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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붕

  • 국적 대한민국
  • 출생 1956년
  • 경력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 사무국장
  • 데뷔 1987년 월간문학 동화 「요요」
  • 수상 제17회 한국아동문학상 동화부문
    제4회 눈높이아동문학상

2014.12.17. 업데이트 작가 프로필 수정 요청

저자 - 이붕
자서전! 어려서부터 참 호기심을 당긴 말로, 꼭 한 번은 써 보고 싶었다.
아래 글은, 그래서 써 본 자서전 중 몇 부분만 옮겨 적은 것이다.

나는 모든 걸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받아들이는 성격이라서 환경을 탓하거나 주변 사람에게 불만을 가져 본 적이 없다. 도시의 확장으로 지금은 목포시지만 당시는 가난한 시골인 무안군 삼향면에서 3남 4녀 중 넷째 딸로 태어났으니 먹을 것도 부족한 때(1956년)였다. 그런데도 불평하거나 억울해하지 않고 자랐기에 지금껏 초조해하거나 피해 의식 가져 보지 않고 살아간다. 그 원인이 뭘까 생각해 보니, 어디서나 사랑과 혜택을 받았던 때문인 것 같다. 내가 만난 사람들, 특히 모든 선생님은 참으로 좋은 분이었다. 최악으로 공인된 선생님도 내게만은 그렇지 않았으니까. 늘 받으며 자란 탓에, 욕심을 부리거나 이 앙다물고 노력하는 태도가 없는 점은 단점일 수 있어도, 사는 게 늘 평온해서 좋다. 그러니 별다른 이야깃거리는 없겠지만 자신을 돌아보기로 했다.

내게는 늘 무임승차 같은 운이 따랐다. 무엇보다 중학교를 가게 된 일이 그 하나다. 위로 언니 셋은 줄곧 우등상을 받았지만, 상급학교 진학을 할 수 없었다. 당시 시골의 딸들은 거의라고 할 만큼 대다수가 중학교에 가지 못했다. 더구나 나보다 두 살 많은 오빠를 중학교 보내느라 급급한 데다 내 아래로 남동생이 둘이었으니, 아들들은 어떻게든 가르쳐야 한다는 부모님을 보며 내 진학은 꿈도 꿀 수 없었다. 전국표준화검사에서 농촌 120%라는 진단이 나왔지만 방법이 없으니 담임선생님도 안타까워할 뿐이었다.
그런데 내가 6학년을 마칠 무렵, 목포의 혜인여중에서 장학제도가 있으니 1등을 보내 달라고 학교마다 돌며 홍보했다. 그걸 선생님께서 알려 주셔서 나는 시험을 치렀고, 장학생으로 합격했다. 그렇지만 교복을 맞추고 교과서를 살 형편이 아니라서 포기해야 했다. 그런데 때마침 국회의원에 출마하려는 후보 한 분이 학교당 한 명씩 입학금을 대 준다는 것이었다. 그 혜택은 당연히 내게 왔고, 나는 무사히 중학생이 될 수 있었다. 학업이 운이라고 더 확신하는 것은, 다음 해부터 입학시험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뺑뺑이라고 하는 추첨제 도입으로 학생을 자동 배정받게 된 학교는 장학생 제도를 바로 없앴다. 만약 한 해만 빨랐더라도 나는 중학교 문턱도 밟지 못했을 테니, 운이라고 할 수밖에.
그렇지만 입학이 다는 아니었다. 학용품에, 실험 실습비도 내야 하고 무엇보다 교통비가 없어 왕복 네 시간을 걷는 것이 어린 내게는 힘에 부쳤다. 그래도 시작이 반이라고 방법은 늘 생겼다. 어느 날은 담임선생님께서 불러 교무실로 갔더니 봉투를 주시며 말씀하셨다.
“녀석아, 담임한테 돈 봉투 받아 가면서 학교 다니는 녀석은 너밖에 없을 거다.”
수업 후 선생님 댁으로 가서 아들의 공부를 조금씩 봐 주라 하시더니, 용돈을 주신 것이다. 몇 달 후에는 반 친구가 입주 가정교사 자리를 소개해 주어 중학교를 졸업할 수 있었다.
중학교만 마치면 취직해 집을 도울 거라 믿고 계신 부모님의 기대를 나는 모른 체하고 또 다시 담임선생님과 모의해 역시 장학생 제도가 있는 혜인여고로 진학했다. 참으로 기이하게도 다음 해부터는 고등학교 역시 목포시도 추첨제가 시행되어 장학생을 뽑지 않았으니 내게 운이 따랐다고밖에 볼 수 없었다. 고등학교 때도 입주 과외 자리가 있었고, 점심시간에 도서관으로 와서 그날 배운 수학을 가르쳐 달라는 다른 반 친구도 있어 교통비를 해결하기도 하며 졸업할 수 있었다.
나는 고등학교만 졸업하면 돈을 벌어 부모님을 도울 생각이었다. 하지만 인문계를 나왔으니 취직이 될 리 없었다. 그래서 서울로 올라와 숙식까지 해결된다는 구로공단 H전자라는 곳에 들어갔다. 그런데 3개월 만에 문제가 생겼다. 공장에서 그만두라는 것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 당시 공장 노조가 생기던 때였고, 여고까지 나와 공원이 되었으니 노동운동을 하려고 위장 취업한 것으로 본 것이다. 당시에 나는 노동운동에 대한 개념도 없는 데다가 3교대 야간근무까지 하는 단순노동에 질려 가던 터라 공장을 나왔다. 할 수 없이 숙식이 해결되는 집으로 들어가 가정교사 겸 집안 살림까지 하게 되었다. 그러면서 방송통신대학 행정학과에 입학을 하였다. 국문과가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그때는 없었다. 늦은 밤에 라디오 강의를 듣자 간첩으로 오해받기도 했지만, 사실을 알고는 출석 수업 나가는 기간이면 많은 편리를 봐주었다. 어쨌든 이 또한 늘 따르는 학업 운이었으니 나의 배움은 처음부터 끝까지 무임승차인 셈이었다. 그렇게 모은 돈과 오빠가 서울로 와서 받는 봉급으로 자취를 하면서 대학 수업을 따라갈 수 있었다. 그때 자취방 옆집에서부터 학생을 맡겨 와서 과외를 시작했다. 학생이 늘고 늘어 수입이 짭짤한 사람으로 알려진 1980년, 전면 과외 금지가 실시되었다. 뭐든 잘 지키는 나는 당장 그만두었다. 직업 놓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지금의 남편이 평생 먹여 살리겠다며 프러포즈를 하기에 나는 다음 해 결혼을 했다.
결혼 후, 아이가 유치원에 갈 나이가 되자 과외 경험을 살려 학원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마침 글짓기 학원이 붐을 타던 시기라서 번창했고, 학교 방과후 상설반 사업을 하기 전까지 속셈, 보습 등 일반학 과목 강좌까지 운영했다.

나의 글쓰기 단련은 어린 시절 일기와 편지 쓰기였다고 할 수 있다. 2년하고도 반 학기를 담임한 정경숙 선생님께서 일기장 밑에 써 주시는 칭찬이 즐거움이었다. 어른이 된 후 들으니, 선생님께서는 내 글 읽는 즐거움으로 59명 일기장을 매주 검사하셨다고 하셨다. 편지 쓰기도 나는 아주 즐거웠다. 파월 장병께 쓰는 의무적인 편지를 얼마나 즐겨 썼는지 제대 후, 학용품을 사 들고 학교까지 찾아오실 정도였다. 또 이웃 아주머니들의 편지 대신 써 주기도 있었다. 당시에는 집집마다 외지의 공장으로 간 자식들이 한두 명씩은 있었다. 이웃들은 자식에게 연락하려면 초등학생인 내게 부탁했다. 부모가 쓴 것처럼 써서 읽어 드리면, 어린애가 어찌 그렇게 어른 맘을 다 적었느냐고 감탄하던 칭찬을 호롱불 밑에서 나는 즐겼다. 읽는 것도 그만큼 좋아해서 학교 도서실 책을 다 읽은 아이라고 전교 선생님이 알고 계셨다. 일기와 편지 쓰기 탓인지, 어려서부터 논리적이지 못하면 답답해했던 것 같다. 담임이 결근하신 날 옆 반 선생님이 ≪들장미≫라는 동화를 들려주셨는데 다 듣고 나서 나 혼자 따졌던 기억이 있다. ‘내용에 전혀 안 나오는데 왜 제목이 들장미냐?’고 질문했더니 얼굴이 빨개지시며 잘 모르겠다고 하셨던 장면이다.
중학교 1학년 때는 선생님을 속인, 부끄러우면서도 우쭐했던 경험이 있다. 담임이 국어 담당이셨는데 ≪장 발장≫을 읽고 독후감을 써 오라고 하셨다. 책을 읽지 못한 채, 반 친구들처럼 자습서에 간추려져 있는 줄거리를 보고 숙제를 했다. 그런데 검사를 하신 선생님께서 나만 책을 읽었고, 나머지는 모두 자습서 보고 베낀 거라며 벌을 내리셨다. 나는 처음 보는 내용이었지만 살을 붙이고 생각을 입혀 노트 한 바닥을 다 채웠는데, 친구들은 그대로 베낀 탓에 몇 줄 안 되어 들킨 것이다.
고등학교 시절에도 위문 엽서 쓸 때면, 각기 다른 내용으로 스무 명까지 대신 써 주며 나름 즐거웠다. 그렇게 생긴 실력이 있었는지 고3 때는 전국 반공 글짓기 대회에 응모한 작품이 국방부장관상을 받았다.

중학교 때 시험공부로 작가 이름과 호, 출생지를 외울 때였다. ‘내가 작가가 되어 교과서에 작품이 실리면 우리 동네에서 태어난 학생들은 억지로 외우지 않아도 알고 있으니까 좋겠구나’라고 상상에 빠진 경험이 있다.
초등학교 1학년 국어 책에 <거인의 정원>이 있었는데 판타지(그때는 판타지란 말을 몰랐지만)의 힘에 감동했다. 칼바람 부는 한겨울을 꽃 피고 훈훈한 봄바람 부는 환경으로 단숨에 바꾸는 그 힘이 그렇게 멋지고 아름다울 수가 없었다. 그런 이야기를 써 보고 싶다는 생각이 왈칵 밀려들었다.
다른 하나는 중학교 때 읽은 <큰 바위 얼굴>이다. 부자도, 장군도, 정치가도 큰 바위 얼굴을 닮지 않았다는 걸 읽으면서 작가는 분명 시인을 추켜세우리라 짐작했다. 그런데 시인이 ‘어니스트야말로 큰 바위 얼굴을 닮았다’고 외치는 장면에서 전율이 느껴졌다. 삶의 다양함 속에서 진실을 찾아낼 줄 아는 사람이 작가이며, 작가는 세상을 아름답고 진실되게 볼 수 있도록 해 주는 사람이란 걸 깨달으며 멋진 직업이란 생각을 했다. 어니스트 같은 인물을 창조해 내는 작가의 힘이 대단해 보였고 그런 힘을 맘껏 발휘하고 싶었다.
사실 나는 문학 수업을 따로 받아 보지 못했다. 하지만 학원에서 국어와 글쓰기를 가르치다가, ‘초등학교 때부터 국어 과목에서 이론과 실기를 다 배웠구나’라는 걸 알게 되었으니 이것도 무임승차였다.
동화 장르는 처음 쓴 작품이 광주에서 발행되던 ≪삼남신문≫에 실렸다. 고등학교 은사님이 학교를 떠나 그곳에 재직하셨는데, 지면 채울 일이 생겼는지 갑자기 동화를 한 편 써 보내라고 하셨다. 쓰는 것에 겁이 없는 나는 정말 동화를 써 보냈다. 조금 지능이 낮았던 동네 아이가 엿장수와 벌인 일을 이야기로 꾸몄다. 그 후, 은사님은 내 작품이 실린 신문 한 장을 주셨고, 한국아동문학회라는 단체가 있으니 가입하라고 하셨다. 정식 등단도 하지 않은 상태로 나는 회원이 되었다. 그 후, ≪월간문학≫에 2회에 걸쳐 입선되어 등단(1987년)이 되었다. 그렇게 10년이 흐르면서 문단을 알게 되자, 전혀 모르는 분께 검증받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월간문학≫의 심사위원은 이미 알고 지내는 선배님들이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중, 대교눈높이문학상과 처음 생긴 한우리청소년문학상에 도전했다. 학원에서의 경험으로 생각해 둔 게 있어서 그야말로 술술 써졌다. 여름방학 동안 장편동화 ≪교감 선생님은 청개구리≫를 썼고, 추석 연휴에 혼자 남아 청소년소설 ≪꽃이 필 시간은 있다≫를 완성해 필명으로 응모했다. 운이 곱빼기로 따랐는지, 응모한 두 곳에서 한꺼번에 당선이 되었으니, 그때가 1996년이다.

나의 작품 세계를 나보다 잘 아시는 분은 최지훈 선생님이시다.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 일을 하는 7년 동안, 최 선생님께서 고등학교 교과서 집필을 위해 범문사로 출근하신 1년을 제외하고 주욱 한 사무실에서 지냈으니 아동문학 작가 중에는 이영호 선생님과 함께 나를 가장 많이 지켜보셨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최지훈 선생님께서는 내 책이 나올 때마다 고맙게도 평을 써 주셨는데 몇 부분만 발췌해 본다.

장편 ≪비틀거리는 아빠≫
(전략) 그는 동년배의 작가에 비하여 과작인 편이다. 그러니까 드문드문 책이 나올 때마다 낯선 작가의 작품을 받아 드는 기분이다. 이름을 잊어버릴 만하면 기억을 재생시켜 주듯이.
그를 신인처럼 여기게 하는 것은 작품 자체에 있다. 그가 다루는 것은 결코 엉뚱한 것이 아닌데 이상하게 남다르게 별난 것을 다루었다는 느낌을 갖게 하기 때문일 것이다.
(중략) 그의 많지 않은 작품들을 살펴보면 그가 가지는 관심은, 어디까지나 내 개인적인 느낌이겠지만, 발표 당시에 다른 작가들이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의 범주에 있는 관심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는 느낌이다. ‘참, 이런 게 있지’ 하고서 잊고 있던 것에 대한 깨우침 같은 거라고 생각할 수 있겠다. (후략)
생명을 사랑하게 하는 생태 동화 ≪반디야 만나서 반가워≫
(전략) 지식적 정보를 동화적 표현을 활용하여 전달하는 것을 목표로 삼는 학습 동화는 당연히 미학적 가치를 추구하는 문학의 범주에서 제외된다. 그런데 ‘생명-환경-생태’라고 하는 주제는 ‘과학’이라고 하는 학습 정보 내지 지식 정보를 수단으로 하거나 매개체로 하기 마련이므로 자칫 학습 동화의 덫에 걸리기 쉽게 되어 있다.(중략)
이붕은 바로 그러한 장애를 알고 있기 때문에 이를 극복하기 위한 다양한 장치를 구사하고 있다. 그러한 장치는 슬기로운 아이디어라고 할 수 있다.
예컨대 반딧불이들이 자기 극복을 위한 훈련을 하는 이야기를 하면서 반딧불이들이 밤에 날다가 물에 자주 익사하는 사고와 천적이 거미라는 사실을 흘린다거나, 박물관에 난데없는 322호실을 소개하면서 반딧불이가 천연기념물 322호라는 것을 알게 하는 따위가 그러하다. (후략)

현실에서 겪는 이야기도 좋지만 무한한 상상력으로 꿈을 키울 수 있는 판타지 동화를 쓰고 싶다. 현실 문제나 유행하는 소재는 나 아니라도 잘 쓰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누군가 한 번 다룬 소재는 자신이 없어져 손을 대지 않는 편이다.

약력과 작품 및 수상 연보

1985년~2000년 유치부부터 고등학생까지 다니는 글짓기, 속셈, 보습학원 운영.
1987년 ≪월간문학≫에 동화 <요요>로 등단.
1991년 단편동화집 ≪호호병원≫(삼성미디어, 이헌숙 작) 출간.
1992년 단편동화집 ≪향기의 천사≫(용진, 이헌숙 작) 출간.
1995년 유아동화 ≪미래와 영민이≫(아이템플, 이헌숙 작), 유아동화 ≪전철 타고 가는 날≫(교수문화, 이헌숙 작) 출간.
1996년 장편동화 ≪산성비는 정말 무서워요≫(한국서적공사, 이헌숙 작) 출간.
1997년 장편동화 ≪엉뚱이의 모험≫(여명출판사, 이헌숙 작), 장편동화 ≪교감선생님은 청개구리≫(대교, 이헌숙 작), 장편동화 ≪칭찬주머니≫(민지사), 청소년소설 ≪꽃이 필 시간은 있다≫(한우리미디어) 출간, ≪교감선생님은 청개구리≫로 제4회 대교 눈높이문학상, ≪꽃이 필 시간은 있다≫로 제1회 한우리청소년문학상(구) 당선, ≪교감선생님은 청개구리≫를 시작으로 활동과 출판을 필명 ‘이붕’으로 함.
1998년 그림동화 ≪할머니의 생일잔치≫(삼성당) 출간.
2000년 단편동화 ≪진국이의 특별한 방학≫(헤밍웨이) 출간.
2000년~2006년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 사무국장직을 맡고 ≪생각이 저요, 저요!≫ 편집.
2001년 장편동화 ≪물꼬할머니의 물사랑≫(영림카디널), 단편동화집 ≪동물원의 수수께끼≫(현대문학북스), 단편동화집 ≪큰 울보와 작은 울보≫(한국파스퇴르), 그림동화 ≪강아지가 그랬어요≫(천재교육) 출간, ≪동물원의 수수께끼≫는 현대문학어린이에서 실시한 ‘2000년 발표 단편 중 최우수작품상’으로 뽑힘.
2002년 장편동화 ≪아빠를 닮고 싶은 날≫(계림), 단편동화집 ≪생각동화≫(깊은책속옹달샘), 단편동화집 ≪열두 달 이야기 유치원Ⅰ. 오늘은 대장 뽑는 날≫(계림), 단편동화집 ≪열두 달 이야기 유치원Ⅱ. 왕관 쓴 크레파스≫(계림), 단편동화집 ≪우리 엄마는 걱정대장≫(현대문학북스) 출간.
2004년 장편동화 ≪반디야, 만나서 반가워!≫(영림카디널), 장편동화 ≪아빠를 닮고 싶은 날≫(대만에서 출간), 장편동화 ≪5학년 10반은 달라요≫(대교, ≪교감선생님은 청개구리≫의 제목을 바꿔서 재출간한 것), 만화 ≪교감선생님은 청개구리 1≫(엄지검지) 출간.
2005년 장편동화 ≪그래서 행복해≫(대교) 출간.
2006년 그림동화 ≪동물들의 친구 사파리차≫(깊은책속옹달샘) 출간.
2007년 장편동화 ≪비틀거리는 아빠≫(홍진 P&M), 그림동화 ≪머지와 사과나무≫(교원) 출간. ≪비틀거리는 아빠≫로 제17회 한국아동문학상 수상, 가정법원에 개명신청이 허락되어 필명이 호적상으로도 성명이 됨.
2010년 장편동화 ≪국어야, 국어야 나 좀 도와줘! 1≫(삼성당), 그림동화 ≪알록달록 물감바지≫(신동교육) 출간.
2011년 장편동화 ≪국어야, 국어야 나 좀 도와줘! 2≫(삼성당) 출간.
2012년 그림동화 ≪아기기린 늘차부니≫(훈민출판사) 출간.

해설 - 최지훈
1942년 대구에서 태어났다. 1964년 교육대학교에 입학해서 1978년 졸업한 후, 대구와 울진에서 초등교사 생활을 했다. 1976∼1984년 서울대학교사범대학 교원교육원 국어과를 수료한 다음, 영양·예천·경주 등에서 중고등학교 교사 생활을 했다.
1977년 계간 ≪아동문학평론≫를 통해 평론가로 등단했다. 1984∼1994년 동아출판사 국어사전(≪동아국어새사전≫)을 개발했다. 1985∼2000년 계간 ≪아동문학평론≫의 편집장을 지냈다. 1994∼1999년 사단법인 한우리독서문화운동본부에서 상임이사로 재직했다. 1999∼2006년 사단법인 어린이문화진흥회 상임이사로 재직했다. 2000년부터 현재까지 한국아동문학학회 부회장 재임 중이다.
지은 책으로는 평론집 ≪한국현대아동문학론≫(아동문예사, 1990), 평론집 ≪동시란 무엇인가≫(민음사, 1992), 평론집 ≪어린이를 위한 문학≫(비룡소, 2001) 등이 있다. 한국현대아동문학상, 제1회 방정환문학상을 받았다.

<이붕 동화선집> 저자 소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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