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춘의 고뇌와 섬세한 감성이 빛을 발하는 에세이가 출간되었다.
저자는 황시내. 독자들에게는 생소한 이름이지만, 한국 문단의 거목 황순원의 장손녀이자 황동규 시인의 장녀이다. 국내에는 처음 발표되는 글이지만, 미국 시카고에 거주하고 있는 저자는 이미 미주 중앙일보를 비롯한 몇몇 매체에 고정 칼럼니스트로 글을 발표해오고 있다. 여기 실린 글은 해외에서 그간 발표한 글과 신작 에세이를 묶어 한 권의 산문집으로 출간한 것이다.
작가 황시내는 이미 약력에서 기술한 바와 같이, 서울대 작곡과를 졸업하고 독일과 미국에서 작곡과 음악학, 그리고 미술사를 공부한 재원으로 이 산문집의 발간은 정통 클래식을 이야기할 수 있는 새로운 필자의 발굴이라는 점에서도 그 의미가 깊다 하겠다. 또한 책에 삽입된 그림은 그녀가 직접 그린 것으로, 상당한 수준의 실력을 자랑함을 알 수 있다. 음악과 미술, 그리고 문학까지 아우르는 이 다재다능한 작가의 출현은 순수 에세이스트의 기근에 시달리는 한국 문학계의 반가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이 산문집에는 할아버지인 황순원 선생에 대한 이야기(〈터키인 거리〉), 아버지인 황동규 선생에 대한 이야기(〈첫사랑〉, 〈한번쯤〉 등)가 실려 있어 그분들의 진솔한 인간적 모습도 살펴볼 수 있다.
이 산문집은 3부로 나뉘어 있다. 1부는 작가의 독일 유학시절 이야기이며, 2부는 클래식 음악을 비롯한 여러 음악에 대한 감상, 3부는 미국 시카고 생활을 중심으로 삶 속에서 건져 올린 보석 같은 이야기들이다.
이 글모음집의 단연 압권은 첫 번째 글인 〈그해 봄밤의 중국 노래〉라 할 수 있다. 웬만한 단편소설을 능가하는 소설적 구성에, 작가의 외로움과 향수(鄕愁)어린 상상이 가미된 이 글은 그 애잔함으로 읽는 이의 가슴을 아리게 한다.
낯선 독일 땅, 황량한 기숙사에서 작가는 몇 개월째 불면증과 동거하고 있다. 어느 날 밤, 역시 불면과 씨름하고 있을 때 희미한 피아노 소리가 들린다. 아래층 휴게실에서 나오는 것이 틀림없는 그 서툰 피아노 소리는 중국 노래였다.
머나먼 중국 어느 고을에서 이곳, 독일 중부 지방의 소도시로 흘러들어온 가난한 유학생이리라. 그는 고향이 그리운 걸까. 그리하여 모두가 잠든 밤 몰래 방을 빠져나와 냉기 어린 휴게실의 불을 켠 것일까. 그리고 피아노 뚜껑을 열고 남들이 깰세라 소프트 페달을 밟고서 피아노 건반을 두드리고 있는 것일까. 나는 베개에 얼굴을 묻고 한참 중국 노래에 귀를 기울이다가 눈물을 글썽이며 잠이 든 것 같다.
중국 노래는 다음날도, 또 다음날도 자정을 지날 무렵 어김없이 들려왔다. 온 도시가 쥐죽은 듯 고요한 가운데 침대에 누워 희미하게 들려오는 피아노 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노라면 뭔지 모를 아련한 향수 같은 게 밀려왔다. 은빛 띠 같은 강이 흐르는 어느 작은 마을, 복사꽃 지는 저녁에 그는 동무들과 중국 노래를 부르며 병정놀이를 했겠지. 마을 어귀에는 붉은 현수막이 바람에 나부끼고 멀리서 노루 떼가 사향을 풍기며 들판을 지날 때, 동네 아낙들은 빨래 광주리를 이고 라디오에서 들은 중국 가요를 흥얼거리며 우물가로 향했겠지. 막 해가 진 하늘엔 하얀 저녁달이 말없이 떠오르고 마을 광장의 커다란 벚나무는 온몸을 흔들어 꽃잎을 떨어뜨리는…….
중국 노래는 나를 깊고 편한 잠 속으로 이끌어 들였다. 꿈속에서 나는 어릴 적 뛰어 놀던 서울 변두리의 거리를 걷고 또 걸었다. 깨어나도 깨어나지 않은 것 같은 꿈이었다.
문학에서도 재기발랄하고 튀는 글이 하나의 트렌드를 이루는 요즈음, 이처럼 애상의 정조를 띠고 낮게 소곤거리는 글을 읽는 맛은 특별하다. 황시내의 글에는 어떤 아픔이 묻어 있다. 그 아픔은 위의 글에서처럼 외로움에서 오는 슬픈 감정일 수도 있고, 부조리한 인간 존재를 통찰하는 데서 오는 근원적 아픔이기도 하다. 3부에 나오는 〈새의 심연〉은 대학 시절 보았던 새의 이미지와 비극적 삶을 살았던 작곡가 메시앙의 〈새의 심연〉이라는 곡을 연계시켜, “너무나도 가벼워 무게가 거의 느껴지지도 않는 작은 새”에게 존재의 비극을 투영하고 있다.
Abime(심연)란 단어는 내가 알고 있는 불어 단어 중 가장 강렬했다. 빛이 완전히 차단된 암흑, 완결된 절망의 순간, 블랙아웃, 입을 벌린 크레바스, 깊고 깊은 골짜기, 끝없는 추락, 쏟아지는 코피, 눈앞에 갑자기 닫히는 문, 극심한 두통 같은 것들이 떠올랐다. 그리고 그 모든 것들이 합해진 밑바닥에서 새는 조용히, 끊임없이,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비명을 지르고 있는 것이다.
하던 청소를 마치고 주방에 와서 찻물을 올리는데 순간적으로 뒷골이 쩡하게 아파오며 클라리넷의 고음이 고막을 찔렀다. 그리고 갈매기가 창에 부딪히는 순간, 그 짧은 찰나에 눈앞을 스쳤을 심연이, 그 끝없이 깊고 어두운 골짜기가 떠올라 한동안 가슴이 먹먹했다.
1부 마지막 글인 〈터키인 거리〉도 그 쓸쓸함으로 가슴을 울린다. 독일 땅의 터키인 거리. 고향을 잃고 저마다 불안스런 미래를 꿈꾸는 이방인들에게서 작가는 평안도 출신으로 서울에서 어쩔 수 없는 이방인의 삶을 살았던 할아버지 황순원을 생각한다. 이 글은 책 전체에서 황순원이 언급되는 유일한 부분인데, 손녀딸인 그가 기억하는 할아버지는 세간에서 바라보는 ‘유명 문인’ 타이틀에 빛나는 황순원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 뿌리박지 못했다는 불안을 안고 살아온”, “술을 마실 때면 언제나 2차로 평양 빈대떡을 부쳐주는 주점으로 향한” 쓸쓸한 할아버지인 것이 흥미롭다. 터키인 거리에서, 식료품 가게 주인 아사프의 미인 아내는 갓난아기를 버려두고 젊은 독일 남자와 도망가며, 비자 만료를 앞둔 작가는 절박한 심정으로 끊임없이 바클라바(단 과자)를 씹어댄다.
황시내의 글에 ‘고뇌하는 청춘’이 있다면, ‘열정으로 똘똘 뭉친 청춘’ 또한 있다. 그녀는 비록 우리에게 조용히 소곤거리지만, 그 어떤 모험가 내지는 탐험가 못지않은 열정과 대담함으로 우리를 놀라게 한다. 〈운하의 도시로부터〉는 독일 유학 시절 상트페테르부르크로 혼자 여행한 이야기로,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배를 타고 더 들어가는 곳에 있는 ‘황제의 여름궁전’을 넋을 잃고 구경하다가 그만 돌아오는 막배를 놓쳐서 말도 안 통하는 낯선 곳에서 혼자 길을 잃을 뻔한 이야기다. 막막해하던 그는 간신히 아침에 동행이었던 듯한 사람을 알아보고는 그 사람의 뒤를 따라서 어디로 가는지도 모를 버스에 올라탄다.
버스는 전혀 모르는 시골 마을을 하나 둘 지나쳐 달리고, 저는 글쎄 어땠는지 아세요? 시간이 지날수록 놀랍게도 점점 행복해지는 것이었어요. 버스가 어디로 향하는지 전혀 알 수 없지만, 할 줄 아는 러시아 말이라고는 스빠시바, 다스비다니야, 하라쇼뿐이었지만, 어제 호텔에 맡겼으므로 여권도 가지고 있지 않았지만, 햇빛은 점점 옅어져가고 있었지만, 이상하게도 불안감이 아니라 가슴 속 깊은 곳으로부터 해방감이, 벅찰 정도로, 마구 솟아나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참으로 기이한 경험이었어요. 저는 주소도 목적지도 없는 새처럼 자유로웠고, 공기처럼 가벼웠습니다. 제가 지금 어디서 무엇을 하고 있다는 걸 아는 사람이 아무도 없으며, 제가 이곳에서 갑자기 사라져버린다 해도 저를 찾을 수 있는 단서란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는 데 생각이 미치자 저는 거의 행복해서 죽을 지경이었답니다. …… 페테르부르크로 오는 동안 다행히도 표 검사는 없었지만, 검사가 있었다면, 그래서 여권 없이 무임승차한 죄목으로 KGB 사무실에 끌려가 취조를 받기라도 했다면 더 근사한 하루가 되지 않을까 하는, 어디서 온지 모를 여유가 있었답니다, 제겐.
이 책의 표제작이 된 〈황금 물고기〉에서는 파울 클레의 그림 〈황금 물고기〉 한 점을 보기 위해 소동(?)을 벌인다. 특히 〈상상적 풍경〉에서는 음악의 전통적 교수법과 자유로운 현대적 실험정신 둘 다를 배우기 위해 새벽 네 시에 기차를 타고 가는 수고를 무릅쓰며 두 군데 학교를 동시에 다니는 장면이 인상적이다. “만하임에서 바흐와 베토벤을 분석하고 푸가를 연습한 다음날 다름슈타트에서 현대 음악 즉흥 연주를 하는 것은 유익한 경험이기도 했지만 한편으로 자아 분열 증세를 일으킬 만한 상황이었다.”
〈텅 빈 방〉 같은 글도 수작으로 읽히는데, 소소한 일상과 심리의 흐름을 절제된 언어로 간결하게 표현해내는 그의 글맛은 책 전체에 걸쳐 있으니만큼 이제 새로울 것도 없지만, 삶에서 어떤 변화를 시도하고, 관철시키려던 그 변화가 현실의 압력에 굴복(?)하면서 서서히 자연스럽고 만족한 삶의 모습을 갖추어 나가는 이 이야기는,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겪는 통과의례를 하나의 에피소드로 은유한 듯하여 의미심장하게 다가온다.
황시내의 글에는 유난히 ‘추억’을 소재로 한 글들이 눈에 많이 띈다. 옛날 가요의 추억, 어릴 때 가지고 놀던 인형의 추억, LP 판의 추억, 공갈빵의 추억, 음악 감상실의 추억. 그럼 그에게 아버지 황동규에 대한 추억은 어떤 것일까. 우연히도, 아버지에 대한 추억은 작가에게 어쩌면 가장 소중한 것일 음악과 항상 오버랩된다. 아버지의 방에서 흘러나오는 베토벤의 〈비창〉을 듣고 최초로 음악을 ‘느꼈고’(〈첫사랑〉), CD 플레이어도 없던 당시에 아버지로부터 음악 CD를 선물 받았으며(〈독일 레퀴엠〉), 아버지 방에 몰래 들어가 만져보기만 하던 수많은 LP 판들을 대학에 입학한 후 물려받았고(), 어린 시절 살짝 취한 아버지가 어두운 골목길에서 송창식의 〈한번쯤〉을 부르던 기억을 회상한다(〈한번쯤〉).
아직 삼십대임에도 불구하고, 작가 황시내의 추억 글 속에는 ‘이제는 돌아와 거울 앞에 선 누님’과 같은 성찰적이며 관조적인 분위기가 묻어난다. 작은 추억의 물건들 속에서 그는 어린 시절을 조용히 반추하며, 삶을 정화하는 이야기를 나지막이 들려주고 있는 것이다.
황시내의 글은 황순원 소설의 정갈함과 절제된 언어, 그 예술성을 물려받았고, 황동규 시의 열정을 이어받았으면서도 여성 특유의 감성이 보석처럼 빛나는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책 한 권으로 한국 문학이 기억할 한 에세이스트의 탄생을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