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유와 상징을 통한 동아시아 전통 사상의 핵심
《중용》은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가 저술한 책으로 알려져 있다. 원래는 《예기(禮記)》 제31편으로 전해져 왔으나, 남송 시대 성리학자들에 의해 사서(四書)에 편입되었다. 유교 경전 중에서도 난해하기로 정평이 나 있는 이 책은 내용은 하늘, 땅, 인간 모든 것을 간결하지만 심오한 시적 비유나 상징을 통해 제시하고 있다. 이 책의 구성 체제는, 인간의 본성을 논하는 것에서 출발해 우주 삼라만상을 논하다가, 종국에는 다시 하나의 이치로 수렴된다. 《중용》에 대한 이해 없이, 동아시아 전통 사상을 심도 있게 논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중용》 본서는 총 33장으로 구성돼 있고, 하늘ᐨ땅ᐨ인간 간의 형이상적 관계를 논한다. 모두 33장으로 되어 있지만, 핵심적인 내용은 1장이 모두 담아내고 있으며, 마지막 장에서 1장의 종지를 거듭 밝히고 강조한다. 책 전체의 구조가 일리(一理)에서 만수(萬殊)로 갈라졌다가 다시 하나의 이치로 수렴되는 형식을 취하는 것이다.
《중용》이 말하는 인간은 완성된 명사형으로서의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되어 가는 과정’을 의미하는 것이다. 이로 인해 중용의 실천이 절실해진다. 1장 후반부의 ‘미발지중’과 ‘이발지화’는 드러남과 감춰짐의 관점에서 이해하는 것이 적절할 것이다. 즉 안으로 감춰진 미발의 중은, 겉으로 드러난 이발지화를 통해 스스로를 드러낸다. 결론적으로 《중용》이 말하는 진리는 ‘나’로부터 너무 가까이 있어, 그것을 알 수 없다. 이를 존재론적 관점에서 재약호화하자면, 중용사상의 핵심은 내가 누구인지를 깨닫는 것이다.
- 1장 해설 중에서
이제 《중용》이 막바지에 이르면서 그 내용이 점점 더 정밀해진다. 성인은 문을 나서지 않아도 모든 것을 안다. 이를 뒤집어 말하면, 세상 밖으로 나와서 눈으로 직접 보고 아는 자는 자기가 본 것만을 알 수 있을 뿐이다. 반면 참으로 아는 자는 자기의 본성을 깨치고, 이를 통해 이치를 터득한 성인이다. 그로 인해 그는 집 밖을 한 발짝도 나간 적이 없지만, 알지 못함이 없다. ‘독공이천하평(篤恭而天下平)’을 체·용적 관점에서 보자면, 전자가 체가 될 것이요, 후자는 용이다.
《중용》의 결론부에는 다시 《대학》이 등장한다. 전자의 핵심이 성(誠)이라면, 후자의 핵심은 명(明)이다. 내용적으로 다소 신비주의적 색채가 있으나, 결론부의 핵심은 지극한 덕의 핵심이 상대성[倫]이 끊어진 것임을 밝히는 것이다. 즉 터럭이 비록 미세한 것이나, 거기에는 여전히 크다ᐨ작다라는 상대성이 있다. 그러나 하늘의 작용은 ‘소리도 없고 냄새도 없으니’, 그것이 결국 1장에서 말한 중(中)이며, 성(性)이 아니겠는가? 흥미로운 것은 《중용》 1장이 성(性) → 도(道) → 교(敎)의 논리로 서술되었다면, 33장은 인사의 도리를 말하다가 ‘하늘[天]’의 지극한 도리로 마감한다는 것이다. 달리 말해 전자는 내적인 것에서 외적인 것으로 나아가고 있는 반면, 후자는 외적인 것에서 다시 내적인 것으로 귀결된다. 이를 통해 《중용》은 군자의 도리가 결국 ‘은밀함’에 자신을 감추는 것에 있음을 암시한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은밀함이 모든 세간의 상대성이 끊어진 절대의 경지[본성(本性)자리]를 암시하고 있음은 명약관화하다.
-33장 해설 중에서
《중용》 새롭게 읽기
이 책은 한글 세대들이 읽어도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고어투 직역투를 지양하고 현대식 표현을 사용했다. 중용사상에 대한 심도 있는 이해를 토대로 한문의 자구에만 치우치지 않고 원문에 담긴 내용을 옮기고자 했다. 불교 인식론, 주역적 사유 논리, 동서양 비교사상 및 문화 연구에 매진한 역자였기에 자구 해석에만 매몰된 번역을 벗어날 수 있었다.
또 이 책에서는 《중용》을 새로이 해석한 글 두 편을 곁텍스트로 실었다. 하나는 《중용》과 《대학》을 연결 지어 분석한 ‘신유학의 인성론·우주론에 대한 고찰’이다. 《대학》과 《중용》은 표리 관계를 이루고 있는 책이라, 《중용》의 이해를 위해서는 양자의 상호관계성을 파악하는 것이 필요하다. ‘《중용》 독법: 《중용직지(中庸直指)》 및 양명학과의 비교를 중심으로’는 《중용》에 대한 불교적 관점의 대표적인 해석을 소개하는 글이다. 《중용》을 유교적 시각에서만 독해해 온 기존 관점을 보완할 수 있는 자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