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이동물원』의 저자 켄 리우의 유일한 장편소설
서양 문학의 서사적 토대를 마련한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뛰어넘는 동양 문학의 고전 『초한지』의 재해석
타임 선정 100대 판타지 소설!
동시대 가장 주목받는 SF 환상문학 작가 켄 리우의 장편소설 『폭풍의 벽』 전 2권 세트. 권위의 휴고상, 네뷸러상, 세계환상문학상을 40년 만에 첫 동시 수상한 대표작 「종이 동물원」으로 국내에서도 많은 독자를 확보한 켄 리우는, 동아시아 문화 및 중국 문화의 가장 큰 뿌리인 ‘한 왕조’를 소재로 하여 장대한 SF 판타지 소설 「민들레 왕조 연대기」 시리즈를 집필하였다. 시리즈의 두 번째 작품인 『폭풍의 벽』은 항우와 유방의 전쟁사를 재해석한 전작 이후, 초기 정권을 안정시키고자 했던 유방과 여후의 노력과 북방 이민족의 침입에 맞서는 황가의 노력을 다뤘다. 한신의 반란과 이를 처단하는 여후 등 실제 역사를 따라가면서도 장량이 유방의 책사로 머무는 대신 신세계로 모험을 떠나도록 각색하여 전작의 호걸역(豪傑譯)을 이어간다. 호걸역은 과거 서구권의 생소한 문학을 독자들에게 전하기 위해 동아시아의 번역자들이 원문을 현지 사정에 맞춰 자유롭게 변용하던 번역 방식이다.
켄 리우는 동양의 고전 문학을 서구권에 소개하기 위해 호걸역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이번 작품에도 항백과 한신을 여성 인물로 바꾸었던 전작의 과감한 시도를 이어, 여후를 안정적인 황권을 유지하기 위해 궁궐의 음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한 대장부로 묘사하고 유방의 정당한 후계자로서 여성을 내세우는 등 중국 역사 속에 폄하됐던 여성과 평민 출신의 인물을 부각시키며 현대의 독자들이 새로운 감각으로 전한의 역사를 접할 수 있게 했다. 시리즈의 첫 작인 『제왕의 위엄』은 동아시아의 고전 문명을 기반으로 한 SF 장르인 ‘실크펑크’를 탄생시킨 작품으로 인정받아 로커스상 장편소설 부문 신인상을 수상하였으며, 네뷸러상 최우수 작품상과 일본 최대 SF 문학상 세이운상 후보에 올랐다. 후속작인 『폭풍의 벽』 역시 로커스상 장편소설 최우수 판타지 부문 후보작으로 거론되었다.
[실크펑크: SF 하위 장르 중 하나. 과거 기술이 크게 발달한 가상의 과거를 다룬 역사대체물로서, 동아시아 역사를 배경으로 한다는 특징을 갖고 있다. 유사한 장르로 산업시대의 증기기관을 배경으로 한 ‘스팀펑크’가 가장 잘 알려져 있다.]
『일리아드』와 『오디세이』를 뛰어넘는 놀라운 동양 고전의 재해석
켄 리우는 「민들레 왕조 연대기」를 통해, 번역자의 창의성과 지역문화에 맞춰 자유롭게 각색하는 식의, 과거 동아시아 번역가들의 ‘호걸역(豪傑譯)’을 역으로 서구권에 시도한다. 켄 리우의 설명에 따르면 19세기, 아직 서양 문명에 대한 이해가 부족한 독자들에게 번역자들은 “완전히 새로운 문화를 독자들에게 전달하고자 분투하면서 삭제하고, 각색하고, 개작하고, 수정하고, 시험 삼아 써 보는 등의 갖가지 방식을 거리낌 없이 사용했다.”고 한다. 그는 과거 서구권 문학에 대한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일본이나 중국에서 호걸역이 빈번했음을 상기하며, 반대로 동양 문학의 고전이 서양에서 널리 알려지지 않는 점은 바로 이 호걸역의 부족에서 기인하였다고 판단한 것이다. 때문에 켄 리우는 동양의 고전을 호걸역을 통해 서양에 선보이고자 했고, 그의 첫 호걸역 작품으로 중국 문학 최고의 고전 『초한지』가 선택되었다.
과감한 소설적 상상력으로 새롭게 그려 낸 『초한지』 이후의 세계관
전작에서 다라 제도를 통일한 유방, 즉 쿠니 가루는 이제 황가의 혈통을 이어야 한다는 과제를 맞이한다. 척 부인을 상징하는 리사나와 여후를 상징하는 지아 황후가 각기 아들을 두고 물밑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쿠니 가루는 두 아들의 결함을 직시하고 제3의 선택지, 즉 여성을 후계자로 내세운다는 도박을 감행한다. 여자가 황제가 되는 것이 자연스러운 세상을 만들기 위해 각국의 여성 인재를 발굴하는 ‘황금 잉어 계획’을 실시하는 와중, ‘폭풍의 벽’ 건너편에서 진시황, 즉 마피데레 황제가 찾고자 했던 ‘불멸의 땅’에서 이방인들이 찾아와 불을 내뿜는 야수를 부리며 무시무시한 공격력으로 다라 제도를 멸망의 위험으로 몰아넣는다.
켄 리우는 전작에 이어 역사가 여성들을 부당하게 그려내는 방식에 직접적으로 문제를 제기한다. “키코미가 남자였다면 잘못된 사랑을 위해 백성들을 배신했다고 그렇게나 확신했겠느냐”는 질문을 직접적으로 던지기도 하고, “역사 속의 여자들은 어떤 남자를 사랑했는지에 따라 정의된다”고 평한다. 또 지안 황후는 누가 황제에 오르더라도 안정적인 치세를 이룩하기 위한 제도를 만들기 위해 궁정의 음모를 적극적으로 활용하고 공신 세력을 축출하는데, 이를 두고 스스로 ‘역사에서 지워지지 않기 위해 오해를 무릅써야 하지만 왜 다라의 연대기에서 내 이름을 더럽혀야 하는 것인지’ 한탄하기도 한다.
실제 역사 속 인물들의 일생과 최후 역시 많이 달라졌다. 장안에서 유방의 스승과 책사 노릇을 하던 장량은 새로운 것을 알기 위해서라면 목숨을 잃는 것도 두려워하지 않는 모험가, 루안 지아로 다시 태어나 ‘세계는 알 수 있는 것’이라는 명언을 남기고, 부족한 정치적 역량과 처세술로 스스로를 궁지에 몰아넣었던 한신은 당찬 여성 ‘긴 마조티’로 태어나 북방의 침입으로부터 다라를 보호하고 마치 이순신 장군처럼 ‘죽은 채로도 군의 승리를 지휘하는’ 최후를 맞이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