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방에 널려 있는 어리석음을 눈여겨보라!
“사람은 모두 자기가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해야 할 일이라구요? 그게 뭐죠?” 자크가 물었다.
“인간의 어리석음을 감시하는 일이지요. 나는 여태 나만큼 바쁜 사람을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유진 너스, <노스 베티세스>(1882)
위의 대목은 비록 이 책에 등장하는 인용문의 일부일 뿐이지만, 저기 등장하는 화자의 이야기는 이 책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사전>의 저자에게도 딱 맞아떨어지는 말이다. 이 책의 저자인 마티아스 반 복셀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이 세상 누구보다도 열심히 감시해온, 세상에서 가장 바쁜 사람 중 하나일 것이기 때문이다.
그가 인간의 어리석음에 대해 연구해온-감시해온- 시간은 무려 20여 년이 넘는다. 세상에 무수히 많은 심오한 주제와 고민들 가운데, 하필 ‘어리석음’이라는 주제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게다가 ‘백과사전’이란 것은 무릇 모르는 것에 대한 지식을 얻기 위한, 궁극적으로 지혜를 얻기 위한 것일진대,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사전’이라니 이 무슨 묘한 짝이란 말인가?
저자는 강력하게 주장한다. “인류 문명을 이룬 토대가 다름 아닌 어리석음”, 이 궤변 아닌 궤변과 점입가경으로 치닫는 내용에 황당함을 느끼는 것도 잠시, 고개를 갸웃거리며 책장을 넘기다 보면 어느덧 섬광 같은 깨달음이 뒤통수를 내리치면서, 상식과 고정관념이 깨어지는 통쾌함을 느낄 것이다.
어리석음이 인류를 구원한다!
입대를 앞두고 신체검사를 받는 동안 예비 병사는 한시도 쉬지 않고 눈에 보이는 종이들을 집어들 때마다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건 아니야. 이건 아니야.”
군의관은 청년의 정신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 생각하고 징집 면제 확인서에 서명을 했다. 그 확인서를 받아본 청년은 이렇게 말했다. “바로 이거야!”
본문 중에서 - [발견] 中
오로지 인간만이 가진 재능, ‘어리석음’은 시대를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의 모든 삶의 단계에서 화려하게 모습을 드러냈다. 그리하여 어리석음에 대한 연구를 시작하는 것은 곧 백과사전의 편찬 작업이 될 수밖에 없었다고 저자는 고백한다.
사실상, 이 책 <어리석음에 대한 백과사전>에 수록된 방대한 자료들은 넓은 범위에서 다각도로 수집되었고, 저자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사진과 그림 자료는 그간 좀처럼 볼 수 없었던 신선한 충격을 선사한다. 그리하여, 비록 그 형식에 있어서는 일반적인 백과사전의 범주를 벗어나 있으나, 어리석음에 대한 집대성이라는 점에서 진정한 의미의 백과사전이다.
저자는 인류가 이룩한 문화적인 업적은 사실 인류가 경험한 위대한 실패의 결과라는 믿음을 가지고, 철학에서뿐만 아니라 카툰에서까지 사례를 수집해서 이 책에 실었다. 그리스·로마 신화와 우화, 카툰, 바로크 시대의 천장 벽화, 농담, 구차한 변명, 교통사고, 영국 식 정원과 프랑스 식 정원, 단테의 <신곡>과 아이작 아시모프의 SF소설, 그리고 TV 시리즈물인 <야전병원(MASH)>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사례들을 동원해서 인간 지식의 여러 결과물을 종횡무진 누비며, 인간의 어리석음을 해부한다.
감히 어리석지 않다면, 이 바보에게 돌을 던지라!
자신의 어리석음을 깨달을 수 있을 만큼 똑똑한 사람은 없다. 하지만 나쁠 건 없다. 괜찮다. 모르는 게 약이라고 했다. 어리석음을 붙잡으려고 하는 모든 헛된 시도가 우리를 똑똑하게 만든다.
‘내가 어리석다고 생각할 때마다 나는 내 존재를 확인한다.’
본문 중에서 - [나는 믿는다] 中
인류는 어리석음을 피하기 위해 노력해왔고, 어리석음을 극복하기 위한 노력으로 문명을 만들어왔다. 어리석음이란 것은 피해야 할, 숨겨야 할 부끄러운 금기로 취급받았고 지혜로움, 혹은 현명함은 진정 가치 있는 덕목으로 대우받았다.
인간 세상 도처에 깔린 어리석음, 그 때문에 인간은 자기의 이익에 어긋나게 행동하고, 결국은 자신을 파괴하고 만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목숨까지 잃기도 한다. 그리하여 자신의 어리석음에 희생되지 않으려면 인간은 지성을 개발해야 한다. 때문에 어리석음이야말로 역설적으로 인류 문명의 원동력이며, 바보 같은 실수와 실패들이 진보와 성공을 가능케 한 요인인 것이다.
이렇게 이 책은 어리석음에 대한 일반적인 관점에서 벗어나, 전혀 새로운 각도에서 해석하고 의미를 부여하면서 유쾌하고 통렬한 분석을 보여준다.
저자는 어리석음에 대한 상충하는 정보와 이론들을 한자리에 쓸어모아 자기들끼리 마음껏 싸우게 만들고, 어리석고도 의미심장한 말을 남긴다.
“처음부터 나는 이 세상을 해석할 생각이 없었다. 내 관심은 이 세상의 수많은 정원과 책, 왕자와 교통사고 등을 내 주장에 활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내가 옳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다. 설령 내가 틀렸다 하더라도 말이다.”
실패를 피할 수 없다면 가장 멋지게 실패하라!
팔로 씨는 자기 삶이 특별하게 진실하고 선하거나 아름답기 때문에 사는 게 아니다. 삶은 늘 있는 그대로, 즉 바보같이 전개되기 때문에 그냥 그렇게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인생은 염세주의자들에게 진정한 축제의 장이다. 인생의 모든 사건은 그들이 예상했던 것보다 더 나은 방향으로 전개되기 때문이다.
본문 중에서 - [염세주의자들을 위한 축제] 中
저마다의 정체성, 자신을 다른 사람과 구분하는 이 정체성은 어디에서 생겨나는 것인가? 위 이야기에 등장하는 팔로 씨는 종종 자신이 저지르는 바보짓 때문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한다. 사람은 그가 구사하는 언어와 입는 옷, 생활습관 등 타인과의 차이점에 의해 규정되기도 하지만, 내적인 어떤 요인에 따라 규정될 수 있다. 이야기 속의 팔로 씨는 자신을 증명하려 시도하는, 나름대로 화려하지만 헛되이 끝나고 마는 숱한 노력 속에서 진정한 팔로 씨가 된다. 즉, 어리석음과 실패는 그의 정체성을 만드는 그만의 특성이다.
‘만일 실패를 피할 수 없다면, 가급적 가장 멋지게 실패하라.’
팔로 씨의 생각이다. 대부분의 인간은 자기가 생각하는 자기 이미지에 맞게 살려는 헛된 노력을 반복하면서, 자신만의 정체성을 구축하곤 한다.
우리의 마음은, 인간의 특성이자 낯선 덕목인 어리석음에 대한 반작용으로 형성된다. 우리는 스스로의 어리석음을 들키지 않으려 안간힘을 쓰고, 수치심과 분노와 실패로 인해 끊임없이 자신을 증명하도록 자극을 받음으로서 진정한 호모 사피엔스가 될 수 있다. 즉, 인간은 그가 인간이 되지 못하게 방해하는 어리석음과 싸움으로써 진정한 인간이 되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