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책 소개
영화 <자산어보> 개봉 기념 출간!
정약전과 섬 소년 창대의 나이와 신분을 넘어선 우정!
그들이 흑산도에서 함께 펼치는 실사구시의 꿈
이 책 <자산어보>는 정치 경제적으로 격동의 시기였던 18, 19세기 조선을 배경으로, 1801년 신유사옥 때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이 우리나라 최초의 어보를 만드는 과정과 어민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어 함께 문제를 풀어나가는 이야기가 펼쳐지는 소설이다.
순조 1년, 신유박해로 절해고도 흑산도로 유배된 정약전은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한양에서 다 피우지 못한 ‘실학’을 펼칠 수 있으리란 희망을 안고 섬사람들의 삶 속으로 뛰어들면서 그곳에서 어보를 쓰기로 결심한다. 정약전은 바다를 잘 아는 흑산도 청년 어부 창대를 만나 어보를 쓰는 데 큰 도움을 얻으며 나이와 신분을 뛰어넘어 서로에게 스승이자 벗이 된다.
소설 『자산어보』에서는 어지럽고 지난했던 조선후기 사회상이 농민과 어민들의 삶을 통해 드러난다. 어부와 잠녀들의 일상사나 표류민들의 애환, 홍경래의 난으로 봉기한 농민들과 그로 인해 쫓기는 잔당의 이야기 등이 그것이다. 또 옥패의 친구인 이국영과 허회영의 결혼을 앞두고 죽은 줄만 알고 있던 고상운(이국영의 남편)이 살아돌아온 것이나 노비의 신분으로 은인과 정인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이야기 등은 남성우위 및 봉건제 신분 사회의 한계와 특성을 담담하게 그리고 있다. 한편 서원의 동주(원장)가 서민들이 공부하던 사촌서당의 맥을 끊기 위해 약전과 최종문(약전의 제자)을 배척하고 고사시키려 했던 모습은 조정의 비호 아래 외딴섬에서도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둘렀던 서원의 행태와 조개껍질 속으로만 숨으려 했던 조선후기 보수 지배계층의 단순무지함이 결국 근대사회 우리 국운을 몰아갔음을 암시한다.
격동기 조선사회의 이면을 주된 배경으로 하면서 탄탄한 구성과 흥미진진한 에피소드의 결합을 통해 감동적인 한 편의 드라마를 보여주는 《자산어보》는 동시에 절망적인 상황에서도 희망을 놓지 않고 신념을 지키는 실천하는 지식인인 정약전을 통해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지식인과 리더의 모습을 반영하고 있다.
책 속으로
창대는 계속해서 온갖 종류의 물고기를 잡아 올렸고 약전은 창대가 잡아 온 물고기를 문헌과 비교해 가며 특성과 습성을 빠짐없이 기록해 나갔다.
“앞으로는 어류 외에도 해조류와 조개류도 다룰 것이니 빠뜨리지 말고 채집하거라.”
“날이 풀리는 대로 물속으로 들어갈 생각입니다. 그런 것들은 물질을 하면 많이 잡을 수 있습니다.”
창대는 신이 났다. 한양 선비로부터 인정을 받은 것이다. 물질이라면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자부하고 있다. 창대는 어보의 초가 한 장 한 장 늘어나는 것을 보며 약전 못지않게 뿌듯했다.
더구나 물눈을 얻은 마당이다. 물눈을 끼면 물속이 바깥세상처럼 환하게 보인다고 하는데 얼마나 멀리까지 보일까. 창대는 당장이라도 물질을 하고 싶어서 몸이 근질근질했다.
약전은 기다렸다가 준치를 먹고 가라고 했지만 창대는 자리에서 일어섰다. 어머니가 기다리고 계신다. 그리고 아무리 한양 선비가 허물없이 대해 주더라도 지킬 것은 지키는 것이 좋을 것이다.
-1권 28~29쪽
약전은 한 장 한 장 늘어 가는 초들을 살피며 아이처럼 기뻐했다. 그리고 보람을 느꼈다. 애초에는 큰 기대를 않고 시작한 일이지만 어보의 초가 하나둘씩 늘어나면서 약전은 점점 물고기에게 관심을 기울이게 되었고 바다의 신비로움에 빨려 들어갔다.
창대는 초를 이리저리 넘기며 혹시 사실과 다르게 기재된 것은 없는지 꼼꼼히 살폈다. 창대는 웬만한 책은 별 어려움 없이 읽을 수 있는 데다 매사에 성실해서 약전은 창대로부터 큰 도움을 얻고 있었다.
“소인은 매일 보면서도 그저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는데 선비님께서 작은 것 하나도 놓치지 않으시는 데 놀랐습니다.”
창대가 초를 넘기며 감탄을 했다.
“그런데 여기 편어(扁魚 병어)는 머리가 작고 목이 움츠러들었으며 꼬리가 없다고 적혀 있는데 편어에게는 작기는 하지만 꼬리가 있습니다. 아마 제가 꼬리가 떨어져 나간 놈을 잡아 온 모양인데 다음에 제대로 된 놈을 다시 잡아 오겠습니다.”
“그러냐? 그렇다면 고쳐 적어야겠구나.”
약전은 즉시 붓을 집어 들었다. 이렇듯 약전은 매사를 창대와 의논하고 있었다.
“뭐니 뭐니 해도 흑산도에서는 조기와 홍어가 제일인데 아직 철이 되질 않아서 잡지 못하고 있습니다. 홍어 큰 놈은 넓이가 육칠 자나 되는데 그 넓적한 놈이 바다 밑을 유유히 헤치며 나가는 모습은 정말 장관입니다.”
-1권 39~40쪽
今有圓形城 不知周徑 有四面門 乙出南門直行一百三十五步 至此
點 甲出東門直行一十六步 視此點 問城直徑幾何
원형으로 된 성이 있다. 둘레와 지름의 길이는 알 수 없는데 사면에 문이 있다. 을이 남문을 나와서 똑바로 백삼십오 보를 걸어가서 어느 지점까지 왔다. 그리고 갑이 동문을 나와 똑바로 십육 보를 걸어간 곳에서 그것을 보았다. 그렇다면 성의 지름은 얼마인가?
천원술 중에서 어려운 편에 속하는 사원술(四元術 연립다원고차방정식)에 속하는 문제다. 약전은 최종문도 쉽게 답을 구하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최종문은 심각한 얼굴로 풀이에 들어갔고 나머지 사람들은 풀기를 포기한 듯 멍한 얼굴로 서로를 쳐다봤다. 과연 답을 구할 수 있을까. 약전은 호기심을 가지고 풀이에 몰두하고 있는 최중문을 지켜보았다. 어지럽게 수식을 적어 내려가던 최종문이 고개를 번쩍 들었다.
희색이 만면했다.
“답은 이백사십 보입니다.”
정답이었다.
“풀이는”
약전은 감탄을 억누르며 해답을 얻기까지의 과정을 물었다. 수학에서 풀이 과정은 답보다 더 중요하다.
“먼저 천원(天元)을 설정해서 성의 반지름으로 삼고 남행보(南行步)로 고(股 높이)를 정한 후에 여기에 동행보(東行步)를 더하여 구(句밑변)를 얻습니다. 그리고 현(弦 빗변)을 구하고서 이것으로 현멱(弦冪빗변의 제곱)을 얻어서 차례로 구멱(句冪 밑변의 제곱)과 고멱(股冪 높이의 제곱)을 계산한 다음에 이들을 가감해서 반경(半徑)을 산출하면 답을 구할 수 있습니다.”
최종문이 차분하게 풀이를 설명했다. 나무랄 데 없는 풀이였다. 최종문은 기대 이상으로 완벽하게 풀이를 한 것이다. 약전은 기뻤다. 흑산도에서 이런 인재를 만나게 될 줄이야. 최종문은 정녕 한양에서도 찾기 힘든 인재였다.
-2권 63~64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