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이 파스칼(1904∼1980)은 1929년에 케임브리지 펨브록(Pembroke)대학의 펠로(연구원)로 선발되었다. 1934년과 1936년 사이 독일에서 대학 강사를 맡다가, 1939년 펠로로서 펨브록에 돌아왔다. 이때 버밍엄대학에 독일어 교수로 임명되어 1969년까지 근 30년 동안 재직했고, 펨브록 단과대학에서 독일어를 가르쳤다. 그는 또한 바로크 문학과 종교 개혁에 관한 강의를 했는데, 전자는 당시 영국 대학에서 거의 소개되지 않은 주제였다. 마르틴 루터에 관한 강의는 그의 첫 번째 저서인 ≪루터와 그의 시대 : 독일 종교 개혁의 사회 기반(The Social Basis of the German Reformation: Luther and his Times)≫(1933)의 기초가 되었다. 마르크스주의자로서의 시도였던 이 저서는 독일 문학을 사회적·문화적 맥락과 연결하고자 하는 노력의 결과였다. 케임브리지로 돌아온 파스칼은 노동당에 가입했는데, 독일에서의 체류와 연구 경험 덕분에 1920년대와 1930년대 초반의 독일 좌파 문학에서 큰 영향을 받았을 것으로 보인다.
파스칼은 계속해서 독일에서 극우의 출현에 항의했다. 1934년에 발간된 그의 책 ≪나치 독재(The Nazi Dictatorship)≫는 히틀러 정권에 대한 비판을 약술했다. 그는 또한 카를 마르크스의 초기 저서에 이끌려 1938년에 그의 ≪독일 이데올로기≫를 번역했는데, 그 저서가 독일 역사와 문화와 맞물려 아주 유용하다는 것을 간파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 그리고 그 직후 파스칼은 독일 민족주의의 기원을 연구하고 수많은 역사서, 특히 ≪근대 독일의 성장(The Growth of Modern Germany)≫(1946)과 ≪1848년 독일 혁명(The German Revolution of 1848)≫(1948)을 펴냈다.
나치 독일의 몰락 후, 그는 문학적 주제에 더 집중했다. 1953년 ≪독일의 질풍노도(The German Sturm und Drang)≫가, 3년 후 ≪독일 소설(The German Novel)≫, 1960년에 ≪자서전에서 디자인과 진리(Design and Truth in Autobiography)≫가 뒤이어 출판되었다. 또한 그는 ≪자연주의에서 표현주의까지(From Naturalism to Expressionism)≫(1973), ≪이중의 목소리(The Dual Voice)≫(1977), ≪카프카의 서술자들(Kafka's Narrators)≫(1982, 사후 발행)을 저술했다. 1960년대 후반까지, 독일 대학에서 유학한 새로운 세대의 학생들은 신좌파의 급진적인 정치학, 적어도 표면적으로 ‘마르크스주의’ 이념을 신봉했는데, 이들에 의해 버밍엄대학에서 학과장을 지낸 파스칼은 권위주의자이자 엘리트 계층으로서 공격을 받았다. 파스칼은 1969년에 조기 퇴직을 하고 의장직에서 사임했다. 직후에 캐나다의 맥매스터대학(McMaster University)에서 초빙 교수로 1년을 보냈다.
파스칼은 1965년 괴테 메달을, 4년 후에 셰익스피어 상을 수상했다. 또한 1969년에는 그의 예순다섯 번째 생일 기념 논문집인 ≪독일 언어와 문화, 사회에 대한 에세이≫를 헌정받았다. 1970년 영국 아카데미(British Academy)의 펠로로 선출되었고, 1974년 버밍엄대학에서 법학 명예박사 학위를 수여받았으며, 1977년에는 워위크대학(University of Warwick)에서 명예 문학 박사(DLitt)를 수여받았다. 1977년 런던대학의 독일 연구소인 비텔 기념 강의(Bithell Memorial Lecture)의 초청을 받았다. 건강이 좋지 않아 직접 참여하지 못했으나 ≪브레히트의 걱정(Brecht’s Misgivings)≫이 이 연구소에서 출판되었다[2017년에는 이 연구소에서 ‘로이 파스칼과 게오르크 루카치 : 영국의 마르크스주의 문학 비평사에 대한 재평가를 지향하는가?’라는 제목으로 헬무트 파이치(Helmut Peitsch)의 강연이 있었다].
마틴 스웰스(Martin Swales)는 옥스퍼드 백과사전에서 “파스칼은 태반의 교수들에게 찬탄을 받고 사랑받았다”고 썼으며, 서비오토(A.V. Subiotto)는 “로이 파스칼은 반세기에 걸쳐 여러 분야를 아우르는 연구서를 발간했는데, 그의 저서들은 금세기가 배출한 가장 저명한 독문학자로서의 증거로 보기에 손색이 없다”고 요약했다.
이용준은 한국외국어대학교 및 대학원에서 독일어를 전공하고, 석사 논문으로 <노발리스의 푸른 꽃에 나타난 환상과 현실>을 쓰고, 독일어 학습서 DAD 1∼3을 출판했다. 안양 평촌의 백영고등학교에서 독어와 영어를 가르쳤고, 재직 중 안양대학교 교육대학원(영어)을 졸업하고, 중앙대학교 예술대학원 전문가 과정(소설)을 수료했다. 2014년 심훈문학상·계간‘아시아’신인문학상을 수상하고, ≪아시아≫ 통권 36호에 중편 <붕어찜 레시피>를 발표하면서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지난해 2월에 명예퇴직을 하고 현재 장편 소설과 소설 창작집을 준비 중이다. 전임교에서 소설 창작과 이론을, 또 의왕시 내손도서관에서 ‘길 위의 인문학’ 시간에 아시아 신화를 강의하고 있다.
지난해 신화 강의에서는 대표적으로 인도의 <마하바라타>와 <라마야나>, 메소포타미아의 <길가메쉬>를 다뤘다. 올해는 한국 신화와 세계 신화에 나타난 죽음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죽음의 문제는 신화의 핵심이다. 저세상, 다른 세상, 지하, 인간과 동물로의 변신이나 상호 관계 등이 중심을 이루고 있다. 우리 신화는 이 문제에 대해 특화되어 있다. 또 그 어느 신화보다 탄력적이고 유연하다.
옮긴이는 대학 재학 중 노발리스를 접한 이후 계속 낭만주의자들에 대한 관심을 기울여 왔다. 그러던 중 대학원에서 이인웅 교수님의 강의를 통해 두 권의 책을 만나게 되었다. 한 권은 2017년 지식을만드는지식에서 출간한 ≪독일 낭만주의 이념(Das Ideengut der deutschen Romantik)≫이고, 또 한 권이 바로 이 ≪독일의 질풍노도(Der Sturm und Drang)≫다. 옮긴이는 그 원본인 ≪The German Sturm und Drang≫으로 번역했다. 이 두 권의 책은 18세기 중후반부터 19세기 초반까지의 신세계로 가는 초대장이 되어 줄 수 있을 것이다.
옮긴이는 동양과 서양의 만남을 신화에서 찾고자 했고, 신화가 훌륭한 중재자 역할을 해 준 셈이다. 이런 신화적 사유에 대한 이해가 없었다면 ≪독일 낭만주의 이념≫ 번역은 불가능했을 것이다. 이 번역서의 뿌리를 찾고 싶어 내친김에 ≪독일의 질풍노도≫ 번역을 시도했다. 아주 오랫동안 궁금했던 18세기 후반 독일 문학에 대해, 특히 하만과 헤르더, 괴테에 대해 좀 더 깊숙이 공부할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
이 책의 내용 파악을 어렵게 만드는 요인 중에 하나는 저자의 서술 방식이 다소 추상적이고, 어법 역시 꽤 애매하다는 점이다. 이것은 독일어 번역본의 분량에서 엿볼 수 있다. 독일어로 발간된 책은 전체적인 분량이 이 번역서의 텍스트로 삼은 영어본보다 약 50쪽 가량 더 많다. 영어본의 추상적인 내용을 좀 더 구체적으로 설명하고자 한 의도로 사료된다. 독일의 문학적 상황을 영국인의 관점에서 바라봤기 때문에 중립적인 시각을 견지하고 있고, 방대한 자료 수집을 바탕으로 한 이 저서는 질풍노도에 대한 통찰력을 줄 것이다.
더 정진해서 더 훌륭한 번역서를 낼 수 있다면 좋으련만, 이제 더 미룰 시간이 없음을 절감한다. 부족한 것을 따지자면, 한이 없을 것이다. 이제 시작이라는 생각으로 책들의 첫 페이지를 열어 주실 것을 부탁드리며, 차후 올바로 개선해 나갈 것을 기약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