않았어도, 서신을 통해 당대 최첨단의 정신을 가진 지식인들과 시를 교류하며 부단한 교우 관계를 가졌다. 이는 당시 새로 생긴 기차로 인해 우편 업무가 빠른 기능을 하기 시작한 것과도 무관하지 않다. 그녀는 또한 자선 단체와 어린 시절의 절친한 친구이자 당시 유명한 작가이던 헬렌 헌트 잭슨(Helen Hunt Jackson)에게 출판을 권유받기도 했지만, 생전에 출판 자체를 인정할 수 없었던 그녀는 이를 거부했다.
그녀는 성경을 읽기는 했지만, 가문의 보수적인 청교도 신앙을 그대로 따르지는 않았고 교회도 형식적으로만 가끔 나갔다. 그리하여 1850년에 청교도 정신 부활 운동의 물결이 일면서 유행하던 신앙 대부흥회에도 참석하지 않았고, 그녀 스스로 “반란의 무리들 틈에 끼어 홀로 외로이 서 있노라”고 신앙 문제로 인한 소외감을 표현했듯이, 종교의 반항아로서 청교도 신앙에 대해 회의를 품었으며, 구원의 희망에 대해 강한 반발심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친한 친구를 비롯한 많은 가까운 사람들의 죽음으로 인해 일찍부터 기독교의 신에 대해 근본적으로 강한 회의감을 가졌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생각은 그녀로 하여금 전통의 사고방식과 기존 종교에 대한 불신과 전통적인 시 형식에 대한 반발로 나아가도록 했고, 이러한 사고는 거기서 한 걸음 더 나아가, 그녀의 시에 혁신적인 요소를 불러오며 시의 내용과 형식에 있어 일찍이 선구자적 위치를 차지하도록 했다. 생전에는 그녀의 요구로 그녀의 시가 익명으로 일곱 편밖에 출간되지 못했지만, 사후에 44개의 시 꾸러미가 여동생 러비니아 노크로스 디킨슨에 의해 발견되었다. 그리고 평생에 걸쳐 그녀의 문학 상담 역할을 해 왔던 비평가이자 저널리스트, 작가인 토머스 웬트워스 히긴슨(Thomas Wentworth Higginson)과 토드 부인(Mrs. Todd)의 주선으로 1775편의 시가 세 권의 시집으로 1890년, 1891년, 1896년에 연속 출간되고, 두 권의 서간집이 1894년에 출간되었다. 시인으로서 별로 인정을 받지 못하던 디킨슨은 1920년대에 이르러서야 시인으로 인정받기 시작했으며, 1955년 토머스 존슨(Thomas H. Johnson)에 의해 그녀의 시선집이 출판됨으로써 그녀는 오늘날 위대한 시인으로 자리매김하게 되었다.

역자 - 윤명옥
윤명옥은 충남대학교 영문과를 졸업한 후 같은 대학원에서 존 키츠의 시에 대한 연구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캐나다와 뉴질랜드에서 시 창작을 공부했다. 충남대학교에 출강하는 한편, 국제계관시인연합 한국위원회 사무국장과 한국시 영역 연간지 ≪POETRY KOREA≫의 편집을 맡았었으며, 현재는 홍익대학교와 경원대학교에서 영미 시와 교양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영미 시와 캐나다 문학에 관한 다수의 논문을 발표해 왔으며, 전공 저서로 ≪존 키츠의 시 세계≫, ≪역설·공존·병치의 미학: 존 키츠 시 읽기≫가 있고, 우리말 번역서로 ≪키츠 시선≫, ≪바이런 시선≫, ≪테니슨 시선≫, ≪하디 시선≫, ≪디킨슨 시선≫, ≪휘트먼 시선≫, ≪나 자신의 노래≫, ≪포 시선≫, ≪롱펠로 시선≫, ≪가넷 시선≫, ≪엘리자베스 브라우닝의 사랑시≫, ≪로런스 시선≫ 등 다수가 있다. 영어 번역서로 ≪A Poet's Liver≫, ≪Dancing Alone≫, ≪The Hunchback Dancer≫ 등이 있다.
허난설헌 번역문학상, 세계우수시인상, 세계계관시인상을 수상했으며, 한국과 미국에서 시인으로 활동하고 있다. 우리말 시집(필명: 윤꽃님)으로 ≪거미 배우≫, ≪무지개 꽃≫, ≪빛의 실타래로 풀리는 향기≫, ≪한 장의 흑백사진≫, ≪괴테의 시를 싣고 가는 첫사랑의 자전거≫가 있고, 미국에서 출간된 영어 시집(필명: Myung-Ok Yoon)으로 ≪The Core of Love≫, ≪Under the Dark Green Shadows≫가 있다.

<디킨슨 시선>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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