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말과 민초 시기의 혁명가이자 저명한 국학대사 장타이옌의 강연록. 장타이옌의 독특하고 풍부한 견해와 함께 중국 전통 학문인 경학, 철학, 문학의 역사 내용이 체계적으로 전개되어 있다. 장타이옌이 인식한 국학의 가치와 그 연구의 의의를 이해해 볼 수 있다.
이 책은 ≪국학 개론(國學槪論)≫을 완역한 것으로, 옮긴이는 우리말 서명을 ≪중국학 개론≫으로 바꾸었다. ≪국학 개론≫은 청말(淸末)과 민초(民初)의 저명한 학자 장타이옌의 강연록으로, 1922년 4월에서 6월까지 장타이옌이 상하이에서 개최한 국학 강연을 당시 청강자였던 차오쥐런(曹聚仁)이 채록해 단행본으로 낸 것이다. ≪국학 개론≫이 단행본으로 출간되어 대중에게 호응을 받자, 그의 청강생들은 강연에 대한 자신의 독자적인 의견의 개진을 통해 장타이옌의 강연을 비판하기도 했다. 이와 관련한 내용은 부록(附錄)으로 실었다.
청말 민초 시대를 배경으로 한 장타이옌의 혁명 정신
장타이옌의 국학 강연 정신은 구국과 항일(抗日)을 외치는 혁명가 정신의 연장이다. 그리고 그가 주장한 국학 개념의 형성은 청말 민초라는 혁명과 격동의 시대와 밀접한 관계를 갖는다. 장타이옌은 혁명가로서의 저항과 투옥, 망명 생활 외에도 반청(反淸) 운동 이후 등장한 신해혁명의 실패 및 반위안(反袁) 운동과 그 좌절 등을 겪었다. 그리고 그의 강학은 새로운 형태의 혁명운동의 모색 속에서 시작된 것이다. 투옥 생활 중 결국 중병을 얻고 고향인 항저우로 낙향한 장타이옌에게 시대는 국학 연구를 통한 혁명이라는 새로운 과제를 안겨 주었던 것이다. 1920년 이후 ≪국학 개론≫을 필두로 장타이옌은 “국학 강학”이라는 공개 강연을 통해서 ‘혁명 시대’와는 다른 ‘강학 시대’라는 새로운 차원의 애국 계몽운동을 전개했다. ≪국학 개론≫은 상하이에서 개최한 정기적인 강학회의 강연에 해당한다. 장타이옌에게 국학 연구와 국학 강연 활동이란 민족의식과 애국심을 고취하는 애국 계몽운동의 연속으로 혁명과 항일 등의 시대정신을 내포하고 있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장타이옌이 인식한 국학의 의미와 그 범주
강학 운동 이전부터 그는 원래 신해혁명의 선봉장인 동시에 문사철(文史哲)에 정통한 저명한 학자였다. 그가 주장하는 국학이란 서방의 서학(西學)과 병존해 화이부동(和而不同)하며 근대 시기로 전형(轉形)하는 학문의 독자적 한 형태로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장타이옌이 주장한 국학의 범주는 유가 전통을 강조하는 공교(孔敎)의 범주와는 무관하다. 그는 국학은 절대로 유학(儒學)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고 했고, 유학은 제자학 중 하나로서 기타 학설과의 비교를 통해 객관적인 비판이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그는“역사는 넓은 의미에 따라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첫째는 언어 문자고, 둘째는 문물제도고, 셋째는 인물과 사건이다”라고 했다. 일본에서 진행된 국학 강습회(國學講習會)에서 그의 첫 번째 강연 내용은 ‘언어 문자학’, 두 번째 강연 내용은 ‘문학’, 세 번째 강연 내용은 ‘제자학(諸子學)’으로 구성되었다. ≪국학 개론≫에 경학(經學), 철학, 문학에 대한 강연 내용이 있고, 도쿄에서 강연한 내용을 수록한 ≪국고 논형(國故論衡)≫이 소학(小學), 문학, 제자학으로 구성된 점 역시 이러한 관점의 반영이라 할 수 있다.
≪국학 개론≫의 구성과 내용 소개
≪국학 개론≫은 모두 열 차례의 강연을 수록한 강연록으로, ‘개론(槪論)’, ‘경학’, ‘철학’, ‘문학’, ‘국학의 진보’ 등 다섯 개 분야로 이루어졌다. 제1장은 ‘개론’에 해당하고, 장타이옌은 ≪국학 개론≫의 내용을 두 가지로 분류했는데, 첫째는 ‘경학의 본질’이고 둘째는 ‘국학의 연구 방법’이다. 경사(經史)에는 비록 약간의 신화적인 내용이 수록되었지만 전체적으로는 궤변적이거나 신비한 것은 아니라고 했다. 제자백가에서도 결코 종교에 대해서 언급하지 않았고 도덕과 철학에 대한 내용들을 다루었다고 했으며, 중국은 고래(古來)로 종교 사상이 희박했지만 대신에 정치(政治)를 중시했다는 점을 지적했다. 그리고 ‘국학의 연구 방법’에 대해서 그는 고대 서적의 진위 판별을 가장 중시했으며, 소학(小學)의 전통을 강조하면서 음운(音韻), 훈고(訓?), 문자(文字)에 능통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제2장은 경학 학파에 대한 내용이다. 장타이옌은 “육경개사(六經皆史)”라는 관점을 신봉했다. 그리고 한대(漢代)에 금문경(今文經)과 고문경(古文經)의 학파가 출현한 배경과, 동한(東漢) 이후 청대(淸代)에 이르기까지의 경학(經學)의 역사를 개괄적으로 설명했다.
제3장은 철학 학파에 대한 내용이다. 장타이옌은 선진 시기의 제자백가를 상세하게 분석했고, 진한 이후의 철학 발전에 관한 설명에 비교적 많은 부분을 할애했지만 불학(佛學)에 대해서는 생략했다.
제4장은 문학 학파에 대한 내용이다. 장타이옌은 죽서(竹書), 백서(帛書)를 일컬어 “문(文)”이라 했고, 이를 낮추어 부르는 이름이 “문학(文學)”이라고 했다. 그리고 서한(西漢) 이래의 문학 학파에 대해서 상세히 언급했다. 또한 운문(韻文)이 모두 시는 아니라면서 백화 시(白話詩)를 혹평하기도 했다.
제5장은 국학의 진보에 대한 내용이다. 그는 국학의 진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 경학은 지식 원형의 비교를 통해, 철학은 직관(直觀)과 자득(自得)을 통해, 문학은 정서적인 감흥(感興)을 통해서 진보를 도모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