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양 문화와 사상의 뿌리, ‘바이블’은 교양필독서
민족주의의 시대인 유럽의 19세기,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바이런은 엉뚱하게도 수천 년 전 이스라엘이 아시리아 군대를 격파한 장면을 노래했다. “적들은 하나님의 눈짓 하나에 눈처럼 녹아버렸다”(「센나케리브의 파멸」). 그 뒤 바이런은 투르크의 지배하에 있던 그리스의 독립운동을 지원하기 위해 발칸으로 갔다가 그곳에서 죽었다.
바이런의 이 두 가지 에피소드는 서양의 문화, 역사, 사상에서 성서와 그리스 문명이 어떤 위치를 점하고 있는지 극명하게 보여준다. 즉 성서는 그리스 문명과 더불어 오늘의 서양 세계를 낳은 양대 뿌리이다.
비틀스 멤버들의 이름인 존, 폴, 조지, 영화감독 스필버그와 소설가 킹의 이름인 스티븐, 그밖에 피터, 제임스, 마이클, 토머스, 필립, 레이첼, 메리, 레베카―이 수많은 서양 이름들은 모두 성서의 인명을 기원으로 하고 있다. 이탈리아의 산탄젤로와 러시아의 아르한겔스크는 천사(angel)라는 말에서 나온 지명이다. ‘노아의 자식’은 햄버거에 들어가는 ‘햄’이고 ‘아담의 맥주’는 물을 뜻한다. 성서를 빼놓고는 결코 서양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원래 그리스도교의 경전에 불과했던 성서가 지금은 서양 문화와 사상을 이해하려는 독자들에게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텍스트가 되었다.
구약성서에서 모세가 히브리인들을 이끌고 이집트를 탈출해 이스라엘에 정착한 기원전 13세기 이래 지금까지 3천여 년 동안 중동 문제는 전혀 해결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신약성서에서 예수가 ‘신의 아들’로서 이 세상에 등장한 사건을 놓고 중세 신학이 발달했고 그 성과가 근대 인식론 철학으로 이어졌다. 다시 말해 구약성서는 서양사의 원류를 형성하는 역사이고, 신약성서는 서양 사상의 근본을 이루는 토양이다.
‘바이블’에 나오는 500여 개 키워드를 사전식으로 해설하다!
성서를 이해하려면 직접 읽는 게 가장 좋을 것이다. 하지만 그리스도교도도 아닌데 성서 전체를 통독하기란 매우 어려운 일이다. 구약성서가 39권이고 신약성서가 27권이므로 성서는 총 66권에 달하는 ‘도서관급’ 문헌이기 때문이다. 더구나 성서에는 각주나 해설이 거의 없기 때문에 지적 배경을 알지 못한 채 인내심 하나만으로 읽어내기란 만만치가 않다.
이 책,『바이블 키워드』는 그런 딜레마를 해소하려는 목적을 가졌다. 읽어내기 어려운 방대한 분량의 성서에서 가장 핵심적인 지식만을 뽑아내어 독자들의 이해를 돕기 위해 펴낸 책이다.
『바이블 키워드』는 독자들이 궁금해 하는 구약성서와 신약성서에 언급된 수많은 인명, 지명, 사건들을 500여 개의 표제어로 삼았다. 그리고 언제 어느 때라도 독자의 필요에 따라 찾아볼 수 있도록 사전식 편집을 채택했다.
한마디로, 『바이블 키워드』는 성서에 나오는 모든 개념어들을 총망라해 집대성한 교양서이다. 저자는 각 표제어마다 성서의 해당 구절을 인용하고 풍부한 해설과 현대적인 해석을 제공한다. 아울러 그 표제어가 문학, 미술, 연극, 영화 등 문화의 각 분야에서 원용되고 있는 사례도 충실하게 소개한다.
저자인 J. 스티븐 랭은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지만 신학적인 해석에만 치우치지 않고 성서의 내용과 연관된 지식/상식을 독자들에게 전달하려는 데 초점을 맞추었다. 따라서 이 책은 신앙과 무관하게 성서를 알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교양으로서 성서를 알고자 하는 인문학 독자들에게 흥미롭고 효과적인 길잡이 역할을 할 것으로 보인다. 물론 각 표제어마다 성서의 문구가 수록되어 있어 일반 그리스도교들에게도 성서적 지식을 넓혀주는 책으로 유용하게 활용될 수도 있을 것이다.
대중문화까지 광범위하게 아우른 『바이블 키워드』
‘한 권으로 읽는 ×××’라는 제목을 단 책들은 얄팍함의 함정에 빠지기 쉽지만, 이 책은 500여 개의 표제어와 인문학과 종교학을 넘나드는 저자의 해박한 지식과 풍부한 필력으로 그 위험을 피해간다.
또한 저자는 「인디애나 존스」나 「오멘」 같은 인기 영화는 물론이고 제네시스나 브라이언 애덤스 같은 대중음악의 코드까지 원용해 성서가 오늘날의 대중문화에 미치는 연관성과 영향 등도 매우 흥미롭게 설명하고 있다.
또한 예술작품에 드러난 수많은 오류들도 놓치지 않는다. 흔히 천사라고 하면 예쁜 날개를 가진 아기 천사를 연상하지만 천사가 날개를 가졌다는 말은 성서 전편을 찾아보아도 단 한 군데서도 나오지 않는다. 성서에서 말하는 천사는 신의 사자로서 훨씬 터프한 이미지이다. 유대인들 중에서 할례를 받지 않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저자는 미켈란젤로의 걸작 조각상 「다윗」이 미술사에 남을 커다란 오류라며 한숨을 내쉰다. 또한 예수는 아람어를 사용했다는 점을 지적한다. 예수가 버젓이 라틴어를 쓰면서 등장하는 영화나 연극은 모조리 엉터리라는 의미이다.
그렇지만 저자는 독자들에게 ‘성서를 자구 그대로만 이해하려고 하면 오히려 성서의 가치가 하락된다’고 책의 곳곳에서 여러 번 상기시킨다. 성서의 오해가 역사의 오해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을 한껏 경계하고 있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