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인가 외설인가, 부조리냐 사이코냐, 막장 영화의 막장 현장!
영화가 망하느냐 흥하느냐, 누구 덕이고 누구 탓인가?
감독, 배우, 스태프, 제작자, 스폰서, 서로를 향한 진솔한 속내, 가차 없이 폭로!
최고의 감독, 최고의 배우, 최고의 스태프는 잊어라!
거친 감독과 불안한 스태프, 지켜보는 제작자! 전쟁 같은 현장!
현장이 곧 붕괴하니 관객 여러분, 대피하십시오.
영화작법보다 더 생생한, 영화 만들다 파탄 나는 이야기!
그럼에도 만들어지는 영화의 기적!
전, 현직 영화계 종사자분들께는 권하지 않습니다.
삼각 불륜 관계를 다룬 영화 스파이럴 러브가 촬영되고 있다. 감독은 제작자가 뽑은 주연 여우가 불만이고, 주연 남우는 상대 남우의 역을 노리고, 주연 여우의 연인인 상대 남우는 그녀의 옛 연인인 주연 남우가 신경 쓰인다. 감독은 주연 여우의 연기력을 타박하고, 제작자는 배우들 편을 든다. 스폰서는 감독보다 제작자를 보고 투자한다.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질라 스태프들이 움츠리는 가운데 촬영이 끝난다. 그러나 급기야 현장을 박차고 나가 새로운 엔딩을 만들겠다고 공표하는 감독. 현장은 풍비박산이 나고, 배우들도 대립하고, 제작자는 펄펄 뛰는데…이유는? 이유가 있긴 한가?
책 속으로
배우가 본 감독- 퍼스낼리티와 크리에이티비티에 대한 콤플렉스가 엄청났다. 그 P의 C, C를 위한 P, P에 의한 C, C의 P, 탁월한 조어 능력으로 집착을 드러내놓고 보여준다. 다른 사람의 의견이 그의 것보다 뛰어난 경우는 재앙이었고, 그보다 창조적인 사람의 존재는 천재지변이었다. 그를 배반한 자연의 처사에 충격받았던 것 같다.
제작자가 본 감독-놈들이 괜히 자기들이, 껌처럼 단물만 쏙 빨아낸 후 씹다 버려졌다고 말하고 다니겠나? 자기 운명에 대한 정확한 해석이지. 하지만 어쩌겠어. 그런 재능은 흔치 않아. 그런 걸 놈들이 멋대로 굴리다가 목이나 매서 낭비하게 둬야겠나? 돼지 목의 진주지.
감독과 가장 많이 마찰을 빚긴 하지만, 공공장소에서 마스터베이션에 돌입하지만 않으면 대체로 사랑스런 친구들이지. 다들 배우가 그런다고 생각하는데, 아니거든. 배우가 하는 건 영역 표시.
영화를 통째로 들어먹기로 감독만 한 자가 없어. 티라노 한 떼가 난동을 부려도 폐허는 남잖아?
감독은 쥐새끼처럼 배에 구멍을 내서 가라앉혀. 영화가 침몰해서, 흔적도 없다고.”
감독이 본 제작자-그는 돈 때문이라면 누구와도 손을 끊을 수 있고, 동일한 동기에서 동일한 인물에게 무릎을 꿇을 수 있다. 그가 말하는 산골 소년과 영화의 기념비적 만남이란 바로 그런 것이다. 가난한 산골 소년이 상경해서 잊을 수 없는 만남을 가진 건, 영화가 아니라 옷이나 자동차, 세탁기여야 했을 것을. 영화로선 불운하기 짝이 없는 일이다.”
각본가의 고뇌-이 바닥에서 마술의 주문이 그거다. 경험을 쌓기 위해. 모든 사람들이 서로의 경험을 쌓아 주려 헌신하는 곳이 여기다.
스폰서가 본 감독-그는 뭐 하나 숨길 것도 거리낄 것도 없었죠. 그가 우리들을 돈의 화신으로 보고 절한다는 걸, 우리가 눈치채도 끄떡없었습니다. 우리가 그를 돈의 노예 취급을 해도 마찬가지였을 거예요. 영화를 만들 돈만 생기면 만사 그만이라는 식이죠. 그가 한 번 만들기로 했다면, 무슨 영화건 꼭 만들어질 겁니다.
제작자가 감독에게-아 이거 부조리 양반 나오셨네. 다들 부조리라면 환장하는데, 그게 복조리의 반대말이 아니거든.
배우가 관객에게-관객들은 어느 게 진짠지 몰라 헷갈린다. 그 당혹, 그 경악을 누려라. 뭔지 모르겠다고 생각한 순간, 덫에 걸리는 게 맞다. 결국 영화가 가장 큰 범인이다. 당신이 속고 있다면, 모든 게 제대로다.
스태프가 배우에게-주연은 극을 떠받치는 자린데, 떠받들려 지는 자린 줄 안다.
노출과 은폐의 경계를 넘나들며, 에로티시즘과 리얼리티의 경계를 넘나들겠다는 게 감독의 목표였다. 감독들은 누구나 다 그렇게 말해서, 촬영 감독은 잠자코 있었다.
제작자가 본 배우- 스타 중에 배우 찾기는 하늘의 별 따기고, 배우 중에 스타 찾기도 하늘의 별 따기니까. 그래서 난 항상 그들을 존경해. 감독보다 더. 그들이 가장 강한 파괴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에 걸맞은 공포를 바치는 거야. 촬영장에 가서 그들을 보면 티라노사우루스가 생각나. 쉬는 시간이면 의자에 앉아 발톱으로 머릴 긁지. 그 발톱이 무뎌지지 않은 한 비위를 계속 맞춰 줘야 해.
스태프가 스태프에게-뭘 모르는 젊은 애들이 말을 옮겨대기 시작하면, 현장은 물 안 넣고 불에 올린 양은 냄비 꼴이다.
영화판 사람이면 이미지와 이야기를 만들어야지, 거기 현혹돼선 안 된다. 현장의 특수성에 감염돼 버린 꼴이다.
스태프가 감독에게-존나 막장 드라마 가지고 완성도 찾고 진정성 논하고 예술성 부르짖고 있네.
처음엔 설정의 허점을 두루뭉수리로 만들려고 관념적 헛소리를 하는 줄 알았는데, 이제 생각하니, 허점이 많을수록 헛소리를 길게 할 수 있어서 일부러 그러는 거 같다. 아, 맞다, 일부러, 바로 그거다. 왜 감독은 그렇게 했을까? 하고 의문을 품게 하는 영화, 사실은 그게 다 감독의 의도였던 것이다, 라고 하면 게임 끝이다. 모든 말 안 되는 영화를, 말 안 되면 안 될수록 예술로 만들어주는 공식. 감독의, 감독에 의한, 감독을 위한 의도. 씨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