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이 출간되기까지
디지털 카메라 보유자 수가 100만을 훌쩍 넘어섰다. 일반 사진기를 이용하는 사람까지 합치면 대한민국 사람 거의 대부분이 카메라를 가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카메라는 이제 휴대폰처럼 필수품이 되었고, 사진을 찍는 행위는 밥을 먹는 것과 매한가지로 평범한 일상이 되었다.
카메라 제조 기술이 하루가 다르게 변하고 있고, 사진을 찍거나 보는 사람들의 안목 역시 점점 더 수준 높아지고 있다. 누구라도 수백 컷, 수천 컷 찍다 보면 그야말로 ‘잘 찍은 사진 한 장’쯤은 건질 수 있게 되었다.
특히 인터넷 공간에서만큼은 프로와 아마추어의 경계가 사라진 지 오래다. 사진 아래에 제목만 덩그마니 붙어 있는 오프라인 사진 전시회와는 달리, 인터넷 사진 갤러리에서는 자신이 직접 찍은 사진을 올리고 그 곁에 단상을 덧붙여, 보는 이들에게 한결 쉽게 다가간다. 그 사진 밑에는 사진을 본 사람들의 평가글이 적게는 몇 개, 많게는 수백 개가 올라온다.
이 정도라면 사진이 이 시대, 우리 삶의 모습을 가늠하는 또 하나의 잣대가 될 수도 있지 않을까.
이에 휴먼앤북스에서는 ‘향기로운 포토 에세이’라는 이름으로 사진 에세이집 시리즈를 기획해 그 첫 권인 《아버지의 바다》를 선보인다.
◎ 책의 내용
[눈먼 어부가 바다에서 건져올린 찬란한 희망]
지금으로부터 8년 전, 당뇨 합병증으로 시력을 잃은 김선호 씨.
그는 고향 선재도(옹진군 영흥면 소재)에서 알아주는 목수이자 대장장이였다. 너무나 급작스레 찾아온 어둠과 절망. 삶과 죽음 사이에서 그가 발견한 것은 다름 아닌 바다였고, 그곳에서 새로운 삶을 본 그는 어부로 다시 태어났다. 썰물 때가 되면 갈고리에 생명줄을 찾아 걸고 바다로 나가는 어부의 뒷모습은 낯설지만 희망적이기만 하다.
그의 작은아들은 아버지가 시력을 잃은 후 도시생활을 정리하고 아버지 곁으로 돌아와 아버지의 삶을 카메라에 담는다. 이 책은 지난 3년여 동안 김선호 씨의 작은아들(김연용)이 카메라에 담은 아버지의 모습과, 아버지를 부모처럼 섬기고 따르는 개 ‘바다', 선재도의 아름다운 풍경을 고스란히 옮겨놓은 사진 에세이다.
[사람의 향기, 바다의 향기]
아버지에게 한 가닥 빛이 되는 것은 오직 바다뿐이었습니다. 처음엔 버려진 어장을 손질하셨습니다. 우럭이며 놀래미 등이 쏠쏠하게 잡히니 살림에도 제법 보탬이 됐습니다. 바닷일에 보람을 느끼신 아버지는 어장을 넓혀나가셨습니다. 눈먼 아버지에게 바닷일은 위험천만한 것이어서 모두들 불안해하며 말렸지만, 그 누구도 아버지의 의지를 꺾을 수는 없었습니다.
폭풍이나 겨울철 성에 때문에 그물이 찢어지거나 말장이 부러지면 아버지의 걱정과 상심은 이만저만 큰 게 아니었습니다. 그 모습이 안쓰럽고 마음아파 아버지 모르게 바다에 나가서 찢어진 그물을 손질해놓기도 했지만, 아버지의 정성에 비할 수는 없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완성된 아버지의 어장. 그곳은 아버지의 삶이 한번 묻히고 또 한번 새로이 태어난 곳입니다. 어장의 그물 마디마디엔 눈먼 아버지의 회한과, 뜨거운 눈물과, 다시 시작한 삶에 대한 환희가 배어 있습니다.
이제 아버지에게 바다는 삶의 전부입니다. (본문 중에서)
<1부 아버지의 바다>에서는 아버지가 시력을 잃게 된 이유부터, 눈먼 아버지가 바다로 나가게 된 사연, 그리고 누구보다 강한 의지로 어부일을 해내고 있는 아버지의 일상을 그린다. 아버지의 뒤를 좇는 아들의 시선이 푸근하기만 하다.
‘바다’는 추운 겨울 혼자 다니는 아버지가 못내 안쓰럽나 봅니다. 말없이 충직하게 아버지의 그림자를 따라 다니는 ‘바다’. 이럴 땐 이 녀석이 사람보다도 더 사람 같습니다.
아버지를 따라 바다에 나가면 그물에 걸린 물고기를 낚아채가는 갈매기들을 쫓고, 호시탐탐 먹잇감을 노리는 야생 너구리들을 근접 못하게 하는 일이 ‘바다’의 몫입니다.
‘바다’는 흔히 순종이라 부르며 떠받들다시피 하는 잘난 개가 아닙니다. ‘바다’는 훈련소에서 맹인 안내견 훈련을 받은 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 가족에게 ‘바다’는 하늘이 내려준 축복입니다. (본문 중에서)
<2부‘바다’ 이야기>는 아버지를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는 충직한 개 ‘바다’에 관한 이야기다. 속 깊은 모습으로 아버지의 길동무가 되어주는 ‘바다’를 보면서 저자는 “세상 수많은 개들 중에서 어쩌다 ‘바다’가 우리 곁으로 오게 되었는지” 인연이라는 것에 대해 다시 생각한다. 또 하나의 아들 몫을 톡톡히 해내고 있는 장한 개와 아버지의 모습을 담았다.
난 사진의 역사나 이론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한다. 단지 사진이 좋아, 아버지의 일하시는 모습이 좋아 이것저것 분주히 기록할 뿐이다. 지난 3년간 담아둔 사진들 가운데 마음에 드는 것들을 추려 이곳에 남긴다.
난 사진과 관련된 인터넷 공간에서 ‘자우慈雨’라는 이름을 쓴다. 그 이름 그대로 가뭄 끝의 단비처럼, 내 사진들이 사람들의 메마른 가슴속 한귀퉁이에 스며들 수 있다면, 그래서 그곳에 작은 씨앗 하나 틔울 수 있다면……. (에필로그 중에서)
<3부 꿈꾸는 섬>에서는 저자가 아버지와 함께 살고 있는 선재도의 풍경 사진과, 섬에서의 삶을 주내용으로 다루고 있다. 아버지에 대한 사랑과 연민, 사진을 찍는 사람으로서의 소박한 소망 등이 한 편의 시처럼 어우러진다.
서정적인 분위기를 풍기는 아름다운 사진과 따뜻하고도 향기로운 에세이는 일반 독자뿐만 아니라 디지털 카메라 마니아들 사이에서도 큰 반향을 불러일으킬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