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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정판 | 신재효의 가사 상세페이지

개정판 | 신재효의 가사작품 소개

<개정판 | 신재효의 가사> 조선의 최고 인기 예능, 이것이었다!
조선 후기 서민들에게 가장 인기 있는 예능은 <춘향가>도 <흥보가>도 아니었다. 너무 길기 때문이다. 장터에서, 잔칫집에서, 일터에서 모인 사람들을 즐겁게 만든 것은 단가, 잡가, 시조 등으로 불리던 노래들이다. ‘가사’라는 이름 아래 신재효가 남긴 노래들을 모두 엮어 국내 최초로 소개한다. 소리꾼들도 정확한 단가의 연창을 위해 정본에 해당하는 이 책이 필요하다. <허두가>, <단잡가>, <어부사>, <방아타령> 등 장르를 넘어선 이 노래들을 통해 조선 시대 서민 문화와 우리 판소리의 실체를 맛볼 수 있다. 정확한 교감, 상세한 주석과 해설뿐 아니라, 신재효의 사설 개작과 가사 창작에 대한 부록도 함께 실어 판소리에 대한 독자의 이해를 돕는다. 2019년에 출간해 2020년 세종도서 학술 부문 도서로 선정된 ≪신재효의 가사≫에 2020년 새로 발견된 ‘청계본(淸溪本)’의 내용을 추가하고 대조해 개정했다.


저자 프로필


저자 소개

신재효
신재효는 본관이 평산(平山)이요 자는 백원(百源)이며 호가 동리(桐里)로, 순조 11년(1812) 11월 6일 신광흡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그리고 73세 되던 고종 21년(1884) 태어난 날과 같은 11월 6일, 그 삶을 마감하기까지 격동적인 시대 변화를 온몸으로 보여 주었다. 그의 어머니는 나이 마흔이 넘도록 아들을 얻지 못하다가 치성을 드려 신재효를 얻었다고 한다. 부모는 나이 들어 얻었으니 효도하라는 뜻으로 이름을 재효라고 지었는데, 부모의 이러한 뜻에 어긋나지 않게 효성이 지극했다고 한다.
신재효는 고창현의 이방에 이어 호장까지 오른 뒤 오랜 공무에서 벗어났는데, 치산(治産)의 지혜와 근면성, 성실성을 기반으로 40대 전후에 이미 곡식 1000석을 추수하고 50가구가 넘는 세대를 거느린 부호가 되어 있었다. 그러나 그는 모은 재산을 쓸 줄 모르는 졸부가 아니었다. 병자년(1876)의 대흉년에는 아끼면서 모은 재산을 굶주린 재해민을 돕는 데 아낌없이 썼다. 또한 자신이 근무하던 관아인 형방청의 건물을 중수하는 데에 돈을 시주했고, 경복궁의 복원 사업에 원납전으로 500냥을 헌납했다. 특히 광대의 양성과 후원에는 전 재산을 기울였다. 그는 굶주린 백성을 구휼한 공으로 가선대부의 포상을 받았고, 경복궁 재건을 위한 원납전 희사의 공으로 고종 15년(1878)에는 통정대부라는 품계와 절충장군 용양위 부호군이라는 명예직을 받기도 했다.
신재효는 축적된 부와 투철한 현실 인식을 바탕으로 판소리를 애호하고, 풍류를 즐기면서 살아갈 수 있었다. 판소리와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으로 가장 중요한 사실은 그가 기존의 판소리 사설을 개작해 우리에게 전했다는 점이다. 판소리 열두 작품 중 <춘향가>, <심청가>, <흥보가>, <수궁가>, <적벽가>, <변강쇠가>의 여섯 작품을 정리 개작했는데, <춘향가>의 경우는 남창(男唱)과 동창(童唱)의 두 가지를 남겨 주었다. 또한 <오섬가>의 창작을 통해 판소리에 ‘옴니버스(omnibus) 형태’를 도입함으로써 그 외연을 넓히기도 했다. 엮어질 것 같지 않은 춘향의 이야기, 배 비장의 이야기, 그리고 강릉 매화의 이야기 등을 한 주제에 의해 통합함으로써 판소리의 한 방향을 제시했던 것이다.
신재효는 <허두가>, <호남가>, <광대가>, <치산가>와 같은 많은 가사도 지었다. 신재효가 지은 가사는 그의 기질과 사업, 그리고 지향을 잘 표현하고 있다는 점에서 신재효나 그를 중심으로 하는 조선 후기의 문화 실상을 파악하는 데 중요한 자료가 된다.
판소리에 관련한 신재효의 활동 중 지나칠 수 없는 사실은 판소리 연창자에 대한 지원이 대단히 두드러졌다는 점이다. 그는 판소리에 대한 깊은 관심과 안목으로 지속적이고도 계획적인 판소리 지원 활동을 벌였다. 이 과정에서 최초의 여성 명창인 진채선이 나타남으로써 판소리사의 새로운 국면이 열리기도 했다.

정병헌
교주자인 정병헌은 서울대학교에서 공부하고 문학 박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전남대학교와 숙명여자대학교에서 학생들을 가르쳤고, 2000년에는 1년 동안 미국의 듀크대학교에서 한국 문학을 가르쳤다. 2016년 숙명여자대학교에서 정년을 했고, 이를 계기로 오랫동안 미뤄 두었던 ‘판소리의 역사’를 집필하기 위해 자료를 축적하고 있다.
숙명여자대학교에서는 문과대학장, 기초교양대학장, 한국어문화연구소장, 의사소통센터장 등의 보직을 담당했고, 외부에서는 대학수학능력시험출제위원장, 국어국문학회 대표 이사, 판소리학회 회장과 한국공연문화학회 회장 등을 맡았다.
연구서로 ≪신재효 판소리 사설의 연구≫, ≪판소리 문학론≫, ≪판소리와 한국 문화≫, ≪한국 고전 문학의 교육적 성찰≫, ≪한국 문학의 만남과 성찰≫, ≪판소리와 사람들≫, ≪교주 조선 창극사≫, ≪신재효 연구≫(공저), ≪문학 교육 원론≫(공저), ≪판소리사의 재인식≫(공저) 등을 썼고, 해설 및 교양서로 ≪고전과 함께 떠나는 문학 여행≫, ≪문학 작품 이렇게 읽는다≫(공저), ≪고전 문학의 향기를 찾아서≫(공저), ≪한국 고전 소설의 이해≫(공저), ≪한국의 여성 영웅 소설≫(공저), ≪쉽게 풀어 쓴 판소리 열두 바탕≫(공저), ≪한국 시조 감상≫(공저), ≪고등학교 문학≫(공저), ≪고등학교 국어≫(공저), ≪고등학교 독서≫(공저), ≪우리 고전 문선≫(공편), ≪한국의 고전 문학≫(공편), ≪선비의 소리를 엿듣다≫(공편)가 있다. ≪단호함에 대하여≫, ≪우정의 길 예지의 창≫(공저), ≪사계의 전설≫(공저), ≪지나고 보니 보이는 꽃≫(공저)과 같은 수필집도 발간했다.

목차

1. 허두가(虛頭歌)
대관강산(大觀江山)
역대가(歷代歌)
궁장가(宮墻歌)
역려가(逆旅歌) 1
역려가(逆旅歌) 2
소상팔경(蕭湘八景)
고고천변(皐皐天邊)
새타령
달거리
금화사가(金華寺歌)
숭유가(崇儒歌)
태평가(太平歌)
효도가(孝道歌)
북정가(北征歌)
2. 호남가(湖南歌)
3. 광대가(廣大歌)
4. 치산가(治産歌)
5. 도리화가(桃李花歌)
6. 권유가(勸誘歌)
7. 갈 처사 십보가(葛處士十步歌)
8. 방아타령(打令)
9. 단잡가(短雜歌)
10. 명당 축원(明堂祝願)
11. 구구가(九九歌)
12. 비단가
13. 성조가(成造歌)
14. 오섬가(烏蟾歌)
15. 명기타령(名妓打令)
16. 춘향 이별 사설
17. 어부사(漁父詞)
18. 추풍감별곡(秋風感別曲)

해설
부록−신재효의 사설 개작과 가사 창작의 의미
옮긴이 후기
지은이에 대해
옮긴이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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