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로마 신화보다 더 생생한 신화의 세계 『황금당나귀』, 청소년판으로 출간!
전세계 문학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은 세계 최초의 소설 『황금당나귀』! 전세계에서 이미 출간된 책만 해도 100권이 넘고, 쓰여진 지 2000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매년 새로운 해석과 함께 재출간될 정도로 가치 있는 이 소설이 『청소년을 위한 황금당나귀』로 출간되었다.
『청소년을 위한 황금당나귀』는 고전이라는 부담감과 비교적 호흡이 긴 문장 때문에 완역본을 읽기 어려워 하는 청소년 독자들을 위한 책이다. 국내 최초의 원전 스페인어판ㆍ영문판 비교 완역본인 『황금당나귀』(2007년 12월, 매직하우스)를 풍부한 표현은 그대로 살리면서 흐름이 끊기지 않는 범위에서 내용을 정리하여 청소년의 눈높이에 맞게 편집한 것이다. 특히 쿠피도와 프쉬케의 이야기 부분에는 컬러 화보가 삽입되어 있어 이해를 돕고 책 읽는 재미를 한층 높여준다.
당나귀라는 가장 미천한 동물의 눈으로 인간 세계의 수많은 악을 바라본다
『황금당나귀』는 그리스 로마 신화의 실질적인 모태가 되었으며, 이후에 등장하는 고대 근대 문학작품의 신화적 에피소드의 발원지 역할을 하고 있다. 예컨대 오늘날까지도 사랑을 이야기할 때면 빠지지 않고 언급되는 큐피드(쿠피도)와 프쉬케의 사랑 이야기 또한 이 작품에 등장한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의 기본 줄거리 안에 포함되어 있는 10개의 액자소설은 독자들의 호기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하다. 여기에 담긴 에피소드들은 품위 있는 것에서 익살스러운 것, 방탕한 것, 소름 끼치는 것까지 다양한 이야기들을 망라하고 있으며, 당대의 숨겨져 있던 진실과 삶을 낱낱이 보여준다. 재미있고 때로는 음란하기조차 한 에피소드들을 거침없는 소설적 문체로 표현하여 당대는 물론이거니와 그 후로도 수세기에 걸쳐 오랜 동안 많은 사람들의 찬사를 받아왔다.
프랑스의 작가 플로베르는 이 작품에 다음과 같이 찬사를 보낸다.
“나는 이 작품이 너무나 눈부셔 현기증을 느낀다. 이 작품은 고대 그리스와 기독교적인 것들을 한데 아우르고 있으며, 이 속에 담긴 장면과 사건들은 현대적 감각으로 읽어도 전혀 손색이 없다. 여기에 감미로운 향기와 오줌 냄새가 뒤섞여 있으며, 동물의 본성이 신비성과 하나가 되어 있다.”
근대 모험소설과 현대 판타지 소설의 수원지이자 액자소설의 전형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시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라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소설은 바로 『황금당나귀』이다. 더구나 이 작품에는 현대소설에서도 많이 사용되고 있는, 소설 속에 또 다른 소설이 들어 있는 액자소설 형식이 사용되고 있다. 이는 액자소설의 고전적 전형이라고 할 수 있다. 10개의 액자소설 안에 ‘비극적인 사랑’, ‘우스꽝스런 우화’, ‘큐피드와 프쉬케의 사랑이야기’ 등이 모두 등장한다.
게다가 『황금당나귀』는 근대의 모험소설과 현대의 판타지 소설의 수원지이자 원형으로 평가받고 있다. 작품 속에서 주인공인 ‘루키우스’는 마법에 걸려 당나귀로 변한 후 온갖 난관과 모험들을 겪게 되는데, 이러한 형식과 내용은 근대나 현대의 모험소설이나 판타지 소설에 비추어도 전혀 손색이 없기 때문이다.
『황금당나귀』의 이러한 역사적 의미는 작품의 가치를 높여주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작품을 재미있게 읽지 못하게 하는 이유가 되기도 한다. 가치 있는 소설에 대한 호기심보다 고루하고 어려울 것이며, 대단한 의미를 찾아야 할 것만 같기 때문이다. 그러나 책장을 넘기다보면 그런 마음이 그저 편견이었으며 괜한 부담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쿠피도와 프쉬케의 불멸의 사랑
『황금당나귀』에는 쿠피도를 사랑하는 젊은 여인 프쉬케의 유명한 이야기가 들어 있다. 두 사람은 결혼을 한 후, 쿠피도의 궁전에서 함께 살지만, 프쉬케는 남편의 얼굴을 볼 수도 없고, 자기가 사랑의 신과 결혼했다는 사실을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언니들의 유혹에 굴복해, 그녀는 남편의 몸을 보기로 결심한다. 자신의 계획을 실행에 옮기고 쿠피도의 얼굴을 보자, 프쉬케는 사랑의 열정에 사로잡힌다. 하지만 그 순간 촛농이 쿠피도의 몸에 떨어져 그에게 상처를 입힌다. 쿠피도는 잠에서 깨어나 궁전에서 도망친다. 그러자 프쉬케에게 화가 난 쿠피도의 어머니 베누스는 일종의 벌로 프쉬케에게 도저히 극복할 수 없는 시련을 겪게 한다. 하지만 결국 프쉬케는 그런 시험을 모두 이겨내고 두 사람은 다시 하나가 된다.
일반적으로 프쉬케는 인간의 영혼을 의미하고 쿠피도는 사랑 혹은 욕망을 뜻한다. 이런 의미에 바탕을 두고 이 이야기를 다시 읽는다면, 인간의 영혼은 수많은 시련을 겪지 않고는 진정한 사랑을 알 수 없다는 것으로 이해될 수 있다.
하지만 이 일화는 무작정 이 작품에 삽입된 것이 아니다. 『황금당나귀』와 이 일화는 인간의 호기심과 신속하고 재빠르게 무언가를 알고자 하는 인간의 욕망을 비난한다는 공통점을 지니고 있다. 프쉬케가 많은 시련을 겪은 후에야 비로소 쿠피도를 얻게 되는 것처럼, 루키우스 역시 당나귀로서 힘든 고난을 거친 후에 진정한 사람으로 다시 태어나기 때문이다. 이런 점에서 『황금당나귀』는 사랑에 눈을 뜨게 되는 청소년들에게도 진정한 사랑이란 어떻게 얻어지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작품이다.
* 줄거리
루키우스는 마법에 대한 지나친 호기심을 갖다가 결국 마법 때문에 당나귀로 변한다. 인간의 지성은 그대로인 채 당나귀의 모습을 하게 된 루키우스는 몇 번씩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온갖 고통과 수모를 겪게 된다. 그러나 한 가지 위안을 삼는 것은 인간의 모습이었다면 알 수 없었을 일들을 보고 듣고 겪음으로써 자신의 호기심을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사람들에게 루키우스는 그저 당나귀일 뿐이다. 때문에 그가 바로 옆에서 지켜보고 있다는 것은 아랑곳하지 않고 아무도 없는 것처럼 말하고 행동한다. 게다가 당나귀의 큰 귀로 인해 먼 곳에서 나는 말소리까지도 들을 수 있다. 이러한 이유로 루키우스는 인간 세계의 숨겨진 단면을 볼 수 있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