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르틴 루터를 도와 종교개혁을 성공으로 이끌고
히틀러와 나치스 정치 폭동의 도구로 전락해 세계사를 뒤흔든
두 얼굴의 맥주 이야기
달콤하고 쌉싸름한 맛과 시원한 거품으로 사람을 매혹하는 맥주가 유럽 종교사와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꿨다. 1521년 4월, 로마 가톨릭교회의 면벌부 판매에 분노하여 깃발을 든 루터의 종교개혁은 절체절명의 위기에 놓여 있었다. 독일 전역에서 면벌부 판매를 반대하는 물결이 소용돌이치자 사태의 심각성을 간파한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가 루터를 제국회의에 소환한 탓이었다.
대쪽 같은 성정에 담이 큰 루터도 긴장을 감추지 못했다. 손바닥에 땀이 배고 입술이 말랐다. 로마제국 이후 가장 넓은 유럽 영토를 다스리는 신성로마제국 황제 카를 5세와 각지의 막강한 제후들이 제국회의에서 그를 심문하기 위해 모여들었기 때문이다.
루터의 비서가 도기로 만들어진 1리터들이 아인베크 맥주잔을 들고 나타난 것은 그때였다. 잔을 받아 든 루터는 단숨에 벌컥벌컥 맥주를 마신 뒤 의장을 향해 걸어 나갔다. 그의 두 뺨에는 취기로 인한 홍조가 번져 있었다. 이후 술기운을 빌려 담대함을 되찾은 루터의 격정적인 연설과 뚝심 있는 행동은 막 타오르기 시작한 종교개혁의 불길에 기름을 끼얹었으며, 유럽 종교사와 세계사를 바꿨다.
400년 후 독일 역사와 유럽사, 세계사의 물줄기를 바꾸는 일대 사건이 뮌헨의 맥줏집 호프브로이하우스에서 일어났다. 히틀러와 그의 일당이 이곳에서 일으킨 정치 폭동이 훗날 나치스의 시발점이자 도화선이 되었을 뿐 아니라 그 세력이 독일을 지배하며 제2차 세계대전을 일으키는 기폭제가 되었기 때문이다.
1959년 도쿄 대학교 농학부 농예화학과를 졸업한 후, 스시야(현 산토리)에 입사했다. 1961년에 유럽으로 떠난 출장은 그의 오랜 맥주 기행의 출발점이 되었다. 그대로 1년 동안 뮌헨과 코펜하겐에서 맥주 제조 과정을 배웠고, 귀국 후에는 맥주 제조에 전념했다. 1985년 같은 회사의 간부로 취임하여, 맥주 생산 및 연구를 담당했다. 중일 합작 기업 ‘장쑤성 산토리 식품공사’의 임원으로 일하며, 미국, 캐나다, 오스트레일리아에서 ‘생맥주 제조’ 기술을 지도했다. 산토리의 상무위원, 고문·기술 감독을 거쳐 2003년에 퇴임, 1998년부터 2년간 나라 여자대학교에서 강의를 했다. 또, 간사이 대학교 대학원, 긴키 대학교, 나가사키 현립 대학교 및 방송 대학교의 강사를 지냈다. 현재는 지역 맥주에 대한 지도와 함께 신문·잡지에 글을 기고하고, 유럽 맥주 여행 기획과 방송에 출연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저서로는 《맥주전래》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