몽매한 백성을 어여삐 여기는 마음으로 엮은 ‘바르게 살기’ 그림책이다. 충신으로, 효자로, 열녀로 본이 되는 이들의 이야기는 조선의 가치를 잘 보여준다. 또한 세필로 섬세하게 그려 이야기보다 자세한 그림은 보는 재미도 더한다. 최선본으로 꼽히는 성균관대학교 소장 영인본을 대본으로 삼아 완성도를 더했다.
≪삼강행실도(三綱行實圖)≫는 3강(三綱), 즉 군위신강(君爲臣綱)·부위자강(父爲子綱)·부위부강(夫爲婦綱)의 모범으로 삼을 만한 중국과 우리나라의 충신·효자·열녀를 각각 35명씩 뽑아 모두 105명의 행적을 소개하고, 그것을 그림으로 그린 것이다.
이 책의 맨 앞에는 권채(權採)가 쓴 <삼강행실도 서(三綱行實圖序)>가 있고, 이어서 목록에서 효자, 충신, 열녀의 고사를 제시했다. 그 구성은 정초(鄭招)가 <삼강행실 발(三綱行實跋)>에서 “≪삼강행실도≫는 이에 기재한바 효자·충신·열녀 각각 110명의 행실을 기록하고, 또 형상을 그리고는 시(詩)로써 찬(贊: 사람의 사실을 서술한 뒤에 이를 평론하는 한 문체)했다”라고 한 바와 같이 행실에 대한 내용과 그림, 그리고 시(혹은 찬)로 이루어졌다.
효자 편은 ≪이십사효(二十四孝)≫와 ≪효행록(孝行錄)≫에 나오는 내용과 한국 인물의 효행 등을 근거로 정리한 것으로 “효자에 있어서는 삼가 태종문황제(太宗文皇帝)가 하사한 ≪효순사실(孝順事實)≫의 시를 기록하고, 겸하여 신의 고조(高祖) 신 보(溥)가 지은 ≪효행록≫ 가운데 있는 명현(名賢) 이제현(李齊賢)의 찬(贊)을 가져왔고 그 나머지는 보신(輔臣)으로 하여금 나누어 짓게 했다”는 것과 같이 이 가운데에는 태종문황제가 ≪효순사실≫이란 책에 썼던 시를 수록하고 또 ≪효행록≫에 이제현이 지었던 찬을 수록한 것이 있다. 그리고 충신 편과 열녀 편은 중국과 한국의 충신과 열녀에 대한 사실을 기록하고, “충신과 열녀의 시도 문신들로 하여금 나누어 짓게 했다”라는 내용에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문신들이 각각 나누어 지었다는 시가 수록되어 있고, 또 그림이 있다.
이 책이 편찬된 과정에 대해 권채는 <삼강행실도 서>에서 “여기서 집현전 부제학 신 설순(?循)에게 명령하여 편찬하는 일을 맡게 했다”라고 하여, 이 책이 세종 때 설순을 중심으로 편찬이 되었음을 밝히고, 이어서 이 책이 지어지기까지의 과정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그리하여 중국으로부터 우리 동방에 이르기까지 고금의 서적에 있는 것을 찾아보지 않은 것이 없이 하여 효자·충신·열녀로 뚜렷이 기술할 만한 사람 각각 110명을 뽑아서 전면에는 그림을 그리고 후면에는 그 사실을 기록했으며, 아울러 시(詩)까지 써놓았다. 편찬이 끝나자 ≪삼강행실도≫란 이름을 내리고 주자소(鑄字所)로 하여금 발간해서 영구히 전하게 했다”라고 소개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효자 편에는 <민손이 홑옷을 입다(閔損單衣)>를 비롯하여 35편이 수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중국 것이 31편이고, 우리나라의 것이 4편이다. 충신 편에는 <용방이 죽음을 무릅쓰고 간하다(龍逢諫死)>를 비롯하여 35편이 수록되어 있는데, 이 가운데 중국 것이 29편이고 우리나라의 것이 6편이다. 열녀 편에는 <백희가 불에 타 죽다(伯姬逮火)>를 비롯하여 35편이 수록되었는데, 이 가운데 중국의 것은 29편이고 우리나라의 것은 6편이다.
이 책이 왜 편찬되었는지에 대해 정초는 발문에서 “신이 가만히 생각하옵건대, 오늘날의 사람이 옛사람과 더불어 서로 접하지 못하고, 음성과 형모를 서로 알지 못하니, 피차에 누구를 사랑하고, 누구를 미워하리오. 그러나 곧고 어질고 고상하고 결백한 사람을 보면, 흔연히 사모하고, 존경을 다하여 손을 들어 이마에 대며, 그의 말구종 같은 천한 일이라도 하기를 원하고, 구차하고 천하고 더럽고 추한 사람을 보면, 침 뱉고 꾸짖어도 부족하여, 심지어는 직접 그 목을 찌르려고 하니, 이는 인심이 같고, 천리가 어둡지 않은 까닭이다. 하물며 그 형용을 친히 보고, 그 일을 찬양 탄미함이랴. 그 감동함이 반드시 깊을 것이요, 그 분발함이 반드시 빠를 것이다. 이제 우리 전하께옵서 이에 그런 것을 이미 아시고, 이로 연유하여 감동 분발하여 덕풍(德風)을 진흥하게 하시니, 무릇 금세의 백성이 된 자, 그 누가 관망하고 일어나지 않으리오. 장차 반드시 사람은 예의의 행실을 알 것이며, 가정에는 효정(孝貞: 효도와 정절)의 풍속이 있을 것이다. 그러나 효도하는 아들이 그의 부모가 살아서는 봉양을 다하고, 죽어서는 그 정성(제사)을 다하는 것은, 본시 보통 행할 수 있는 일이나, 부인이 정절을 지키는 데 이르러서는 항상 남편이 죽은 뒤에 있는 일이요, 충신이 절의를 다한다는 것은 바야흐로 나라가 망하고 어지러운 날에 이르러 보는 법이니, 변고를 만나지 않으면, 무엇으로 연유하여 이를 알겠는가. 그러나 이는 그렇지도 않다. 부인은 매양 예를 좇아 그 군자(君子: 남편)를 돕고 그 족속을 사랑하며, 그 가업을 융흥하게 하면, 이것이 곧 능히 정절을 다하는 것이다. 신하는 나라를 근심하기를 자기 집같이 하고, 충과 의로써 공사를 받들어 행하여, 군왕으로 하여금 몸이 편안하게 하고, 나라가 부강하여 그 존귀와 영화를 보전하게 하며, 혜택이 백성에게 미치게 하면, 이것이 곧 능히 충절을 다하는 것이다. 이를 버리고 반드시 변고를 기다린다면, 이 충성과 정절을 가히 항상 할 수 있고, 가히 오래 할 수 있는 길이 아닐 것이다. 행실도를 보는 자가 마땅히 이 뜻을 밝힌다면, 마땅히 그의 할 바를 알아 얻는 것이 있을 것이다”라고 하여 이 책의 사회적 기능을 높이 평가했다.
이 책에는 비록 중국 인물들이 많이 수록되어 있기는 하지만, 고려 말부터 조선 후기까지의 인물로 이 책에 수록된 사람들과 함께, 조선시대에 요구되던 인간이 지켜야 할 기본적 윤리와 그들이 높이 평하던 가치를 어느 곳에 두고 있는가를 살필 수 있는 좋은 자료다. 동시에 여기에 수록된 그림은 회화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평가되고, 또한 후대에 추가된 언해는 국어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인식되고 있다.
이 책이 세상에 널리 소개된 것은 일찍이 성균관대학교에 소장되어 있던 초기 복각본(覆刻本) ≪삼강행실도≫를 1972년 홍이섭 교수가 해제를 붙여 영인본으로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하면서부터다. 이후 세종대왕기념사업회에서는 1982년에 이것을 대본으로 하여 국역과 해제를 붙인 영인본을 간행한 바 있다. 홍이섭 교수는 성균관대학교 소장 영인본에 대해 “지금 볼 수 있는 잘 보존된 선본(善本: 보존 상태가 좋은 책)”이라 했고, 이 책의 장점에 대해 “그림 판각(板刻)도 다른 책보다 꾸밈새 없는 자연스러운 선(線)이 인물의 표정을 다양하게 표현함도 볼만하다. 권채의 <삼강행실도 서>는 이 책이 이루어진 경위를 잘 밝히고 있으나, 세종 16년에 반포된 원간본의 모습은 찾을 데가 없다”라고 했다.
이 책에서는 성균관대학교 소장 영인본을 바탕으로 번역했고, 이곳에 없는 정초의 발문은 ≪동문선(東文選)≫의 것을 수록했으며, 서문과 발문의 번역은 한국고전번역원의 번역본을 수록하고 꼭 필요한 경우 윤문, 가필했다. 그리고 분량상 중국의 것은 일부만 선록을 했고, 우리나라의 것은 모두 수록했다. 역문과 원문을 싣고 시는 제외했으며, 그림을 넣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