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번의 국제결혼과 한 번의 사별, 다운증후군 딸과 영재 아들…
한 사람의 인생에서 좀처럼 일어나기 힘든 일을 모두 겪고
미국 상류사회의 예술가이자 사업가로 우뚝 선 한국여자 이기희 이야기
사랑과 운명에 순응하며 자기 자신을 개척해온 한 여자가 있습니다. 이기희(51세, 현재 미국 오하이오 주 데이튼 거주)는 미국 중부 지방에서 윈드갤러리라는 화랑을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유명한 큐레이터로, 세 아이의 어머니로 입지전적인 삶을 살아온 여자입니다. 그녀는 1953년 대구 근방의 현풍이라는 곳에서 태어났습니다. 행세하는 가문의 외동딸로 곱게 컸지만 일찍 아버지를 여의고, 토지 사기에 말려 전 재산을 날리는 바람에 청소년기에는 어려운 생활을 해야 했습니다. 경북여중, 경북여고를 다닐 때 그녀의 끼가 발동하기 시작했습니다. 문예반장으로 이기희는 장차 시인이 되고자 했습니다. 가정 형편이 어려워 거의 고학하다시피 해서 고등학교를 졸업했지만, 서울로 시험 보러 갈 여비조차 없어서 대구 계명대학교 국문과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습니다. 대학 시절 그녀는 ‘주변문학’ 동인을 결성하여 작가의 꿈을 키웁니다. 당시 ‘주변문학’ 동인으로는 유일하게 고등학생이었던 이창동(전 문화관광부 장관, 영화감독)과 김원도(시인, 25세에 요절한 소설가 김원일의 동생) 등이 있었는데, 한결같이 가난했지만 문청들끼리 의기투합하여 미래의 문학을 위해 교분을 다집니다. 이기희는 대학 시절 문덕수 시인의 추천으로 당시 〈시문학〉이라는 잡지로 등단을 합니다.
대학 시절 총학생회 여학생부장을 하던 이기희는 당시 계명대 학장의 주선으로 주한미국 공보관 부인의 한국어 개인교사가 되고, 그것이 계기가 되어 대학 4학년 때 미국독립기념일 파티에 초대됩니다. 이것이 그녀의 운명을 완전히 바꾸는 결정적 사건이 됩니다. 그 파티장에서 그녀는 자신보다 18세 연상의 미군 보급사령관 제임스 버드월스 육군 대령을 만나고, 그들은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집니다. 졸업 후 대구 계성고등학교에서 잠시 교편을 잡았던 그녀는 주위의 따가운 눈총에도 불구하고 버드월스 대령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이기희는 가난한 여대생에서 갑자기 주둔군 사령관의 아내가 되었지만 주위의 따가운 논총을 견딜 수밖에 없었습니다. 사랑의 대가치고는 너무나 컸겠지요. 그리고 이기희는 딸 하나를 낳습니다. 그런데 아이는 다운증후군에 선천성 심장기형을 갖고 태어났습니다. 이기희는 딸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얼마 후 남편과 함께 미국으로 갑니다.
미국에서 남편은 이기희를 미국 상류사회에 적응시키기 위해 노력하고, 이기희는 어느 정도 위험을 넘긴 딸과 함께 행복한 생활을 영위합니다. 그러나 행복도 잠시, 어느 날 갑자기 그렇게 자상하던 남편이 식도암 판정을 받아 3개월밖에 남지 않았다는 통보를 받습니다. 남편은 아내 몰래 정리해둔 두툼한 노트―자신의 재산 내역과 앞으로 아내가 혼자서도 살아갈 수 있도록 집안 살림에 대해 세세하게 기록한―를 건네주고, 3개월 만에 처참하게 세상을 뜹니다. 남편을 잃은 슬픔에 잠겨 있던 이기희는 영구 귀국을 결심합니다. 그래서 한국에 집을 얻어놓고 미국에서 신변을 정리하던 중, 우연히 점심을 먹으려고 들른 중국음식점에서 또 한번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됩니다. 영구 귀국을 딱 일주일 남겨둔 상황에서 처음 만난 두 사람은 중국음식점 주인인 우 서방―이 사람은 대만의 고위층 자제로 홍콩에서 영화 제작 일을 하다가 실패한 뒤 부도가 난 형의 죄를 뒤집어쓰고 미국에 체류하고 있던 중 이기희에게 반한 거지요―의 적극적인 구애로 결국 결혼에 골인하게 됩니다. 우 서방은 결혼하면서 이기희에게 두 가지 약속을 합니다. ‘돈과 자식을 주겠다.’ 이 약속은 지켜져서 이기희는 남편과 중국집 레스토랑을 운영하는데, 사업이 날로 번창해 곧 7개의 체인점을 갖게 되고, 딸과 아들 하나씩을 더 낳지요.
그러나 이기희는 여기서 멈출 수가 없었습니다. 자기 자신의 삶도 소중한 것이니까요. 이기희는 그림 공부를 했고, 미국에서 화가로 이름을 올리고 곧 윈드갤러리라는 화랑을 운영하면서 미국에서 손꼽을 만한 큐레이터로 화려하게 변신합니다. 조그만 동양 여자가 백인들의 고유 업종을 선택하여 지금은 미국 굴지의 화랑을 운영하는 데까지 이른 것이지요. 여기까지가 여왕으로서의 이기희의 운명이지요. 두 번의 국제결혼과 한 번의 사별이라는 범상치 않은 운명을 받아들이고, 최선을 다해 가족과 자신을 위해 부를 쌓고 성공한 여자가 된 것이지요. 그러나 그녀에게는 집시처럼 자유롭고 싶은 욕망이 있습니다. 그것은 예술에 대한 갈망이기도 하지요. 그녀는 그것을 그림과 글로 표현합니다. 이기희는 어릴 적 이웃집에 살았던 박소선 할머니(현풍할매곰탕의 창업자)와 어린 시절의 이야기를 교직시킨 장편 자전소설 《찔레꽃》(전2권)을 2002년에 출간하였고, 이번에 대학 시절 이후부터 지금까지의 삶을 이야기한 자전에세이 《여왕이 아니면 집시처럼》을 출간하게 되었습니다. 첫 남편 제임스와의 국적과 나이를 뛰어넘은 사랑, 그리고 다운증후군을 앓고 있는 딸에 대한 헌신적인 사랑, 남편과의 사별, 중국인 남편을 만나는 과정, 그리고 화랑의 여주인으로 성공하기까지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