링에서 길을 찾다!
이인영. 그녀는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미용사 보조로 남의 머리 감기는 일과 봉제공장에서 실밥 따는 일을 했다. 잠깐 동안이지만 학원 셔틀버스를 몰기도 했고, 일반택시 기사에, 남자도 하기 힘든 식품회사 트럭 운전사 노릇까지 했다. 그리고 중증 알코올 중독자로 10여 년 동안 길고 긴 어둠의 터널 속을 헤매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날, 아주 우연히 섬광처럼 권투의 마력이 그녀를 휘감았다. 마침내 서른의 나이에, 링에서 길을 찾았다! 로드워크를 하고, 샌드백을 두드리고, 사각의 링에서 스파링으로 땀을 빼며 다시 태어난 프로복서 이인영! 그녀는 오늘도 무한도전, 무한질주를 꿈꾼다!
나의 길을 가련다!
누구나 저마다의 인생에서 한 번쯤은 그 크기와 무게는 달라도 좌절 또는 절망을 느끼지 않은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또한 내게 주어진 이 길, 아니 내가 선택한 이 길이 과연 최선의 길인지, 그 의문의 꼬리를 물고 진지한 고민을 한 번쯤은 해보았을 것입니다. 그리고 아직 오지 않은 길, 아직 가지 않은 길에 대한 미련은 아마 평생을 가도 해소하지 못할, 그야말로 미련으로 남아 있을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가끔 하는 일이 제대로 풀리지 않을 때, 또는 뭔가 인생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하고 싶어하는 욕망에 몇 날 며칠을 불면의 밤으로 지새우기도 합니다. “그때 만약 그 길을 선택했다면?”처럼 “내가 만약 ~했더라면 이보다는 나았을 거야” “내가 만약 ~했더라면 큰일날 뻔했어” 등등 미처 가보지 못한 길에 대한 두려움 또는 아쉬움을 누구나 마음 한켠에 두고 살아가고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두려움과 아쉬움을 과감하게 극복하고 인생의 어느 시점에서 대전기를 마련하는 용기있는 사람들을 요즘 심심치 않게 만납니다. 한 예로, 억대의 연봉을 받는 증권사 펀드를 접고 아주 어렸을 때부터 관심이 있었고 해보고 싶었던 요리에 대한 꿈을 펼치게 된 어느 재벌 2세의 화려한 대변신은 우리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줍니다. 그래도 그 사람은 어느 정도 생활의 기반이 있었기에 180도로 인생역전을 시도한다 해도 그리 두려움은 없었으리라 생각됩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고 그야말로 삶의 구렁텅이에서 허우적거리며, 이미 희망이란 단어를 상실한 사람들이 과연 삶의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확률은 얼마만큼이나 될까요?
지난날 희망이란 단어보다 절망이란 단어에 더 익숙했던 한 여성을 만났습니다. 그리고 10여 년의 황금 같은 청춘의 시절을 알코올에 저당잡힌 채 아무런 꿈도 없이 살아가다가 정말 운명처럼 다가온 그날 이후로 새로운 삶을 찾게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습니다.
이제 그녀의 이야기를 한 권의 책으로 엮어 여러분 앞에 내놓게 되었습니다.
나에게 파이널 라운드는 없다!
우리나라 최초 여자프로권투선수 이인영. 스폰서를 구하지 못해 몇 번의 세계 타이틀 매치가 연기되던 끝에 마침내 오는 9월 27일 세계 플라이급 챔피언 결정전을 서울에서 치르게 됩니다. 그녀 나이 올해 서른셋. 권투선수치고는 좀 나이가 많은 편이라 할 수 있죠. 그녀는 나이 서른에 사각의 링에서 새로운 삶을 찾았습니다. 경기 전적 6전 6승 2KO. 척박한 한국여자프로권투의 새 희망이 될 그녀는 그래서 더욱 아름답습니다.
내 인생의 3분의 1을 술에 절어 살았다. 술에 바친 세월이 근 10년여! 사랑하는 가족들을 고통의 구렁텅이로 몰아넣었던 끔찍한 시절이었다. 중증의 알코올 중독자로 10년을 방황하던 중 서른 나이에 처음 권투를 시작한 트럭 운전기사, 이인영! 간단하기 이를 데 없는 나의 이력서지만 그 뒷면에는 이렇게 아픈 과거가 숨겨져 있다. (_본문 중에서)
그렇습니다. 그녀는 ‘권투’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기 전까지 알코올의 마성에 사로잡혀 마침내 정신병원에 입원할 정도의 중증 알코올 중독이라는 극한 상황에까지 이른 상태였습니다. 그런 와중에 트럭 운전사 생활을 하면서도 알코올에 대한 유혹을 쉽게 떨쳐버리지 못해 몇 번의 실수도 저지릅니다. 그러던 어느 날, 한국인이지만 어릴 적 미국으로 입양되어 권투선수로 성장한 킴 메서와 미셸 셔클리프의 여자프로권투 세계 타이틀 매치를 보다가 날카로운 섬광처럼 꽂힌 권투와 드디어 인연을 맺습니다.
치고 때리고……. 피하고 맞고……. 온몸에 전율이 흘렀다. 멋졌다. 깨끗했다. 바로 저거다! 나도 저렇게 할 수 있다! 그래! 권투를 하자! (_본문 중에서)
처음에 그녀를 맞아준 체육관 관장은 그녀를 고등학교 남학생으로 생각했다가 여자라는 것을 알고, 게다가 서른 나이의 그녀를 그저 살빼기로 권투를 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별로 관심을 보이지 않습니다. 그러나 권투에 대한 그녀의 열정, 그 성실함을 차츰 눈여겨보다가 마침내 이인영에게 여자권투선수라는 새로운 삶을 이끌어주는 데 든든한 조력자가 되어줍니다. 그런 와중에 알코올 금단 현상이 두려워 술을 끊지 못했던 그녀는 권투를 하면서 아무런 금단 현상을 일으키지 않고 칼로 무 자르듯 알코올 중독의 깊은 늪에서 가뿐하게 일어서게 됩니다.
이제 그녀는 자신있게 말합니다.
그래, 나는 권투에 도전했다. 내 삶에 도전했다. 그리고, 나는 이미 이겼다. 이 아름다운 아침은 오로지 나의 것이다. (_본문 중에서)
그녀는 매일 새벽 다섯 시면 어김없이 로드워크를 나섭니다. 권투를 시작한 이래 언제 어디서든, 날씨나 몸의 상태와 관계없이 단 하루도 빠짐없이 10킬로미터씩, 두 시간 정도를 뜁니다. 오후 네 시쯤 되면 운동 준비를 하고 체육관으로 향하고 다섯 시에서 일곱 시까지 두 시간 동안 체육관에서 본격적인 연습을 합니다. 그녀는 마흔 살까지 링에서 뛰고 싶다는 포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앞으로 남은 7년 동안 매일 10킬로미터씩 뛴다면 25,550킬로미터, 장장 6천4백 리를 더 뛰게 될 것입니다.
오늘의 그녀가 있기까지 많은 사람들의 믿음과 후원이 있었습니다. 그녀의 이야기를 접하면서 “더불어 살아가는 삶”의 가치를 새삼 깨닫게 됩니다. 그녀는 더 이상 좌절이란 단어를 떠올리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나이가 들어 권투를 그만둔다 해도 그녀의 도전은 무한대로 펼쳐질 것입니다. 이미 그녀는 권투를 통해 자신감과 새로운 삶의 도전이 얼마나 아름답고 멋진지 충분히 경험했을 테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