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화인가, 역사인가?’
그리스 고전 들고 떠나는 인문 기행
그 첫 번째 땅, 펠로폰네소스
‘신화의 땅’으로 불리는 그리스. 그 땅 위에는 여전히 신의 이름으로 세워진 신전 기둥과 신비로운 이야기들이 남아 있다. 떠도는 이야기가 많은 만큼 그리스는 역사와 신화의 경계가 모호한 곳이기도 하다. 이곳을 조금 깊이 있게 여행한다면 ‘역사일까, 신화일까’라는 고민이 드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리스 인문 기행』은 ‘고전’을 통해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를 풀어간다. 특히 1권에서는 직접 걸으며 만난 펠로폰네소스반도의 도시 국가 다섯 곳, 코린토스, 미케네, 스파르타, 올림피아 그리고 에피다우로스를 배경으로 한다. 책 곳곳에는 호메로스에서부터 니코스 카잔차키스까지 그리스 고전의 대가들이 남긴 기록을 인용했는데, 이를 통해 허구로만 알던 신화의 실재를 고민해 보게 된다. 또 사랑, 자비, 복수, 탐욕 같은 신화 속 얽히고설킨 관계에서 드러나는 신과 인간의 민낯을 보며 흥미롭다가 오늘날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에 사색에 빠지게도 된다. 이 책은 여러 인물과 사건이 나오는 신화도, 두껍고 어려울 것 같은 고전도 ‘여행’을 하며 쉽게 풀어낸다. 가볍게 그리스를 걷다가 우연히 고전을 만나고, 고전이 풀어주는 신화 이야기를 듣는 기분마저 드는 여정이 될 것이다.
펠로폰네소스 다섯 곳의 땅에서
펼쳐지는 신비로운 이야기!
총 5장으로 꾸려진 『그리스 인문 기행』 1은 어머니의 손을 닮은 펠로폰네소스 지형의 개괄을 시작으로 코린토스, 미케네, 스파르타, 올림피아와 에피다우로스로 발걸음을 옮긴다. 각 장에서 펼치는 신화는 모두 고전을 근거하여 전개되며, 여전히 그곳에 남아 있는 흔적들도 만날 수 있다.
1장에서는 놀랍도록 번영하고 타락했던 도시, 코린토스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디올코스를 밟으며 코린토스 번영의 열쇠였던 운하 건설과 이를 둘러싼 권력자들의 탐욕을 만난다. 또 아폴론 신전을 지나 글라우케의 샘에서는 메데이아의 신화를 들여다볼 수 있다. 아프로디테 신전 앞에서는 성매매까지 신성하게 여기던 코린토스의 악습을 만나게 되는데, 진정 화려하고도 타락한 도시다운 모습이다.
2장에서는 시골길을 걸으며 미케네로 들어간다. 아트레우스의 보고, 사자문, 키클롭스의 벽, 원형 무덤 A와 각종 유물을 직접 볼 수 있다. 그중 일명 ‘아가멤논의 가면’의 주인공 아가멤논 일가의 꼬리에 꼬리는 무는 복수극은 재미를 넘어 우리에게 고난이 어떤 의미인지 질문을 던진다. ‘황금의 땅’이던 미케네의 실재를 밝힌 하인리히 슐리만의 이야기도 빠지지 않는다.
3장에서는 영화 〈300〉의 배경이 된 스파르타로 향한다. 이제는 평화롭게 사람들이 카페에 앉아 있는 스파르타에는 파리스의 신화가 남아 있다. 그의 헬레네를 향한 욕망은 트로이 전쟁의 불씨를 지핀다. 또 한 사람, 스파르타를 스파르타답게 만든 리쿠르고스의 통치는 어린아이마저 스스로 통제하고 훈련하는 ‘스파르타’의 전형을 만든다.
4장에서는 올림픽의 기원이 된 땅 올림피아의 성스러움을 느낄 수 있다. 펠롭스가 피사 왕 오이노마오스의 죽음을 추모하며 시작된 장례 경기는 전 그리스가 전쟁을 멈추고 서로 화합하는 행사가 된다. 그곳에서 신을 조각하는 페이디아스의 작업장에 들러, 기독교의 등장으로 사라져 버린 제우스의 신상도 상상해 볼 수 있다.
5장에서는 마지막 여정으로 의술의 신 아스클레피오스의 흔적이 남은 에피다우로스를 걷는다. 그의 상징이 된 뱀이 둘린 지팡이는 오늘날 세계보건기구나 대한의사협회에서도 사용되고 있다. 의료 활동이 있던 아스클레피온을 걷고, 그 옛날 의료기구들을 마주하면서 고대 그리스의 치유와 돌봄의 현장을 눈으로 그릴 수 있다.
역사와 신화의 진정한 의미,
인간과 자유와 행복에 대하여
나는 천천히, 그리고 곰곰이 헨리 밀러의 말을 떠올리며 펠로폰네소스의 여정을 정리했다. 그리고 깨달았다. 돌봄과 보살핌 그리고 치유의 땅 에피다우로스에서 만난 건 아스클레피오스의 고고학 박물관에 있던 모든 죽은 자를 살리는 아스클레피오스가 아닌 통증에 시달리던 나 자신이라는 사실을.
_본문 중에서
남기환 작가는 펠로폰네소스의 여정을 마무리하며 가장 중요한 사실을 깨닫는다. 그리스 땅에서 만난 건 고전의 대가나 어떤 신화 속 인물이 아닌 ‘자기 자신’이라는 것. 이처럼 그리스의 역사와 신화는 그 자체로 의미 있다기보다는 여전히 우리에게 던지는 철학적인 질문과 그 질문들 속에 우리가 자신을 만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리스 고전은 그 여정의 길잡이가 돼 준다. 눈에 보이는 화려함 너머 자신을 만나는 여행은 더욱 흥미롭고 자유와 행복에 관한 정의를 가지게 한다. 『그리스 인문 기행』은 책으로든, 실제로든 그리스를 여행하는 이들에게 고전을 읽어주며 의미 있는 여행의 길잡이 역할을 해 줄 것이다.